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의 잔향

Sissel_Kyrkjebø_2013-03-21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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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앤컬쳐] 12월, 낮은 짧고 어둠은 길어지는 계절의 정점에서 ‘Innerst i sjelen’이 흘러나올 때면, 그 순간은 상상 속 거울이 된다. 시셸 슈샤바(Sissel Kyrkjebø)의 음성은 눈 덮인 호수와 고요한 숲처럼 내면 깊은 곳의 정적과 그리움의 관계를 섬세하고도 투명하게 비춘다. 마치 서늘한 애상과 따뜻한 기억이 마음 한가운데로 동시에 들어차듯, 영혼과 마음이 만나는 순간을 잔잔하게 그려내듯 말이다. 어쩌면 그녀가 부르는 ‘Innerst i sjelen’는 단순한 발라드를 넘어, 마음속 풍경과 맞닿은 한 편의 고즈넉한 시이다.

노르웨이의 음악들은 대부분 고요와 그리움 사이를 천천히 걷게 한다. 느리고 잔잔한 선율 속에서 한 음, 한 음이 내면의 공허와 울림 속으로 스며들 듯 말이다. 이러한 특성은 그것이 포크이든, 팝이든, 뉴에이지든, 혹은 그 모든 것을 결합한 것이든, 장르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내적 울림과 서정적 여정을 선사한다.

시셸의 목소리도 그러한데 그 어떤 곡에서든 결코 난폭하거나 잡아끄는 법이 없이, 나긋하지만 명료하게 눈 덮인 산의 투명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타이타닉(Titanic)>의 음악 감독 제임스 호너(James Horner)는 자신의 스코어들을 기꺼이 그녀의 목소리에 내어주었던 것이 아닐까.

‘Innerst i sjelen’의 뿌리는 노르웨이의 싱어송라이터 올레 파우스(Ole Paus)가 작사하고, 외르얀 잉글룬드(Örjan Englund)와 라르스 뵈르케(Lars Børke)가 작곡한 원곡에서 찾을 수 있다. 1980년대 말 원곡은 북유럽에서 이미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시셸의 재해석은 청자의 내면적 감정선을 어루만지며 곡에 깊이를 더했다. 사실상 그녀의 노래는 원곡의 서정성을 유지하면서도, 한층 더 섬세하고 다층적인 감정의 결을 살려내었다.

과하지 않은 피아노와 현악 중심의 편곡도 그녀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했는데, 고른 보폭과 같이 안정감을 부르는 리듬 역시 노래가 전달하는 내적 흐름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이러한 분위기 덕분에 시셸의 버전은 그녀의 동명 앨범 <Innerst i sjelen(1994)>에 실려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실제로 그녀의 버전은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약 15만 장이 팔렸고, 노르웨이 공식 앨범 챠트인 VG‑lista에서 1위를 기록하며 대표작이 되었다.

“영혼 깊은 곳에서 내 마음은 조용히 노래한다. 세상의 소음이 멀리 사라진 곳에서 난 자신과 마주한다...(중략) 영혼 깊은 곳에서 난 자신을 느끼고, 세상과 연결된 날 발견한다. 그 고요 속에서 모든 사물이 나와 함께 숨 쉰다.”

‘Innerst i sjelen’이 전하는 내면의 만남은, 노래가 사용된 노르웨이 오페라 <마녀들(Heksene, 2007)> 에서도 이어진다. 원작은 영국 작가 로알드 달(Roald Dahl)의 동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전체 음악은 올레의 아들인 마르쿠스 파우스(Marcus Paus)가, 대본은 올레 자신이 맡았다.

오페라 또한 대중적 인기를 끌었는데 시셸의 버전에서 표현된 투명하고 섬세한 감정선이 오페라에서도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Innerst i sjelen’이 흐르는 장면들은 관객을 내면의 고요 속으로 안내하며, 공간의 정적을 음악으로 잘 묘사해 냈다. 이로써 1980년대 말 탄생한 ‘Innerst i sjelen’은 세월을 거슬러 한 서정 가수의 목소리로도, 또한 극음악 안에서도 여전히 가치를 발휘한 셈이다.

사실상 이러한 가치는 북유럽 정서를 담은 단순한 노래의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 후에도 오래도록 맑고 투명한 잔향으로 스칸디나비아 한편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래는 청자의 내면 속 고요와 울림을 동시에 어루만지며, 서정적 여정을 천천히 이어갔다. 마치 노르웨이의 겨울 숲속에서 바람과 눈이 서로 조용히 스며들 듯이.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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