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 대학로 YES24 스테이지에서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공연을 보고 라흐마니노프(Sergei Vasilyevich Rachmaninoff, 1873~1943)에 대해 조금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원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 후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부모의 이혼으로 홀로된 어머니의 지원을 받아 피아노 공부를 했다. 스승 니콜라이 쯔베레프는 레슨비도 받지 않고라흐마니노프를 가르치며 많이 아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이며성장한 라흐마니노프는 키가 2m에 가까운 장신으로 18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스승 쯔베레프에 이어 그가 가장 존경했던 차이콥스키가 1893년 세상을 떠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고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피아노 트리오 2번 ‘어느 위대한 예술가를 추억하며’를 썼다.
1895년,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제1번을 작곡했다. 이 곡의 초연은 1897년 글라주노프의 지휘로 이루어졌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는 자신의 신곡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쏟아지는 언론의 혹평에 깊은 실의에 빠졌고 극심한 우울증과 신경 쇠약에 시달리게 된다. 이 시기에 심리학자인 니콜라이 달에게 심리 치료를 받았다. 니콜라이 달 박사는 그에게 ‘자기 암시 요법’이라는 처방을 내렸는데, 이는 환자에게 가벼운 최면을 걸어 놓고 그 귓가에 매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새로운 곡을 씁니다. 그리고 그 곡은 성공합니다.”
우울증을 극복한 라흐마니노프는 1899년부터 쓰기 시작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을 1901년 5월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모교인 모스크바 음악원 관계자들과동료 피아니스트들만 초대해 연주회를 가졌다. 그리고 공식 초연은 11월 9일에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이뤄졌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덕분에 라흐마니노프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3년간의 공백기에서 벗어난다. 그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헌정했다. 라흐마니노프는 1917년까지 왕성한 작곡 활동을 했고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망명하여 피아니스트로 살다가 캘리포니아 베버리힐스에서 1943년에 생을 마감했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었고 시민들은 상당히 위축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지 않은 대학로 YES24 스테이지의 406석 규모의 공연장 대부분이 채워지고 모처럼 활기찬 모습이었다 . 아직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시점으로 마스크를 쓰고 모두 조심하면서도 관객들이 들어찬 객석이 보기 좋았다. 실제 클래식 연주자 5명이 무대에 직접 등장해 연주함으로써 음악적 감동을 더해주었다.
글 | 전동수
아츠앤컬쳐 발행인, 음악평론가, 코러스나우 예술감독,
ITALIAN FILM & ART FESTIVAL 고문, 서울그랜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총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