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파리의 3월은 화사한 봄 날씨와 차디찬 겨울 날씨가 교차하며 파리지앵들을 헷갈리게 한다. 3월 초에는 반팔을 입고 활보하는 시민들도 제법 보였다. 열흘 정도 따뜻한 초봄 날씨가 지속되다가 며칠째 비가 왔다 멈췄다 하면서 다시 겨울이다. 동물보호 차원에서 패딩과 인조 모피를 입은 여인들이 눈에 띈다. 모피를 입고 다니면 따가운 시선을 경험할 수 있다. 꽃샘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에 속해 있는 룩셈부르크 미술관(2026년 2월 18일~7월 19일, 레오노라 캐링턴 회고전 개최 중)으로 발길을 향해본다.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은 누구인가?
그녀는 1917년 영구의 랭커스터 근교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보수적이고 현실적인 영국인 사업가였다. 한편, 어머니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가톨릭 신자였다. 이렇게 출신과 문화가 다른 부모님에게서 교육받은 그녀는 어려서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아일랜드의 전설과 신화를 좋아했던 그녀는 마치 다른 세상을 꿈꾸는 아이 같았다. 열 살이 되기 전에 당시 다른 명문가 자녀들처럼 가톨릭 수도원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엄격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상의 세계에 빠지곤 했다. 결국 학교에서 경고와 정학을 번복하며 고통스러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는 훗날 그녀를 피렌체의 미술 학교에서 유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작품을 보고 큰 감명을 받고 화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1935년에는 런던의 첼시 미술학교에 진학하며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녀의 광범위한 예술세계는 꿈과 환상 그리고 초현실 사이의 여정과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찍이 피렌체와 파리를 비롯해, 남프랑스, 스페인, 뉴욕 그리고 멕시코에 거주하면서 영감을 받았다. 더불어 어려서부터 신화와 전설을 좋아했기에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를 그림과 글을 통해 표현했다. 혹자는 그녀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작가라고 칭한다.
캐링턴과 초현실주의
그녀와 초현실주의 만남은 피렌체 미술학교를 다닐 무렵 파리의 한 갤러리에서 본 전시를 통해서였다. 더불어 이는 그녀가 화가로 성장하게 되는 최초의 동기가 되었다. 그녀는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작가인 막스 에른스트의 연인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37년 영국의 초현실주의 국제 전시의 에른스트의 작품에 크게 매료되었으며, 전시 이후 파티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들은 함께 파리에 가서 살바도르 달리와 호안 미로와도 교류하며 초현실주의에 대한 열정을 키워 나갔다.
한편, 1939년 2차 대전으로 독일인 에른스트는 프랑스 군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고 후에는 독일의 비밀경찰에게 체포되면서 굴곡진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가 미국으로 탈출하면서, 캐링턴은 심각한 불안과 정신장애를 겪었다. 그들은 각각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 결혼하였다. 에른스트는 미국인 후원자인 구겐하임과 캐링턴은 멕시코 외교관과 결혼하며 멕시코로 이적하였다. 두 결혼 다 장기간 지속되지 못했다.
캐링턴은 프리다 칼로와 더불어 초현실주의 최고의 여성 거장이다. 그녀의 작품은 남성작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달리나 에른스트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에서 영감을 받았다면, 캐링턴은 독자적인 전설과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였다. 그녀는 삶의 여정에서 발견한 켈트족의 전설, 멕시코의 신화, 아즈텍 문명을 환상적으로 표현하였다. 더불어 말과 여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종종 표현하였다.
글·사진 ㅣ 이화행 Inès LEE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파리 소르본 미술사대학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