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ss fifty-franc(CHF50)
Swiss fifty-franc(CHF50)

[아츠앤컬쳐] 호들러(Ferdinand Hodler, 1853~1918)는 인간의 정신성에 관심을 가졌던 대부분의 19세기말 화가들과 같이,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을 자신이 창조한 새로운 조형언어를 통해 표현해 낸 상징주의 화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호들러는 상징주의 화가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풍경화, 초상화 그리고 벽화에까지 작업 영역을 넓힌다. 국제적인 예술의 중심지를 찾아 조국을 떠났던 당시 대부분의 스위스 화가들과는 달리 국가적인 중요한 전환기에도 끝까지 스위스에 남아 있던 화가이며, 이는 그의 작품 형성의 중요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영역에 걸친 호들러의 작품들은 정치적으로 급변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던 당시의 스위스적인 요소들을 특징적으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들러는 1853년 스위스의 독어권 베른(Bern) 지방의 빈민촌에서 가구 세공인이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이후 급작스러운 부모님의 사망으로, 1867년부터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스위스 풍경 그림을 파는 좀머(Ferdinand Sommer)의 도제로 일했다. 이후 1871년 구두공이었던 삼촌의 집에서 기거하며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호들러의 초기 작품에는 그가 접했던 신체노동이나 가내수공업을 하는 노동자, 서민들의 생활 모습 등이 사실주의적인 화풍으로 그려진 것이 많다. <목수(the Joiner)>(1875), <수확하는 사람(the Reaper)>(1878) 등이 있는데, <목수>는 이후 약 15년간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노동자를 주제로 한 첫 작품이다.

Woodcutter(1910)_Hodler
Woodcutter(1910)_Hodler

이러한 주제는 이후에 <나무꾼(the Woodcutter)>(1910)과 같은 작품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은 1907년 설립된 스위스 국립은행이 새로운 50프랑 지폐의 디자인을 의뢰해서 완성된 것인데(이 지폐는 1911년 도입되었고, 1958년부터 회수하기 시작해 1978년 10월 1일부로 통용력을 상실함), 초기의 사실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신체 노동의 건강한 도덕적 가치를 담고 있다. 스위스가 가지고 있는 본원적인 생명력과 힘, 에너지를 상징한다.

통화를 중심으로 운용되는 시장경제질서에서 통화를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통화를 행사하는 등의 행위는 경제 질서와 거래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된다. 우리가 네모난 종이에 불과한 지폐를 사용하는 것은 내가 물건을 구입한 후 대금을 지급할 때 판매자가 이를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믿음이 깨진다면 사람들은 화폐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거래가 이루어지기 어렵게 된다. 이런 위폐의 파괴력 때문에 미국 독립혁명 당시 영국은 미국 달러를 대량 위조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스는 영국 파운드화를 대량 위조하여 폭격기로 공중에서 살포하려고도 했었다.

Lake Geneva from Chexbres(1905)_Hodler
Lake Geneva from Chexbres(1905)_Hodler

우리나라 형법 제207조에서는 행사할 목적으로 통화를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통화를 행사하거나 행사할 목적으로 수입 또는 수출한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형법 제207조는 보호의 대상인 통화를 국내통화와 외국통화로 구별하고, 외국통화도 국내에서 유통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여 법정형을 달리 정하고 있고, 그 중에서 형법 제207조 제1항 및 제4항은 ‘행사할 목적으로 국내통화를 위조 또는 변조한 사람’과 ‘위조 또는 변조한 국내 통화를 행사하거나 행사할 목적으로 수입 또는 수출한 사람’은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에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0조를 통해 형법 제207조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여 법정형의 상한에 ‘사형’을 추가하고 하한을 2년에서 5년으로 올려놓았는데, 특별히 형을 가중할 필요가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가중의 정도가 통상의 형사처벌과 비교하여 형벌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현저히 잃은 것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현재는 삭제된 상태이다. 가정용 프린터 기술이 워낙 발달한 요즘, 위조 지폐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그만큼 다른 범죄보다 처벌은 더욱 엄하다.

A씨는 2014년 부산 소재 본인의 집에 있던 잉크젯 컬러복합기로 양면을 복사하여 이를 칼로 자른 후 풀로 붙이는 방법으로 1만 원권 지폐 10매를 위조하였다(통화위조죄). 이후 A는 택시를 이용하고 택시기사가 택시비 2,800원을 요구하자 위조하여 소지하고 있던 1만원권 지폐 1장을 택시비로 지불하며 행사하였다(통화위조행사죄 및사기죄). 또한 A씨는 다른 택시기사에게도 위조하여 소지하고 있던 1만원권 지폐 1장을 택시비로 지불하며 행사하였다(통화위조행사죄 및 사기죄 각 추가). 이로써 A씨는 위조한 통화를 2회에 걸쳐 행사하였다. 법원은 A씨를 징역 1년 4월에 처했다.

또한 B씨는 최근 서울 소재 본인의 집에 있는 칼라복합사무기를 이용하여 5만원권 지폐 1장을 컬러복사한 후, 진폐 전면의 우측 신사임당 그림부분(지폐 우측 2/3 부분)을 제도용 칼로 정교하게 떼어내고, 떼어낸 부분에 위 복사한 위폐의 해당 부분을 스프레이 풀을 이용하여 붙이는 방법으로 5만원권 지폐 1장을 위조하였다. 그리고 B씨는 도너츠 구입대금을 지불하면서 위조한 5만원권 지폐 1장을 건네주어 이를 행사하였다. 법원은 B씨를 징역 5년에 처했다.

물론 본인이 위조지폐인지 모르고 사용한 경우에는 처벌 대상은 아니다. 드라마 촬영을 하는 스텝 C씨가 드라마 소품으로 사용되는 가짜 5만원권 지폐를 훔쳐 음식을 주문한 후 소품용 지폐를 건네주고 음식을 교부 받은 사건이었다. 이에 검찰은 C씨에게 절도(형법 제329조)뿐 아니라 위조통화행사죄(형법 제207조 4항), 사기(형법 제347조) 혐의도 적용해 기소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절도 및 위조통화행사 혐의 등으로 기소된 C씨에게 ‘절도’ 혐의만 인정하여 벌금 50만 원을 선고하고 ‘위조통화행사죄’와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사실관계를 파악해본 결과, C씨는 소품용 지폐가 워낙 정교한 나머지 위조지폐가 아닌 진짜 실물 지폐라고 착각한 것이었고, 정산 절차가 까다로운 음식점(패스트푸드판매)에서 위폐를 사용했는데, CCTV등을 통해서도 자신을 숨기려는 시도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범행을 의도한 자의 통상적인 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위조지폐인지 모르고 그 지폐를 사용한 경우에는 위조지폐를 사용한다는 인식이 없으므로 위조지폐를 사용하는 경우에 성립되는 위조통화 행사죄 및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드라마 촬영용 소품을 훔친 절도죄만 인정되었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주)파운트투자자문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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