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bilier d’Époque Directoire
[아츠앤컬쳐] 파리의 강남이라고 할 수 있는 센강 좌안 지대를 파리지앵들은 ‘리브 고슈(Rive gauche)’라고 부른다. ‘강남스타일’이란 표현이 우리에게 친숙하듯, 이곳에서는 ‘리브 고슈 스타일’이라 하여 편안함과 시크함을 겸비한 패셔니스타들을 일컫는다. 이 지역에는 오르세미술관부터 국립미술학교인 ‘에꼴 데 보자르’ 사이에 앤틱갤러리와 화랑들이 즐비하다. 리브 고슈의 <디렉트와르 스타일> 전문 앤틱갤러리 오너인 ‘필립 개강(Philippe Guegan)’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그의 열정과 프로정신을 보았다. 아츠앤컬쳐의 독자들을 위하여, 코모드의 서랍을 열어서 이음새와 합판장식에 대하여 소상히 설명해 주고, 의자를 뒤집어 보여주며 어떻게 앤틱가구를 골라야 하는지 꼼꼼히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
“<디렉트와르 스타일>은 그 어느 가구보다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사실상 매우 짧은 기간에 제작된 가구라서 수량이 지극히 한정적이다.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대변하는 가구이다. 과거 왕정시대를 뒤로하고, 혁명을 통하여 새로운 사회를 염원하였던 당시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가구양식이다. 왕정의 화려함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시대적 염원을 담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고풍스러운 앤틱가구이지만,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이고 모던한 디자인이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그러한 모던한 성향 때문에 컨템포러리 미술 작품과도 잘 매치가 된다. 나의 갤러리도 서로 다른 시대의 작품과 가구를 믹스해서 전시한 것이다. 단 중요한 점은 이렇게 믹스할 때 두 요소의 가치가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
여성 메세나, 마담 레카미에 (Madame Récamier)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그리스 여신을 연상시키는 여인이 침대도 소파도 아닌 가구에 옆으로 기대어 있는 그림을 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활동했던 역사적인 문화계 인사로 손꼽히는 이 여인은 바로 ‘마담 레카미에’이다. 마담 레카미에는 당시 뛰어난 미모와 더불어 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앞서 가는 취향으로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이 컸던 인물이다. 금융가 출신의 남편 레카미에의 아내로서 그녀는 혁명 이후 급변했던 프랑스 사회의 신여성으로서 문화예술계의 사교적인 역할을 하며 중요한 메세나로 기억되고 있다. 이 그림 속의 레카미에 부인이 앉아 있는 가구가 바로 ‘메리디엔느’라는 대표적인 디렉트와르 스타일 가구이다. 그리고 이 그림은 당시 나폴레옹의 화가로 활동했던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이다
프랑스혁명과 함께 태어난 가구
프랑스의 가구는 18세기 왕실컬렉션을 통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루이 14세에 시작되어 루이 15세, 루이 16세까지 우아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가구의 화려한 역사를 남겼다. <디렉트와르 스타일> 가구는 바로 이러한 왕실가구의 화려함 이후에 프랑스 혁명과 함께 태어난 가구이다. 디렉트와르 스타일은 <루이 16세 스타일>과 <엠파이어 스타일> 사이에 1789년부터 1804년까지 생산되었다. ‘디렉트와르’라는 의미는 혁명 후 총재정부를 뜻하는데, 실제로 <디렉트와르 스타일>은 좀 더 포괄적으로 쓰인다. 사실상, 1789년 프랑스 왕권이 무너지면서 혁명이 일어나고, 총재정부(1795-1799)시기를 지나 나폴레옹이 통령정부(1799-1804)를 수립한 기간을 아우른다. 그리고 <디렉트와르 스타일>을 달리 부르면, <메시도르 스타일>이라고도 한다.
간결함과 모던함의 미학
혼란스런 국가정세를 반영한 <디렉트와르 스타일> 가구는 수난의 시대를 대변하는 가구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혁명으로 인한 국가 경제난은 매우 심각했었고,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게 생활 및 문화 전반에 흔적을 남겼다. <디렉트와르 스타일> 가구에는 화려한 과거는 가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당시의 시대상이 엿보인다. 소재와 라인이 전체적으로 모두 간소화되었다. 마호가니 원목은 꾸준히 널리 사용되었으나, 과거의 화려한 금장식이나 마케트리 장식은 현저하게 감소했다. 한편, 이후에 나폴레옹의 시대가 열리면서 등장한 <엠파이어 스타일>이 지극히 웅장한 느낌의 남성스러움을 자랑한다면, <디렉트와르 스타일>은 단아한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는 가구이다.
폼페이 발견과 복고 트랜드
당시 새롭게 등장한 기술과 소재의 변화를 말하자면, 철재의 사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철제가구의 등장은 당시 폼페이 발견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그 당시 폼페이 발견은 엄청난 이슈였다. 이에 로마문화에 대한 복고 트랜드가 지배적이었다. 폼페이 발견과 함께 프레스코 벽화 속에 나오는 로마 시대의 가구를 모방하고자 소재의 변화를 도모하던 중 철제가구가 등장한 것이다. 또한, 철제가구의 경우, 조립과 분리가 가능하여 실용성을 높였다. 또한, 당시 부르주아 고객층이 추구하였던 실용적 취향을 읽을 수 있다.
앤틱 컬렉션
사실상 <디렉트와르 스타일> 가구는 현재 거래가 드문 편이다. 18세기 왕실가구의 경우 전통적으로 폭넓은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에, <디렉트와르 스타일>의 경우에는 희소성이 높으며 마니아층이 찾는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래량도 많지 않은 편이고 가격 또한 변동폭이 약하다. 그리고 외국인 컬렉터층보다는 프랑스 국내 수요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틱시장의 불변법칙인 걸작은 결코 경기를 타지 않는다. 자콥을 비롯한 당대 소수의 유명 가구디자이너의 가구는 항상 최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자문위원 : 프랑수아 마팽(M. François Marfaing), EAC 앤틱교수, 파트리시아 르모니에(Mme. Patricia Lemonnier), 앤틱감정사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아트 컨설턴트, 파리 예술경영에꼴 EAC 강사
소르본느대 미술사, EAC 예술경영 및 석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