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4월의 크로아티아는 공기부터 그 결이 다르다.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지만, 이른 새벽 골목 어귀에는 차가운 공기를 단숨에 녹이는 달콤하고 묵직한 향기가 번지기 시작한다. 버터와 달걀, 그리고 은은한 럼 향이 뒤섞인 이 특유의 냄새를 맡는 순간,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직감한다. 드디어 긴 기다림 끝에 고대하던 부활절이 찾아왔음을 말이다.
바구니에 담긴 성스러운 첫 끼니, 블로소브
크로아티아의 부활절 아침은 성당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들이 성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아주 특별한 동행이 있다. 바로 가문의 정성과 신앙이 깃든 부활절 바구니다. 대대로 이어져 온 전통 의식인 블로소브(Blagoslov, 축복)를 위해 가족들은 전날 밤부터 분주하게 손을 움직인다.
정성스레 수놓은 하얀 천을 깐 바구니 위로 삶은 달걀, 붉게 물들인 피사니차(Pisanica), 그리고 이 날의 주인공인 핀차와 훈제 햄(Šunka), 알싸한 서양고추냉이인 흐렌(Hren)이 차곡차곡 자리를 잡는다. 성당 앞마당에 모인 사람들이 바구니를 내려놓고 사제가 성수를 뿌리며 축복을 건네는 짧은 찰나, 바구니 속 음식들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한 해의 안녕과 가족의 건강을 상징하는 신성한 첫 끼니로 거듭난다. 이 의식은 사순절 동안 이어온 절제와 고행을 끝내고 기쁨의 축제로 들어가는 관문과도 같다.
부활의 상징을 새긴 황금빛 빵, 핀차
그 식탁의 중심에는 언제나 핀차가 놓여 있다. 달마티아 지방을 대표하는 이 빵은 겉보기에 평범한 둥근 빵 같지만, 상단에는 반드시 십자가 모양의 깊은 칼집이 새겨져 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부활의 상징이자 예수의 고난을 기리는 경건한 의식의 흔적이다. 반죽을 오븐에 넣기 전, 정성스럽게 십자를 긋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크로아티아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기도와 같다.
핀차의 진가는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달걀노른자와 버터를 아낌없이 넣어 황금빛을 띠는 반죽은 레몬 제스트와 오렌지 껍질, 그리고 바닐라의 풍미를 머금어 우아한 향기를 내뿜는다.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손으로 치대어 만든 묵직하고 촉촉한 식감은 프랑스의 브리오슈와 닮았으면서도, 할머니의 손에서 어머니로 이어져 온 내림 손맛 특유의 투박하고 따뜻한 온기가 서려 있다. 이 빵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기억의 매개체인 셈이다.
단짠의 미학,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알싸함의 변주
재미있는 점은 이 달콤한 핀차가 짭짤한 훈제 햄과 만났을 때 비로소 완벽한 미식의 삼각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크로아티아식 부활절 햄은 오랜 시간 나무 향을 입혀 훈연하고 삶아내 결이 굵고 향이 깊다. 육질 사이에 배어든 훈연 향은 핀차의 달콤한 버터 풍미와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강판에 간 흐렌 소스를 듬뿍 얹는 것이 크로아티아 식탁의 핵심이다. 입안 가득 퍼지는 빵의 단맛과 햄의 깊은 감칠맛, 그리고 마지막에 코끝을 강렬하게 찌르는 흐렌의 알싸함은 사순절 동안 절제해온 미각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단맛에 매료되었다가, 마지막에 정신이 번쩍 드는 매콤함으로 마무리되는 이 맛의 흐름은 마치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는 생명력의 분출과도 닮아 있다.
소박한 바구니에 담긴 거대한 사랑
성당에서 축복을 받고 돌아온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핀차를 나누는 시간, 창밖으로는 아드리아해의 4월 햇살이 보석처럼 부서진다. 화려한 진수성찬은 아닐지라도, 그 소박한 바구니 안에는 긴 겨울을 견딘 믿음과 계절의 기쁨,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랑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아이들은 핀차의 십자가 부분을 먼저 떼어먹으려 장난을 치고, 어른들은 햄을 썰며 서로의 안녕을 묻는다. 크로아티아의 부활절 아침, 핀차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는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그것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한 공동체의 문화적 유산과 축복의 기억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경건하고도 아름다운 행위다. 4월의 크로아티아를 방문한다면, 당신은 그 황금빛 빵 한 조각에서 아드리아해의 봄 전체를 맛보게 될 것이다.
글 ㅣ 김수정
(주)파인푸드랩 대표 | 한국식음료세계협회 회장 | 경희대학교 캠퍼스타운, 서울먹거리창업센터 멘토 12년 경력의 식품 개발 전문가, 한식진흥원 및 다수 기업/지자체 레시피 개발 및 강의 이력 chefcrystalki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