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사이먼 래틀 경 & 브루크너 9번. 무언가 묵직한 느낌이 온다. 사이먼 래틀이 원래 무거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1999년 44세의 나이로 베를린필 상임지휘자로 선출되었을 당시 그는 시티 어브 버밍엄 심포니라는 영국 변방의 교향악단을 화제의 음악단체로 만든 에너지 넘치고 왕성한 기획력의 젊은 지휘자였다.

이제 69세의 마에스트로로서 그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이끌고 지난 11월 20일, 21일 양일간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20일에는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2번, 브람스 교향곡 2번을 21일에는 베베른 오케스트라를 위한 6개의 소품,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2번,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연주했다. 래틀의 2일간의 연주회는 R석 47만 원부터 C석 8만 원까지 인터넷 오픈 1분여 만에 전석 매진됐다.

첫날 브람스 협주곡과 교향곡 연주회는 실패할 수가 없는 선택이다. 둘째날 베베른 관현악 오프닝과 브루크너 교향곡 메인 메뉴는 일단 갸우뚱하게 된다. 이에 대해 사이먼 래틀 경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21일 연주회에서 엄청난 사운드를 쏟아내며 한국의 청중들에게 천상의 소리와 같은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청중들은 피아니시모의 작은 브루크너 9번 3악장 피날레 이후 끝없는 앙코르 박수를 보냈다.

브루크너 9번은 그가 10년간 공을 들였음에도 3악장까지만 쓰고 미완성으로 남긴 작품이다. 왜 베토벤 이후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9번 이후의 교향곡을 쓰지 못했을까. 베토벤 이전에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은 최소 107개를, 모차르트는 공식적으로 41번까지 비공식으로 60여 개의 교향곡을 남기고 않았던가. 하이든과 모차르트에게 있어서 교향곡은 일반 관현악곡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가벼운 곡이었다.

그런데 베토벤은 교향곡이라는 카테고리를 아주 심각하며 만들기도 듣기도 쉽지만은 않은 그 무엇으로 바꾸어 놓았다. 과연 그는 악성이라 불릴 만하다. 베토벤의 직계 후배 브람스부터 베토벤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외경과 중압감으로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쓰고 또다시 고쳐 쓰면서 44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발표를 했다. 이것이 브람스가 교향곡을 4곡밖에 남기지 못한 중요 이유 중 하나다.

오늘날 교향곡 팬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말러도 제9번 교향곡이라는 이름의 중압감을 크게 의식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베토벤이 9번 합창을, 드보르작이 9번 신세계를 쓰고 세상을 떠났고 브루크너는 9번을 완성하던 중 세상을 떠났기에 더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 말러가 택한 방법은 사실상 아홉 번째 교향곡을 작곡했음에도 제9번이라는 이름 대신 ‘대지의 노래’라는 타이틀로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사실상 제10번에 해당하는 교향곡 1악장만 완성하던 중 사망하면서 부인 알마에게 악보를 파기하도록 했다. 역시 교향곡 9번은 힘든 난제 중 난제다.

사이먼 래틀 경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21일 롯데콘서트홀 연주에서 이처럼 복잡한 운명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압도적 감동으로 연주해 주었다. 사이먼 래틀 경은 베를린필 음악감독으로 엄청나게 사랑을 받았던 지휘자였다. 2018년 인기 절정에 있을 때 래틀 경은 스스로 사임을 결정했다. 그리고는 고국 영국으로 돌아가 런던 심포니를 맡았다가 작년 2023년부터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맡고 있다.

바이에른과 들려준 래틀 경은 베를린필 시절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일단 물리적으로 6년이 흘러 69세의 지휘자로 섰다. 하지만 그의 지휘는 베를린 시절 이상이었다. 바이에른과 함께한 래틀 경은 이제 과거의 래틀 경이 아니었다. 그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생략하려 했다. 그는 청중과 함께 바이에른의 연주를 함께 들으러 온 사람과 같이 절제된 동작만을 보였다. 그래서 10년을 썼음에도 3악장까지밖에 완성하지 못한 브루크너의 제9번 교향곡의 창작 과정의 어려움과 완성도를 아낌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 Eco Energy 대표 / Caroline University Chaired Professor / 제2대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 전 예술의전당 이사 / 전 문화일보 정보통신팀장 문화부장 / 전 한국과학기자협회 총무이사/ ‘나라119.net’, ‘서울 살아야 할 이유, 옮겨야 할 이유’ 저자, ‘메타버스를 타다’ 대표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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