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영원이 되는 순간

 

[아츠앤컬쳐] 영화나 드라마의 시청자들에게 장면과 음악의 일치감은 고도화된 감각을 선사한다. 특히 그 감각이 기억의 한 조각과 맞닿을 때 만족감은 더욱 상승한다. 사람들은 보고 있는 장면에서 과거나 현재의 기억이든, 미래의 상상이든, 자신의 흔적을 확인하는 것 같다. 물론 굳이 영상 음악이 아니더라도 음악을 듣는 순간 기억과 만나는 경험은 종종 일어난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여가수 이쉬타르(Ishtar)의 목소리는 여러 기억들을 마치 사진처럼 그려낸다. 특히 대표곡인 ‘유칼립투스의 숲’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아련한 기억의 장소로 우리를 데려간다.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빼곡히 심겨 있던 숲, 그 사이로 보이는 작은 오두막, 그 오두막을 손수 지은 한 부부와 숲을 가로지르며 웃던 아이들... 그녀의 노래는 사람들의 성장과 함께 자라난 아름다운 숲의 기억을 매혹적인 톤으로 들려준다.

유칼립투스는 생명력과 자생력을 의미하는 나무이다. 그래서 노래에 등장하는 유칼립투스 숲은 단순한 기억의 장소를 넘어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숲은 자라난 아이들의 성장을 비추는 거울이자 삶의 고비마다 찾아올 시련을 이길 힘이다. 또한 삶의 뒤안길에서 되돌아볼 본향이며, 평온의 순간까지 동행할 변함없는 안식처이다. 즉 유칼립투스의 숲은 기억이자 삶이며 영원으로 이르는 길이다. 놀랍게도 이슈타르의 목소리는 이 많은 의미를 강렬하고도 간절하게 표현하며, 깊은 감흥에 이르게 한다. 그녀의 따뜻하면서도 서글픔을 머금은 목소리와, 극적이면서도 치우침이 없는 해석력은 기쁨과 슬픔이 혼합된 기억의 특성을 또렷하게 투영한다.

두드러진 표현력은 나오미 쉐머(Naomi Shemer)의 가사에 힘입는다. 쉐머는 “이스라엘 시가(詩歌)의 귀부인”으로 칭송받을 만큼 이스라엘 음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작곡가이다. ‘유칼립투스 숲’은 그녀의 1963년 작품으로, 본래 사막의 모래바람인 ‘함신’을 언급한 어린이 뮤지컬 <함신 무찌르기(Keytzad Shovrim Chamsin)>를 위해 쓰였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키부츠, 갈릴리 기슭이 연상되는 이 노래에는 아마도 작고 어린 나오미의 유년의 기억들이 가득 담겼을 것이다. 이 기억들은 다시 가창으로 특별함을 얻게 되는데, 이는 그녀의 독특한 창법에서 비롯된다. 플라멩코와 아라빅 멜리스마가 뒤섞인 그녀의 아라빅 팝 스타일은 이집트계 어머니와 스페인계 모로코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가족력과 무관하지 않다. 이미 월드뮤직 씬에서 “중동의 여왕”으로 불리는 가창력과 카리스마는 발표하는 곡마다 세계 챠트를 석권하며 중동 음악의 가능성과 트렌드의 변화를 점쳤다.

유칼립투스 숲’은 2003년, MBC 드라마 <눈사람>에 소개되어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방영 전부터 이창순 PD와 정용순 음악감독의 협업 소식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는데, 이는 이들이 <모래시계>와 <아들과 딸>, <애인>에서 보여준 완벽한 호흡 때문이었다. 그만큼 시청자들에게 장면과 음악의 일치감은 감상을 넘어 감성적 유희를 경험케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아마도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유칼립투스 숲’과 그 곳에서의 소중한 기억을 들려주는 음악이 필요한 듯하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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