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스마랑에서 30km 정도를 달리니 드막 시가지가 나타났다. 중부 자바의 북부 해안에 위치한 드막 군의 군 소재지이다. 도로에는 베짝 그리고 마차와 자동차가 자신의 속도대로 사이좋게 달린다. 우리는 2억이 넘는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의 영적인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드막 대사원(Masjid Agung Demak)으로 향했다. 자바의 이슬람 전래에 상징성을 갖는 사원이다.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불교 유적지인 보로부두르 사원의 방문 목적이 사원의 외양을 감상하는 데 있다면 이 드막 사원은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영적인 치유를 얻기 위하여 방문하는 순례지다.
드막은 1475년에 라덴 파타(Raden Fatah, 1455~1518)가 세운 자바 최초의 이슬람 왕국이다. 라덴 파타는 당시 자바는 물론이고 인도네시아군도 전 지역에 영향력을 미치던 마자빠힛 힌두왕국의 마지막 왕인 브라위자야(Brawijaya)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브라위자야 왕은 참파 출신의 드와라와띠(Dwarawati) 왕비와 중국 출신의 후궁 탄고홧(Tan Go Hwat)을 두었다. 드와라와띠 왕비는 중국 출신의 후궁 탄고홧을 시기 질투하여 그녀를 빨렘방으로 축출하였다. 당시 빨렘방에는 브라위자야왕의 아들인 아르야 다마르(Arya Damar)가 부빠띠였다.
드와라와띠 왕비는 남편의 후궁 탄고홧을 자기 아들과 혼인시켰다. 당시 왕비의 시기 질투가 얼마나 심했으며 또 자신의 경쟁 상대를 얼마나 잔혹하게 다루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 후 탄고홧은 빨렘방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라덴 파타이다. 문제는 라덴 파타가 누구의 아들이냐는 것이다. 브라위자야 왕의 아들인지 아니면 그의 아들 아르야 다마르의 아들인지 설이 분분하다.
라덴 파타는 자신의 출생과 환경에 대한 고민으로 수라바야로 옮겨 왈리송오 중의 한 명인 수난 암펠(Sunan Ampel)로부터 이슬람을 배우게 되었다. 라덴 파타는 수난 암펠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 후 1457년 라덴 파타는 드막 지역으로 와서 드막 이슬람 왕국을 세우게 된 것이다.
사원은 참배객들로 붐볐다. 유니폼을 착용한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단체로 방문한 듯하다.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사원 한 켠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사원 관리인과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차까지 얻어 마신 후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사원을 둘러보았다.
드막 사원은 1479년에 완공되었다. 마자빠힛 왕궁에서 가져온 기둥이 있고, 벽면에는 외국에서 수입해 온 자기류가 박혀있다. 특이한 것은 사원의 지붕에 세우는 꾸바가 돔 모양이 아닌 파고다 모양으로 돼 있다. 이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슬람 양식이 갑자기 나타날 때 일어날 수 있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왈리송오들이 자주 이 사원에 모여 이슬람의 전파를 논의했으며 실제로 이 사람들이 사원의 건립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왈리 송오는 자바에 이슬람을 전래하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수피들을 말한다. 사원 앞쪽 마당에 왈리송오들이 사원에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우두(wudu)를 했다는 연못을 볼 수 있다. 우두는 무슬림들이 예배를 드리기 전에 몸을 청결하게 하는 것으로 정해진 순서에 의하여 씻는 것을 말한다.
사원 옆쪽으로는 드막 왕국의 유물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있고 뒤쪽에는 역대 왕들의 묘소도 있다. 술탄 라덴 파타와 그의 왕비 그리고 2대 술탄 빠띠 우누스(Pati Unus)의 묘소이다. 빠띠 우누스는 1521년에 원정대를 이끌고 말라카에 주둔하던 포르투갈 공격을 시도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당시 드막왕국의 위세와 빠띠 우누스의 기개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왕국은 3대 술탄인 뜨렝고노 왕을 끝으로 1548년에 멸망하고 말았지만 드막 사원은 자바 최초로 이슬람 왕국의 전통을 후대에 전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의 영적인 순례지이다.
인도네시아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계 최대의 무슬림국가이나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나라는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국교를 정하지 않고 6개의 종교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6개의 종교는 이슬람, 기독교, 천주교, 불교, 힌두교, 유교이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신분증에는 본인의 종교가 명시되어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우리에게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왔을 때 우리가 “종교가 없다”라고 대답한다면 좀 이상하게 여긴다. 그들은 인간에게 종교가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 문화를 이해하면서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는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의 신앙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요즈음 한국의 특정 종교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하여 교민이나 현지인을 상대로 선교,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물질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각기 종교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의 종교도 존중해야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지에서 무리하게 본인이 신봉하는 종교의 우월성을 이야기하거나 종교를 주제로 현지인과 논쟁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사진 | 고영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