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꽃을 흔들고, 시간은 잡을 수 없지만 계절의 빛을 바꿔 놓는다. 정현(Hyun Jeung)의 목판화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힘의 흔적을 담아내는 예술이다. 단순한 판화의 반복적 인출이 아닌, ‘과정’ 그 자체를 작품으로 확장시키며 목판이라는 매체의 본질을 새롭게 열어 보였다.
정현에게 판화는 예측할 수 없는 순간과의 조우이다. 나무판에 스민 잉크는 종이 위에서 예상치 못한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다시 작가의 개입을 기다린다. 작가는 이 불확실성을 생명을 불어넣는 틈으로 이해한다. 은행잎, 양귀비, 감나무와 같은 자연의 형상은 그의 판 위에서 끊임없이 변주된다. 같은 판에서 찍어낸 이미지라도 매번 다르게 스며들고, 각기 다른 빛과 결로 관객 앞에 선다. 결국 그의 작품 앞에 선다는 것은, 단지 이미지를 감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과 우연, 그리고 자연이 빚어낸 생성의 순간을 함께 경험하는 일이다. 바람이 꽃을 흔드는 찰나처럼, 그의 판화는 관객에게 새로운 울림을 일으킨다.
정현(Hyun Jeung / Jeung Hyun)
작가는 한국에서 성장한 후, 파리 1대학(Universite de Paris Pantheon Sorbonne)에서 미술학 학사, 석사, 그리고 박사를 마쳤다. 또한, 에콜 데 보자르 프랑스의 판화가이자 회화작가인 Jean-Pierre Pincemin을 사사하였고, 베이징에서 중국 목판화를 수학했다. 일본 판화화 중국 판화가 아시아 판화의 주류를 이루던 유럽에서 한글과 자연을 소재로 순수 판화 작업을 하며 현재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고 있다. 2002년 파리 시립 아티스트 살롱에서 판화 부문 1등 수상. 프랑스 국립도서관, 튀니지 문화부, 툴롱 아시아미술관, 그라블린 시립판화미술관, 파리 세르누시미술관 등에 작품 소장.
글 ㅣ 이혜숙
Art salon de H(아트 살롱 드 아씨) 대표
IESA arts & culture 프랑스 파리 예술 감정 및 아트 비즈니스 석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