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바람이 분다, 캔버스에 아크릴, 73cm x 53cm, 20호, 2016
붉은 바람이 분다, 캔버스에 아크릴, 73cm x 53cm, 20호, 2016

[아츠앤컬쳐] 이탈리아 피렌체는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약 230㎞ 떨어져 있다. 14~16세기에 예술을 비롯하여 상업·금융·학문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높은 위치를 점했고 유명한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브루넬레스키,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이 배출된 도시다. 관광업이경제활동의 기반을 이루고 있으며, 전통적인 수공예품인 유리제품과 도자기, 귀금속, 가죽제품, 예술품 등으로 유명하다.

지난밤 비가 내렸는지 촉촉이 젖은 피렌체의 아침은 고요하고 품위가 넘쳤다. 골목을 돌아서자마자 거대한 두오모가 시선을 압도했고 화려한 벽면 문양이 입을 자동으로 벌리게 만들었다. 목이 아플 만큼 두오모와 종탑을 올려다보다가 두모오 큐폴라에 오르기로 했다. 소설의 준세이가 그랬던 것처럼 두오모 정상에 오르면 만나고 싶은 누군가를 운명처럼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 내가 우습기도 했지만 여행객들로 가득한 두오모 정상을 한 바퀴 돌면서, 한참이나 혹시나 하는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 두오모를 빠져나와서도 그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유럽에서는 어딜 가나 최고의 일몰을 볼 수 있지만 피렌체의 일몰은 유럽의 도시들 중 최고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곳이다. 특히 피렌체의 전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진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보는 일몰을 보지 않는다면 피렌체 여행은 절반밖에 하지 못한 것이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아르노강으로 비껴드는 황금빛 햇살이 도시를 신비롭게 감싸기 시작했다. 곳곳에서는 거리 공연을 하는 기타와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서쪽 하늘에 머물러 황금빛을 내던 햇살이 마침내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을 붉게 물들였다.

순간 계단에 앉아 있던 여행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감탄하며 박수를 쳤고, 서로에게 기대어 있던 연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일몰 앞에서 달콤한 키스를 나누었다. 여행자들의 심장은 더욱 뜨겁게 박동하고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얼굴과 가슴은 붉게 타올랐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들처럼 곳곳에서 아! 하는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강을 따라 도시의 광장과 골목, 성당, 궁전마다 가로등이 하나둘 크리스마스 전등처럼 켜지기 시작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완전한 어둠으로 들어가 사람이 만들어낸 빛으로 가득해지는 피렌체의 밤을 오랫동안 보고 싶었다. 왠지 피렌체는 다시 오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글 | 배종훈
서양화가 겸 명상카툰과 일러스트 작가. 불교신문을 비롯한 많은 불교 매체에 선(禪)을 표현한 작품을 연재하고 있으며, 여행을 다니며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이야기를소소하게 풀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bjh4372@hanmail.net / www.facebook.com/jh.bae.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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