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스페인의 도시 레온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길에 있어 중세에 상당한 정치적·문화적·경제적 영향을 끼쳤다. 또 상업중심지로서 많은 수공업 길드가 있었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장과 시장들로 유명했다. 그래서 도시의 오래된 거리 이름들이 중세도시의 관공서와 건물들을 연상시키고 있는 대표적 옛 도시다. 특히 훌륭한 고딕 양식의 산타마리아 데 레글라 대성당(레온 대성당)에 ‘풀크라 레오니나’라고 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유명하다.
특징 없는 산길은 계속되었다. 밀밭으로 이어진 끝없고 지루한 길이었다. 인가도 보이고 농장도 있는 길이라 걷다 보면 다시 순례길의 표식을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또 한참을 걸어 숲길이 끝나는 자리에 도착했다. 숲이 끝나면 그늘이 없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모자와 선글라스를 꺼내며 걸음을 계속했는데 숲길의 끝에서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이 턱 막혔다. 그곳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해바라기 들판이 있었다. 스페인의 순례길에 올라서도 큰 감흥이 없던 내게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 순간이다. 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꿈에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동생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소리 내어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 들판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아주 잠깐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가 다시 걸어가는 낯선 순례자로 인해 울음을 그쳤으니까 말이다. 내가 울음을 그치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엄지를 치켜세워 보이고 계속 걸어갔다. 이제 일어나 이 들판의 해바라기를 보고, 앞으로 걸어나가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동생이 이 순간 하늘에서 내가 보고 있는 해바라기 길을 함께 보고, 그토록 기다린 풍경에서 만난 벅찬 감정을 똑같이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며 해바라기가 난 길을 걸었다. 그리고 돌아가 이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바라기가 가득한 그림은 여행을 마친 다음에도 언제나 나를 이 순간 앞에 다시 데려다줄 것이고 첫 그림은 천국에 있는 동생에게 보내고 싶었다.
여행을 마치고 조금씩 그려진 해바라기가 있는 작품들은 우선 그림을 그리는 나를 행복하게 했고 그림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과 편안함, 충만함을 함께해 주었다. 어쩌면 여행은 가슴의 상처를 치료하진 못해도 덜 아프게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내 해바라기를 가득 담은 그림이 상처받은 다른 이들에게 작은 연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글 | 배종훈
서양화가 겸 명상카툰과 일러스트 작가. 불교신문을 비롯한 많은 불교 매체에 선(禪)을 표현한 작품을 연재하고 있으며, 여행을 다니며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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