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 ‘자화상’ 자료 : 국립중앙박물관
에곤 실레, ‘자화상’ 자료 : 국립중앙박물관

 

[아츠앤컬쳐] 1900년의 비엔나가 서울에 와 뜨거운 겨울을 만들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레오폴트 미술관(Musèe Leopold), 한국경제신문과 공동 주최한 전시회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가 2025년 3월 3일까지 진행 중이다. 현재 예약 입장권은 연일 매진 사태를 이어가고 있으며 10여 일 이후 정도라야 예약 관람이 가능한 상태다. 이러한 국민적 문화 열기가 한국의 문화적 저력이자 국가적 혼돈 속에서도 성장을 지속해 나가는 대한민국의 저력이라고 믿는다.

1900년 전후의 비엔나는 실제 세상의 중심이었다. 현재 잘나가는 뉴욕, 20세기 후반에 떴던 도쿄, 21세기에 떠오르는 싱가포르, 두바이 등은 1900년 당시 존재감이 없었거나 존재 자체가 없었던 도시들이다. 당시 비엔나는 세계 문화 중심지였다. 미술에서는 클림트와 에곤 실레가, 음악에서는 베토벤, 브람스를 승계한 말러와 브루크너가, 정신분석학에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건축에서는 비엔나 지하철 역사 등을 설계한 모더니즘 건축가 오토 바그너 등이 활약했다.

비엔나는 현재 전 세계 여러 기관에서 진행 중인 ‘가장 살기 좋은 도시(Livable City)’ 순위에서 10년이 넘게 1위 자리를 고수 중이다. 살기 좋은 도시의 조건은 주거 환경, 안정성, 쾌적성, 의료 교육 환경, 문화 수준 등이 포함되는데, 여기서 종합 1등이 바로 2025년 오늘 비엔나다. 왜 세계적 도시 평가 기관인 Mercer 컨설팅, 영국 발행의 세계적 인기 여행잡지 Monocle, Financial Times 등은 하나같이 비엔나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평가했을까. 그것은 바로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와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비엔나를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클림트의 저 유명한 ‘키스’는 비엔나의 벨베데레 궁전에 있고, 에곤 실레의 자화상들은 비엔나 레오폴트 미술관 소장이다.

베를린, 암스테르담, 런던 등 전 세계 곳곳에는 훌륭한 오케스트라들이 많다. 하지만 구태여 말러, 브루크너, 브람스, 베토벤, 하이든 교향곡의 정통 해석, 궁극의 해석을 찾아 들으려 한다면 바로 그들이 활약했던 도시에 가서 비엔나 필하모닉의 전용홀인 무지크페라인 황금홀 연주회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비엔나는 관광객들에게만 좋은 도시가 아니라 도시 평가 기관들은 진짜로 살기에 좋은 도시라고 한다. 일단 가장 안전한 도시다. 비엔나 사람들은 같은 독일어를 쓰는 독일 사람, 스위스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듯 느껴진다. 그것이 바로 문화 예술, 지금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와있는 클림트와 에곤 실레 등 때문이 아닐까.

비엔나는 1900년에도 그랬지만 2025년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클래식의 중심 도시다. 2025년 1월 1일 오후 7시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 등에서는 빈필 신년음악회를 생중계한다. 금년 신년음악회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리카르도 무티가 7회째 지휘를 맡는다. 무티는 특유의 극도로 절제된 바톤으로 빈필과 완벽한 호흡을 여러 차례 맞춰 왔다. 이 또한 기대되는 음악회로서 비엔나 시민들을 풍요롭고 여유있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서울이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비엔나를 일거에 따라붙기는 쉽지 않다. 서울은 특히 2025년 현재 지난 시간보다 나아지는커녕 더 살기 어려워졌고 더 힘든 시절을 지내고 있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전시의 입장권 매진 행렬은 분명 강력한 희망의 시그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외에 에곤 실레의 그림을 다수 접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클림트는 선배로서 에곤 실레를 미술계에서 많이 이끌어 주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선후배 두 사람은 모두 스페인독감으로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클림트는 1862년에 태어나 1918년까지 56년을 살았으나 에곤 실레는 1890년 태어나 1918년까지 클림트의 절반 28년간을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갔다. 에곤 실레는 짧은 생을 살면서 스캔들에도 휘말리고 사회적 비난도 받았는데, 그가 조금만 더 길게 활동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레오폴트 미술관보다 훨씬 더 큰 건물에서 선배 클림트의 그림들이 있는 벨베데레 궁전과 경쟁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 안타까움을 남긴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 Eco Energy 대표 / Caroline University Chaired Professor / 제2대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 전 예술의전당 이사 / 전 문화일보 정보통신팀장 문화부장 / 전 한국과학기자협회 총무이사/ ‘나라119.net’, ‘서울 살아야 할 이유, 옮겨야 할 이유’ 저자, ‘메타버스를 타다’ 대표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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