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은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을 찾아 서울 근교의 두물머리를 자주 찾고 그림 중에서도 풍경화에 부쩍 관심이 늘었다.
지난 1월 17일부터 4월 19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모네에서 세잔까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展’이 열렸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제대로 관람을 하지 못했었는데, 6월 20일부터 다시 전시를 시작해서 8월 30일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이번 포스터 이미지는 카미유 피사로가 1899년에 그린 ‘햇살 가득한 에라니의 아침’(Morning Sunlight Effect, Eragny)이다. 이번 재전시를 통해 인상파의 중심에 섰던 피사로가 그린 풍경화를 보며, 어려움 속에서도 젊은 화가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어준 그의 그림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다시 보게 되었다.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는 덴마크계 프랑스인으로 인상주의 화가이다. 가장 훌륭한 근대 풍경화가 중 한 사람인 피사로는 모네와 친구였고 르누아르, 마네와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피사로의 초기 풍경화들은 작가 에밀 졸라와 평론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일반인들의 관심은 적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0년대 후반부터 피사로는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주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여러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구성하거나, 각자 전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874년에 친구들과함께 인상파 전람회를 결성해서 여러 번 전시회를 가졌는데, 피사로는 그 중심에 서서 일생을 인상파적인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퐁투아즈(Pontoise)에 잠시 살면서는 세잔과 고갱을 가르치기도 했다. 1885년 에라니 쉬르 엡트(Éragnysur-Epte)에 살면서 차세대 네오인상주의 화가 폴 시냑과 조르주 쇠라와 교류를 했다고 한다. 피사로는 섬세한 터치로 물체가 가진 고유의 빛깔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켰기에 그의 작품은 온기가 흐르듯 따뜻한 감정이 충만하다.
피사로는 눈병으로 시력이 약화되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파리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그리며 마지막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03년 11월 13일, 그는 패혈증(혈액 중독)으로 사망했다.
글 | 전동수
아츠앤컬쳐 발행인, 음악평론가, 코러스나우 예술감독, ITALIAN FILM & ART FESTIVAL 고문, 서울그랜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총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