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천
임승천

 

[아츠앤컬쳐] 오후 3시 강남 출발, 파주로 향하는 길이다. 자유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임승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한다. 첫 만남에서 그는 과묵한 인상이었다. 여러 작가분과 함께였던 터라 대화를 나누어보지 못해 아쉬웠었다. 홀로 작업실을 방문했다. 그의 세상이, 그의 사는 모습이 궁금했다. 디스토피아적 음울함을 느끼게 하는 그의 작품과 우화들… 현실에서 느끼는 삶보다 더 절실하게 삶이 묻어나온다. 그는 작품 속에서 사람에 대하여, 그가 관망하는 삶의 파편들에 관하여 은유한다.

“표류자. 검푸른 바다 위에서 태어난 소년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버려졌고, 미처 외로움을 깨닫기도 전, 서둘러 길을 떠나야 했다. 침몰해가던 배의 마지막 생존자인 소년은, 버거웠던 삶의 무게처럼 군살이 붙은 어른이 되었다. 소년이 어른이 될 무렵, 그의 등에서 작고 하얀 날개 하나가 솟아올랐다. 그는 어디로든 훨훨 날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단꿈을 꾸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의 전부였던 작은 날개는 고기밥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너무 슬퍼, 자신의 조각배가 잠기도록 한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 끝없는 표류를 계속하다 어느 추운 바다에 도착했을 때, 많은 시체들이 바다를 덮고 있는 끔찍한 모습을 보았다. 그는 너무 놀라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 그곳을 떠나며, 자신이 태어난 방주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어릴 적, 어딘가에 있을 낙원을 찾아 길을 떠났었다.

하지만 그가 만났던 세상은 희망도, 꿈도 없는 비정함만 가득했다. 그는 그 후로도 세상의 많은 추한 것들을 보았다. 어느 한적한 오후, 그는 가던 길을 멈춰 섰다. 자신이 꿈꾸던 낙원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그는 어디로도 가려 하지 않았다.”
- 작가의 글

임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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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파주 작업실은 의외로 깔끔하다.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작업실이다. 어떤 감정적인 움틀거림이나 그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장식도 없다. 그저 작품을 제작하는 공간과 그로 인해 세상에 태어난 조각작품들이 존재한다. 눈이 셋 달린 섬뜩하면서도 오묘한 감정을 뿜어내는 한 사내가 손을 턱에 괴고 앉아있다. 적당히 겹쳐진 뱃살, 그리고 이마엔 주름이 잡혀있다. 그의 눈은 허공을 응시하는듯하지만 아직도 날카로운 기운이 남아있다. 신체의 전체 크기에 비해 굵고 강해 보이는 팔과 손은 작가의 것과 닮아있다. 사내의 삶이 그 역경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먼저 시나리오를 쓰고 그 이야기를 조각으로 표현해내는 그는, 자신의 삶과 사람을 느끼고 사회를 보는 시각을 우화로 풀어내어 ‘혼돈과 허무’를 연출해낸다.

임승천
임승천

“꿈꾸는 물고기. 어느 깊은 바다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같은 종의 어류들보다 유난히 작게 태어난 물고기는 자라면서 무리로부터 많은 따돌림을 당하며 외롭게 살아갔다. 어느 날, 물고기는 태어나 처음으로 거대한 고래를 보았다. 물고기는 두려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나 거대한 고래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경외심 마저 들었다. 그날 이후 물고기는 자신이 고래처럼 거대해지는 꿈을 꾸며 살았다. 하지만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면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았다. 물고기는 자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의 날개를 보게 됐다. 그는 너무나도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반짝이는 그의 날개는 세상의 무엇보다 탐스럽게 보였다. 물고기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물고기는 그의 날개를 먹어 치우고 유유히 그곳을 떠났다.

그 후로 오랜 날들이 지났다. 물고기는 더 이상 예전의 작은 물고기가 아니었다. 물고기의 몸은 거대하게 점점 커져 움직일 수 없게 부풀어 있었다. 누군가의 전부였던 희망을 먹은 죄 때문이었을까… 물고기는 바다 밑에 누워 비대하게 커진 몸을 가누지 못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 작가의 글

이천 작업현장에서 또 그를 만났다. 임승천 작가의 코끝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진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건만 작업에 여념이 없다. 작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도 또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처절하게도 자신을 몰아친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삶에 대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방관한다. 삶을 그저 살아간다. 힘들게 하는 요소들과 굳이 직접 만나려 하지 않는다. 때로는 술 한잔을 하며 흘려보내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방관하지 못하는 듯하다. 소화되지 않는 삶의 무게를 은유하며 고스란히 드러내어 놓고는 담론을 꾸려 나간다. 상처를 덮고 모른 척 방치할 수가 없었던 만큼 세상이 절실하고도 아팠던 것인지 작품을 통해 처절하게 절규하듯 표현한다. 실제로 만나 알게 된 그는 맑고 밝다.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함께여서, 또 작업으로 해소가 되고 있어 그런 듯하다.

글 | 장신정
전시 & 프로그램 기획,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수석 큐레이터, NYU 예술경영석사. 전 MoMA P.S.1.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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