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행의 가구이야기

 

[아츠앤컬쳐] ‘1900년 스타일’이라고도 불리는 ‘아르 누보 스타일’ 가구는 18세기부터이어져 온 유럽의 왕실가구와는 그 형태와 느낌이 현격히 다르다. 전통적인 형식을 버리고, 꽃, 나무의 줄기, 해초 및 곤충에서 그 영감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순수미술과 실용미술의 경계를 타파하려는 영국의 ‘아츠 앤 크래프트 운동’과 일본 및 아시아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인지, ‘아르 누보 스타일’ 가구를 찾는 컬렉터의 경우, 유럽 및 일본 컬렉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가구에 사용한 소재를 보면, 유럽 자체에서 생산되었던 호두나무, 자작나무, 레몬나무와 마호가니 나무를 비롯한 수입목을 사용하였다.

Majorelle
Majorelle

 

<아르 누보>의 유래
<아르 누보(Art Nouveau)> 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표현이다. 우선 <아르 누보> 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유겐트슈틸(Jugendstil)’, 오스트리아에서는 ‘제체시온슈틸(Secessionstil)’, 이탈리아에서는 ‘스틸레 리베르티(La Stile Liberty)’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벨기에와 프랑스에서는 대표적인 예술가의 이름을 따서 각각 ‘오르타 양식(Style Horta)’과 ‘기마르 양식(Style Guimard)’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 파리의 지하철역 입구를 1900년에 제작한 엑토르 기마르(Hector Guimard)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편, 당시의 기록을 보면 <아르 누보> 양식을 탐탁지 않게 여긴 일부 사람들이 ‘누이 양식(Style nouille)’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마치 국수의 면발과 같다는 의미로 혹평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아르 누보> 가 포괄하는 예술의 영역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회화나 건축은 물론 가구, 도자기, 유리 공예, 실용디자인, 액세서리 및 광고포스터까지 당시의 생활 전반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는 당시 예술 및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사회적 경향과 라이프 스타일을 개선하려는 사회적인 흐름과도 일치한다. <아르 누보> 라는 표현 자체가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을 의미하기에, 기존의 그리스 로마 양식이나 고딕양식에 기초한 전통을 거부하고, 주로 식물과 곤충 등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예술의 형태를 도모하였다.

Guimard_Orsay
Guimard_Orsay

 

메종 드 아르 누보(Maison de l’Art Nouveau)
‘메종 드 아르 누보(Maison de l’Art Nouveau)’는 ‘아르 누보의 집’이라는 뜻으로, 아르 누보 가구를 처음으로 소개한 파리 소재의 갤러리이다. 독일인 화상인 지그프리트 빙(Sigfrid Bing, 1838 - 1905)은 1895년에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미술 시장에 선보이고자 새롭게 갤러리를 오픈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지그프리트 빙은 ‘일본 예술(Le Japon artistique)’이라는 잡지의 편집장으로서 이미 1870년대부터 일본 미술품을 판매해 왔었다.

빙이 소개한 벨기에 출신의 앙리 반 데 벨데(Henry Van de Velde, 1863 ~1957)는 당시 영국에서 일어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위계를 타파하려 는 ‘미술공예운동’인 <아츠 앤 크래프트, Arts and Crafts>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초기의 <아르 누보> 전시에 대한 비평가들의 반응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에 대안책으로 파리에서는 좀 더 우아하고 프랑스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파리지엥적인 느낌을 살려서 라인을 좀 더 매끄럽고 섬세하게 처리하면서, 식물성 모티브가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을 피하였다. 그러면서 가구의 전체적인 느낌을 좀 더 가볍고 산뜻하게 하여 지방색을 배제하였다. 이 중 대표적인 작가가 으젠 가이야르(Eugène Gaillard), 조르쥬 드 프르(Georges de Feure), 에드아르 꼴로나(Edouard Colonna)이다.

Escalier-Artnouveau
Escalier-Artnouveau

 

에꼴 드 낭시(Ecole de Nancy)
프랑스의 낭시는 <아르 누보 스타일>을 가장 집약적으로 발전시킨 도시이다. 에밀 걀레(Emile Gallé, 1846-1904)와 루이 마조렐(Louis Majorelle, 1859-1926)를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 들 수 있다. 에밀 걀레는 가족과 함께 아틀리에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1872년 런던 여행 후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일본 및 극동아시아 문화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초기에는 유리 공예와 도자기로 시작하였으나, 후에 1889년부터 본격적으로 가구 생산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가구의 다리를 회전하여 수공으로 가공하는 장인기법의 19세기 말의 전통양식을 따랐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생산 방식과 가구 스타일의 근대화를 선언하고, 가구 전체의 라인에 자연미를 표현하였으며, 가급적 좌우대칭을 피하였다. 섬세하고 가는 라인의 가구들은 마치 가구를 배치 공간의 바닥에서 식물이 자라 나온 듯한 모습으로 마치 한 폭의 정원 같은 실내 분위기를 연출했다. 기술면에서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원목세공이 아닌, 합판 목재를 가구 표면에 부착하여 자연의 모티프를 표현하였다.

루이 마조렐은 초기에는 에밀 걀레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작업했지만 1900년 만국 박람회 때 놀라운 히트를 치면서 탁월한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그는 18세기 가구인 <루이 15세 스타일>의 가구를 자신의 방식으로 재조명한 창의적인 가구를 선보였다. 원목의 표면 위에 다른 재질의 나무를 부착하는 방식의 장식기법을 버리고, 가구의 다리와 발 끝에 심혈을 기울여 도금 브론즈를 부착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였다.

한편, 에밀 걀레의 가구가 다소 부드럽고 섬세한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면, 루이 마조렐의 가구는 강하고 견고한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루이 마조렐의 가구는 이처럼 프랑스 왕실 가구의 기본 사양에 아르 누보 스타일을 보강한 것이다. 이후 1901년에 에밀 걀레를 총장으로 ‘에꼴 드 낭시(Ecole de Nancy)’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리고 1904년에 걀레가 세상을 떠나면서, 죽마고우인 빅토르 프루베(Victor Prouvé) 교수가 그의 정신을 계승하였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큐레이터/ 아트컨설턴트, 파리예술경영대 EAC 출강
EAC 예술경영학 학·석 사 졸업, 소르본느대 Sorbonne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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