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유 국립오페라 (Opéra Bastille National de Paris)
[아츠앤컬쳐] “호반시치나는 무소르그스키의 대표적인 걸작이다. 바그너에게 파르지팔이 그러했듯이, 완숙의 경지에 이른 작곡가의 진정한 자유함이 담겨있다.”
프랑스의 음악사학자이자 러시아문학 번역가인 로스티슬라브 호프만(Rostislav Hofmann)의 표현을 인용해보았다. 러시아 격동의 시기를 묘사한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호반시치나>가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무대를 웅장하게 장식했다. 호반스키 사건을 다룬 이 오페라는 1682년에서 1689년 사이의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국민음악운동을 주도한 러시아 5인조에 속하는 무소르그스키는 이 곡을 통하여 보수적인 호반시치나 공작과 진보적인 피요트르 황제 사이의 분쟁을 묘사하였다. 무소르그스키는 결국 이 작품을 미완성작으로 남긴 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군병원에서 홀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후에 5인조 중 한 명이자 절친한 친구인 림스키코르사코프(Rimski-Korsakov)가 완성시켰다.
작곡가 무소르그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 1839~1881)는 러시아 고유의 선법(旋法)과 대담한 화성(和聲), 변칙적인 리듬 등을 구사하는 기법으로 근대 인상파 음악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드뷔시를 비롯한 많은 근대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푸시킨의 희곡을 작곡한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1874)는 그 고도의 음악성으로 높이 평가되며, 피아노곡과 가곡으로 <어린이의 방>(1868~1872), <죽음의 노래와 춤>(1875~1877), <전람회의 그림>(1874) 등이 있다.
<호반시치나>는 1682년 봄과 여름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정치적 붕괴를 소재로 하였다. 차르 왕자의 정권 계승, 러시아 정교회 개혁, 서구화 등 격동의 시대를 장엄하게 다루었다. 한편, 무소르그스키가 1873년에 작성한 서신에 따르면 그는 이 곡을 작곡하기 위하여 아홉 가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수많은 자료 속에 파묻혀서 머리에서 김이 난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였다. 그리고 1880년에 블라디미르 스트라브에게 보내는 서신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의 오페라는 거의 완성되었다. 단 마지막 처형 장면만이 남아 있다. 그 작업을 위해서 의견을 나누고 싶다. 이는 무대연출에 절대적으로 달려있는 문제이다. 간절히 도움을 요청한다. 미숙한 무대연출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역겹다. 꼭 도와주길 바란다.”
이번 공연은 지휘에 미하일 주로브스키(Michail Jurowski), 연출에 안드레이 세르반(Andrei Serban), 무대 및 의상연출에 리차드 허드슨(Richard Hudson)이 참여하였다. 한편 이번 작품에는 이반 호반스키 역의 베이스 글렙 니콜스키(Gleb Nikolsky) 외에 러시아 성악가들이 대거 출연하였으며, 한국인 테너 황세진 씨는 골리친 왕자의 대변인이자 절친역으로 분하여 호평을 받았다.
바스티유 오페라의 이번 <호반시치나>는 이례적으로 저녁 7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막을 내렸다. 보통 파리 국립오페라의 공연이 7시 30분에 공연을 시작하는 터라 다수의 관람객들이 지각으로 혼잡을 빚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는 역시 대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규모 무대의 압도적인 무대 연출, 화려한 전통의상, 종교와 정치를 넘나드는 서사시, 수많은 합창단원들의 웅장한 목소리가 신성하리만큼 홀을 가득 메웠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큐레이터/ 아트컨설턴트, 파리예술경영대 EAC 출강
EAC 예술경영학 학 · 석사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