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
슈만

 

[아츠앤컬쳐] 작곡가 슈만은 1850년에 라인강 유역의 도시인 뒤셀도르프에서 음악감독으로 부임했다. 슈만이 뒤셀도르프로 이주한 것은 그의 나이 40세 때였는데, 이 해에 독일 라인강을 테마로 한 훌륭한 교향곡을 작곡하여 교향곡의 대가로서의 위상을 확인한다. 작곡가 슈만이 라인강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그가 젊었을 때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살 때의 슈만은 하이델베르크로 유학을 떠나던 중 도중에 프랑크푸르트에 들렀는데, 그때 접한 마인강의 풍경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마인강은 라인강의 지류이다. 슈만과 라인강의 인연은 이때로 거슬러 올라가며 후일 자신의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에서는 라인강의 흐름을 ‘거룩한 흐름’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뒤셀도르프에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슈만은 새로운 희망을 가진 중년 시절을 맞이하고 있었다. 관현악 작곡에 있어서도 자신감이 충만하여 대규모의 창작곡에도 포부를 가지고 멋진 악상들을 전개시켰다. 그는 독일 교향곡을 통해 예술에 있어서 중심적 인물이 되고자 하였다. 음악감독으로서의 역할 역시 그의 예술적 관심을 고무시켜 주고 있었다. 당시 독일의 도시 뒤셀도르프는 나날이 인구가 증가하고 발전하여 라인란트의 주요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러한 도시 뒤셀도르프로 이주한 슈만은 그의 명작 ‘교향곡 라인’을 작곡하고 독일 교향곡 작곡가로서의 위상을 더욱 견고히 다진다. 그의 걸작 ‘첼로 협주곡 a단조’ 역시 이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10월에 ‘첼로 협주곡 a단조’의 작곡을 시작하여 11월 초에 완성하였으며, 곧바로 ‘교향곡 제3번 E♭장조, 교향곡 라인’의 작곡에 착수하여 12월 초에 완성을 보았다. 이 곡 ‘교향곡 라인’은 슈만의 포부와 의지를 드러낸 독일 교향곡의 명작이다. 새로운 활력으로 가득한 생활 속에서 슈만은 자신의 오랜 포부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의 뒤셀도르프 생활은 ‘라인 교향곡’의 탄생으로 새로운 개화기를 맞이하였고, 베토벤 이후 독일 교향곡의 후계자로서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이 ‘라인 교향곡’에서는 위대한 라인 강의 모습이 곡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1악장에서는 굽이쳐 흐르는 라인 강의 모습이 마치 하나의 생명체로서 모험을 하는 것과 같다. 슈만은 2악장을 스케르초라고 불렀는데, 이 스케르초는 찰싹거리며 밀려오는 파도처럼 경쾌한 춤곡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3악장에서 드러나는 은은한 광채는 달빛 아래에서 강변을 산책하는 연인들을 비추는 듯하다. 4악장에서 슈만은 우리를 라인 강 하류에 자리 잡은 쾰른의 대성당으로 인도한다. 커다란 고딕 성당은 어둡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활달한 리듬의 5악장은 자연 속의 상쾌한 공기와 따스한 햇살을 선사한다.

이 곡에서 특히나 표제적으로 관심을 끄는 악장은 느린 템포의 4악장이다. 초연 당시 작곡가는 악보에 ‘장엄한 의식의 반주 같은 스타일로’라고 적어 놓았다. 이 악장은 슈만이 아내 클라라와 함께 쾰른의 대성당에서 보았던 의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 의식은 쾰른 대주교의 즉위식이었으며 이 즉위식에서 슈만은 장엄한 순간들로 연결된 종교적 인상을 떠올렸던 것이다.

라인강은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북해로 흘러드는 유럽 굴지의 하천이다. 예로부터 독일인들에게는 ‘독일의 강’ 혹은 ‘독일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져 왔다. 그런 라인강을 독일인들은 ‘아버지 라인(Vater Rhein)’이라고 부른다. 독일의 상징인 라인강은 작곡가 슈만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슈만은 독일의 자연과 음악 정신을 계승하여 ‘교향곡 라인’을 창조하였다. 그 후 이 곡은 독일 교향곡의 역사에 길이 남을 금자탑이 되었다. 지금도 슈만의 걸작 ‘교향곡 라인’은 세계인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글 | 이석렬
2015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심사위원, 2015 이데일리 문화대상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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