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파란색은 예술의 역사에선 특별히 취급되지 못했다. 역사상 파란색은 그리스와 로마인들 사이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었고, 미개인들을 연상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역사의 한 시점에서 제 운을 만난 듯 파란색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으며 전 유럽에서 가장 각광받는 색이 되었다.
고대와 중세 초기에 완전히 배제되었던 파란색은 12세기부터 점차적으로 증가되고 향상되었으며 이후 낭만시대까지 사회적, 도덕적, 예술적 그리고 종교적 가치를 강조하게 되었다. 파란색은 단독으로 처리되거나 사용되기보다는 늘 다른 색과의 연관성을 지니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색상을 언급하게 된다.
천 년이 지난 후, 그리고 12세기 초만 해도 파란색은 로마 시대와 중세 초기에 존재한 부차적 색상으로, 그저 소박한 평판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후 유행을 타게 되면서 귀족적인 색상이 되고 점점 의류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사실상 파란색은 11~12세기부터 미술과 초상화 분야에서 조금씩 상승세를 타게 되었는데, 샤를 마뉴(Carlo Magno) 시대의 세밀화 등에 나타나긴 했으나 아직은 붉은색과 흰색 그리고 검은색의 가치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변화의 과정을 겪으며, 회화와 상징의 새로운 지위를 차지함으로 색채 예술에서 두각을 나타낼 뿐 아니라 곧 문양과 의복에도 자주 사용된다. 그 한 예로 성모의 망토를 들 수 있는데, 물론 성모가 늘 파란색 복장을 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12세기 서양화에서 성모의 필수적 속성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전까지 성모의 복장은 형태와 상관없이 거의 어두운 색이었으며, 주로 애도의 색인 검정색, 회색, 갈색, 자주색 그리고 짙은 녹색이었다.
12세기 전반 차차 이 색들은 줄어들고, 새로운 애도적 속성을 수행하는 파란색이 대두된다. 파란색은 빛나고 매혹적으로 변화하며, 침체된 색에서 분명하고 밝아진다. 이에 유리와 세공의 장인들은 이 새로운 성모 블루(blu mariano)와 빛의 개념을 새롭게 조화시키려고 노력했으며, 곧 파란색은 고딕 성당의 화풍과 스테인드글라스에 빛을 가져오게 되었다.
1140년경 스테인드글라스 화공들은 수도원 교회의 재건과 더불어 그 유명한 생 드니 블루(blu di Saint-Denis)와 샤르트르 블루(blu di Chartres)에 도달하게 된다. 드디어 창의 파란색은 하늘과 빛의 새로운 개념 그리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나타내게 되며, 이후 13세기 예술에서 파란색은 더 어둡고도 밀도가 높은 색조를 취하게 된다. 이는 기술 및 경제적 이유로 코발트 대신 구리 또는 망간을 사용함에서 비롯되며 무엇보다 진정한 미적 변화를 가져온다. 필사본의 삽화 화가들 또한 붉은색과 파란색 배경을 체계적으로 배합하거나 대조하여 아름다운 미세화의 이미지들을 만들게 된다.
조토(Giotto)와 그의 화파는 푸른 하늘을 통해 시간과 공간 예술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1303~1305년 사이 스크로베니 성당(Cappella degli Scrovegni)에 사용된 파란색은 유일무이한 것으로, 이는 회화의 능란한 기법뿐 아니라 유황과 황산을 함유한 값비싼 나트륨과 알루미늄 규산염을 의미한다. 대중에게 울트라마린블루(blu oltremare)로 알려진 이 파란색은 14세기 초부터 귀하게 여겨진 청금석으로부터 나왔다. 즉 울트라마린블루는 천연 안료였으며, 이 색의 사용은 곧 부유한 후원자의 상징이었다. 조토는 안료를 구해 대령한 부유한 후원자 덕분에 이를 이용하여 신적 경지에 도달했다. 조토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났다 해도, 이 특별한 안료가 없었다면 스크로베니의 프레스코 벽화 대부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술 작품은 예술가가 이용할 수 있는 재료에 의해 가장 먼저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로지 조토만이 파란색 가운데 구리 탄산염으로 울트라마린을 만들어냈고 이로 인해 스크로베니 성당의 걸작들이 탄생했다.
12세기와 13세기 파란색의 진흥은 예술과 이미지뿐 아니라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걸쳐 감각적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중요한 경제적 상징성 즉 문장과 의복 문양 그리고 프레스코화의 복장을 표현하는데 파란색이 점점 더 많이 사용된다. 14 세기 중반부터 이 색은 새로운 역사의 단계에 접어들며, 성모와 현실 그리고 르네상스의 색으로 널리 전파된다. 예를 들어 라파엘로의 <파란색 왕관의 성모(Madonna del diadema blu)>나 베네치아 화가 벨리니(Bellini)의 성모화들, 조르조네(Giorgione)의 일부 작품들, 또한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시스티나 성당(Capella Sistina)의 하늘과 같이 위대한 이탈리아 화가들에 의해 사용된다.
파란색은 계속해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화가들에게 사랑받으며, 죄성(罪性)이 강조된 유혹적인 붉은색에 대립되는 도덕적 색으로 변모한다. 종교개혁과 함께 파란색은 더 중립적이지만 덜 눈에 띄는 색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붉은색처럼 유혹과 죄악을 유발하지 않는 강렬하지만 차가운 색이기 때문이다. 루터와 칼빈의 시대에 파란색은 로마 교회의 타락과 대치되는 대개혁의 상징인 흰색과 검은색, 회색과 함께 정직한 색으로서 탄생된다.
파란색은 오늘날 정치적 색채로도 언급되지만 필자는 이후의 이야기를 통해 파란색이 어떠한 화려함을 입고 돌아오는지 설명하려 한다. 이데올로기는 사라지지만 여전히 남아있을 아름다움의 여지를 남긴 채.
번역 | 길한나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글 | 로베르토 파시 Basera Roberto Pasi
Journalist, Doctorate Degree University of Siena(Literature, Philosophy, History of Art with honors), Study at Freiheit Unverisität Berlin, Facilitator at Osho Resort, Poona Ind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