인도네시아 우체부길
[아츠앤컬쳐] 다음 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뻐깔롱안을 출발하여 우체부길을 10여 km 달리면 바땅(Batang)에 당도한다. 바땅 시가지 사이로 바땅강(Sg. Batang)이 유유히 흐른다. 이곳 역시 뻐깔롱안과 마찬가지로 바 과 수공예품이 유명하다. 바땅에서 우체부길을 따라 동쪽으로 40km를 달리면 웰러리(Weleri)에 닿는다. 웰러리는 땅이 비옥하여 담배, 쌀, 커피, 면화 등을 많이 재배한다. 여기서 다시 북쪽으로 달리면 끈달(Kendal)이 나오고 거기서부터 동남쪽으로 한참을 달려 인구 5천만 명의 중부 자바주의 주도 스마랑(Semarang)에 도착한다.
스마랑은 ‘자바의 베네치아’, ‘리틀 네덜란드’, ‘룸삐아(lumpia)의 도시’, ‘자바의 항구’ 등의 별명이 있다. 스마랑은 식민통치 시대에 자바의 여러 지역의 산물인 담배, 설탕, 커피 등이 모여 거래되는 중요한 역할을 해온 곳이다. 1914년 8월 20일부터 11월 22일까지 당시 총독 이덴부르그(A.W.F Idenburg)가 스마랑에서 식민지 박람회(Koloniale Tentoonsteling)를 개최했는데, 중국, 일본, 호주 등과 유럽 여러 국가, 그리고 다른 네덜란드 식민통치하의 나라들이 참가하였다.
스마랑은 인도네시아 내 다른 지역보다 중국계가 비교적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스마랑은 명나라 때 무관이며 탐험가였던 정화(鄭和)와 연관이 있는 도시이다. 정화의 본명은 마삼보(馬三保)로 무슬림이었다. ‘마(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의 아버지 마합지(馬哈只)의 ‘합지(哈只)’는 성지순례를 다녀온 ‘하지(Haji)’를 뜻한다. 마삼보는 주원장 사후 영락제가 제위를 찬탈한 정난(靖難)의 변 때 공적을 세워 영락제로부터 정(鄭)씨 성을 받았다고 한다.
정화의 함대는 동남아시아, 인도를 거쳐 아라비아반도, 아프리카까지 항해하는 등 일곱 차례의 원정을 하였다. 정화 함대의 원정 중에 수마트라 왕의 요청으로 반역자를 토벌하고 1415년 7월에 돌아왔으며 말라카와 자바의 북부 해안에 위치한 여러 항구에 정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정화 함대는 애초부터 말라카 해협에 위치한 말라카 왕국을 인도양 항해를 위한 근거지로서 중시하여 말라카 국왕을 우대하였다. 그 덕분에 말라카 왕국은 중국 함대의 항해가 단절된 뒤에도 동서 교역의 중계항으로서 번영을 누렸다. 정화 함대가 자바에 등장함으로써 이 지역의 여러 국가들이 중국의 조공국이 되었다. 심지어 마자빠힛 왕국은 이 지역 맹주의 지위를 중국에 박탈당했다.
일본과 충돌한 5일간의 투쟁을 기리기 위하여 시내 중심부 광장에 기념 조형물이 있다. 이것이 라왕스우(Lawangsewu) 건물 앞에 있는 <젊은이의 기념비>(Tugu Muda)이다. 5각형의 돌기둥으로 제작되었는데 물론 5일간의 투쟁을 상징하기도 하고 인도네시아의 건국이념 빤짜실라를 상징하기도 한다. 기념비 건너편으로 대형 사원이 앞의 나무에 가려진 채로 어렴풋이 보인다.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로 인도네시아에 어딜가나 사원 없는 곳이 없다.
우리는 뻐찌난(Pecinan) 지역의 스마위스(Semawis) 시장으로 갔다. 스마랑을 상징하는 전통시장이다. ‘오덕당중약방’(五德堂中藥房)이라고 한자로 쓴 간판도 보인다. ‘뻐찌난’이라는 이름을 보아도 짐작하겠지만 중국계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 시장은 꾸두스, 빠띠, 즈빠라, 끈달, 살라띠가, 마글랑 등 스마랑 인근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로 활력이 넘친다. 포장마차에서 스마랑을 대표하는 먹거리 중의 하나인 룸삐아(lumpia)를 팔고 있다. 스마랑의 룸삐아는 다른 지역의 룸삐아보다 크기가 두 배 정도나 크다. 스마랑에 사는 중국계가 인도네시아 현지인 여성과 혼인한 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계란, 닭고기, 새우, 새싹 등을 밀가루 피에 싸서 기름에 튀겨 내는 것으로 스프링롤이다.
저만치에 있는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윙꼬 바밧(Wingko Babat) 가게이다. 윙꼬는 코코넛, 찹쌀가루, 설탕 등으로 만드는 전통 과자이다. 그라고 ‘바밧’은 동부 자바의 라몽안(Lamongan)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 이름이다. 바밧에서 보조네고로(Bojonegoro), 좀방(Jombang), 뚜반(Tuban) 그리고 수라바야(Surabaya)로 통한다. 그렇다면 바밧의 윙꼬가 더 유명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스마랑의 윙꼬가 더 유명하다. 안흥찐빵이 다른 지역에서 더 유명하게 돼버린 격이다.
잠시 줄을 서다 차례가 되어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가격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많이 살수록 단가가 좀 내려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가격이 똑같다. 유니폼을 입은 점원들이 윙꼬바밧을 파느라 정신이 없다. 윙꼬 바밧 세 상자를 사서 하나씩 나눠 가졌다. 밖으로 나와 시장통을 걸었다. 자무 아주머니가 자무 병이 가득 든 바구니를 등에 지고 걸어간다.
자무(jamu)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마시는 전통 기능성 음료이다. 약효가 있다고 여기는 다양한 약초, 뿌리, 표피의 즙을 내 마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무는 특정한 약초가 아니고 약효가 있는 식물의 총칭이다. 자무가 천연 식품으로 약효가 있다고 알려져 음료뿐만 아니라 이를 응용한 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중부 자바의 수꼬하르조(Sukoharjo)가 유명하다.
전통복장을 착용한 여성들이 각종 자무 병을 담은 바구니를 등에 지고 다니며 파는데, ‘자무 아주머니’(penjual jamu gendong)라고 부른다. 아까 그 자무 아주머니를 불렀다. 자무를 마시겠다는 의사 표시인 것이다. 자무 아주머니는 즉시 자무 바구니를 땅에 내려놓고 자무를 펼쳐 보였다. 열 개 정도의 자무 병이 보였다. 열 종류의 자무인 셈이다.
나는 가장 선명한 초록색의 자무를 마시겠다고 했다. 안디까와 마르띤은 자꾸 사양한다. 내가 재촉하여 모두 한 잔씩 마셨다. 한 잔에 천 루피아씩이다. 좀 쌉쌀한 맛이다. 대개 쓴맛이 나기 때문에 꿀을 섞어 마시기도 한다. 자무 아주머니가 자무 바구니를 메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그녀에게 의향을 말했다. 손사래를 친다. 부끄러운 것이다.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순박한 인도네시아 여성 그대로다. 다시 차근히 여행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그녀의 모습을 렌즈에 담을 수 있었다. 나이가 40인데 벌써 손녀딸이 있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까띠(Kati)이다.
글·사진 | 고영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