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도 서글픈 구애의 순간

 

[아츠앤컬쳐] 장미의 계절인 5월에는 유독 결혼식이 많다. 때로는 부케를 던지는 신부와 환호하는 하객들 사이로 계절의 여왕 5월이 유유히 지나는 느낌이다. 5월의 걸음걸이는 결혼식의 정경을 아름답게 채우는 사랑의 노래들로 우아하고도 활기차다. 자고로 결혼식엔 늘 아름다운 노래들이 흘러 신랑 신부의 구애와 사랑의 결실을 상징하며 축복한다. 중동 전역에 잘 알려진 ‘장미꽃 만발한 저녁’ 역시 구애의 순간을 묘사한 노래이자 결혼식 축가이다.

‘장미꽃 만발한 저녁’의 국내 버전은 이명우의 ‘가시리’이다.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여받은 이 곡은 곧 대학가와 방송계를 들썩이며 큰 인기를 끌었다. ‘가시리’의 가사는 두 개의 고려가요에서 발췌되었는데 곧 ‘가시리’와 ‘청산별곡’으로서 각각 절과 후렴구에 사용되었다. 서럽고 슬픈 느낌이 드는 이별곡 ‘가시리’와는 달리, 원곡인 ‘장미꽃 만발한 저녁’은 아름다운 시어(詩語)를 통해 구애의 내밀한 순간을 표현한다.

“장미꽃 만발한 저녁, 우리 작은 숲으로 나가요. 몰약과 향료, 유황이 가득한 아름다운 길을 따라서. 밤이 다가와 장미향이 실려 오면 그대에게 사랑 노래를 불러줄 게요. 새벽 비둘기가 짝을 찾아 구구 울고, 그대의 머리칼과 입술이 이슬에 젖은 채 장미처럼 타오르는 아침, 그대의 입술에 입맞추고 싶어요.”

‘장미꽃 만발한 저녁’은 이스라엘의 시인 모세 도르(Moshe Dor)와 작곡가 요세프 하다르(Yosef Hadar)의 곡이며, 1957년 가수 야파 야르코니(Yaffa Yarqoni)가 불러 주목을 받았다. 이스라엘 최고의 문학상인 비알릭(Bialik) 상을 수상한 도르와, 이스라엘 어린이 동요를 주축으로 다작을 남긴 대부 하다르의 만남은 유대 음악 분야의 또 하나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하바 나길라(Hava Nagilah)’, ‘황금의 예루살렘(Yerushalaim Shel Zahav)’과 나란히 이스라엘 포크계의 대표곡이 된 이 곡은 야르코니의 세계적인 활동으로 날개를 달았다. 중동 음악 시장 확장에 크게 기여한 야르코니의 활동은 헤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를 비롯해 나나 무스꾸리(Nana Mouskouri), 빅토르 하라(Victor Jara), 미리암 마케바(Miriam Makeba) 등 국제적인 가수들에게 큰 영감을 끼치며 새 버전의 ‘장미꽃 만발한 저녁’을 취입하게 했다.

현 시대의 인기 버전으로는 첼리스트 세쿠 카네 메이슨(Sheku Kanneh Mason)의 연주 음반이다. 2016년 BBC ‘올해의 젊은 뮤지션 대회’를 우승한 메이슨의 유연한 아르페지오는 현재가 아닌 과거의 구애를 추억하듯 서글픈 낭만성을 들려준다. 카자흐스탄 출신 가수 이리나 미카일로바(Irina Mikhailova)의 버전 역시 주목할 만한데, 달콤한 목소리와 함께 어쿠스틱 포크, 월드비트가 가미된 독특한 구성은 구애의 밤을 묘사하듯 부드럽고 은근하다.

‘장미꽃 만발한 저녁’은 종종 유대 결혼식에서 캐노피(결혼천막)으로 향하는 신부의 걸음에 맞춰 연주된다. 순결한 신부와 동행하는 이 전형적인 정박의 단조 선율은 낭만적인 가사와는 달리 엄숙한 혼인의 의미를 잘 드러낸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노래는 핀란드의 유하니 포스베리히(Juhani Forsberg) 신부에 의해 ‘걷는 사람의 길(Tiellä ken vaeltaa)’로 개사되어 루터 교회에서 불렸다. 또 다른 개사의 흔적은 ‘주님은 오직 한 분(Jeden jest tylko Pan)’으로서, 폴란드 카톨릭 교회의 성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경건하고도 애처로운 단조 선율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맞댄 사랑의 유희를 절묘하게 그려낸다. 마치 서로 다른 남녀가 결혼으로 한 몸을 이루듯, 엄숙한 결혼식 후에 기쁨의 피로연이 기다리듯 말이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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