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ambologna - Ratto delle sabine Loggia dei Lanziin piazza della Signoria a Firenze 1580
Giambologna - Ratto delle sabine Loggia dei Lanziin piazza della Signoria a Firenze 1580

[아츠앤컬쳐] 보편적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은 이탈리아인이라고 생각한다. 1400~1550년대 후반에는 정치적으로 통일된 이탈리아가 아닌 지리적 이탈리아가 존재했다. 사실상 거대 도시, 공화국, 공작령, 주(州) 등 다양한 형태의 이 모든 지역은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과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데 공헌했다.

당시 예술가들은 그들이 속한 지역의 문화적 영향을 그들의 작품에 투영했고 또한 이러한 이유로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며 타 예술가들의 작품을 대하고 그들과 소통했다. 따라서 이탈리아는 예술가들 사이의 지속적인 교류를 위한 장소였다.

Gianbologna - ritratto Rijksmuseum,Kunsthistorisches Museum,Amsterdam
Gianbologna - ritratto Rijksmuseum,Kunsthistorisches Museum,Amsterdam

미켈란젤로(Michelangelo) 이후 1500년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조각가는 사실상 이탈리아인이 아닌 잠볼로냐(Giambologna, 1529~1608)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잠볼로냐로 불리지만 모든 계약서와 작품마다 서명된 그의 본명은 쟝 드 볼로뉴(Jean de Boulogne)로 그는 1529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 두에(Douai)에서 태어났다.

사실상 그는 플랑드르 즉, 오늘날로 말하면 벨기에로 부르는 지역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한 벨기에 조각가의 공방에서 일하던 잠볼로냐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로마로 향하며 이곳에서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대하게 된다.

Giambologna Fata morgana Palazzo Strozzi Firenze 1573
Giambologna Fata morgana Palazzo Strozzi Firenze 1573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였고 로마에 2년간 머물며 당대 조각가들의 작품과 개별적 소장품을 통해 고대 동상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주로 흙과 밀랍으로 연습을 시작하였는데, 후일담으로는 그 모형 중 하나를 본 미켈란젤로가 그를 칭찬하기는커녕 아주 수치스럽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미켈란젤로라면 작품의 형태를 완벽하게 변형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은 잠볼로냐에게 미켈란젤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려준다. 잠볼로냐는 그의 인생을 통해 미켈란젤로를 모방하고 또 극복하려 애를 썼다.

잠볼로냐는 로마에 잠깐 머물렀다 결국 피렌체에 머무르게 된다. 그는 1608년 사망하기 전까지 반세기 이상을 머무르던 이 도시에서 자신이 1500년대 조소 체계의 진화를 대체할 운명임을 알지 못한다. 그의 표현법은 후일 유럽 황실을 배경으로 활동한 뛰어난 예술가들과 이탈리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는 실제로 위대한 조각가 카노바(Canova, 1757~1822)의 시대가 오기까지 이탈리아의 조소 및 예술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잠볼로냐는 피렌체에서 즉각 메디치 가문의 주목을 받았고 특히 코지모1세(Cosimo I)와 프란체스코 1세(Francesco I de’ Medici)는 그를 인정하고 굉장한 보호자이자 후원자가 된다.

GIAMBOLOGNA IL RATTO DELLE SABINE STAMPA DEL 1583 Tratto da Sermantelli - composizioni di diversi autori in Lode del Ritratto della Sabina  Firenze 1583
GIAMBOLOGNA IL RATTO DELLE SABINE STAMPA DEL 1583 Tratto da Sermantelli - composizioni di diversi autori in Lode del Ritratto della Sabina Firenze 1583

이를 두고 예술가들의 삶을 집필한 르네상스의 뛰어난 화가 조르조 바자리(Giorgio Vasari, 1511~1574)는 ‘군주들의 덕목으로 큰 은혜를 입은 매우 특별한 젊은이’로 잠볼로냐를 묘사한다.

그런데 왜 1500년대 이탈리아 미술사에 이 플랑드르 조각가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미켈란젤로에게 조각은 ‘분리’를 의미한다. 즉, 조각상에 영혼과 생각을 부여하려면 대리석의 덩어리로부터 그 일부분을 떼어내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신플라톤주의 관념처럼 대리석 덩어리가 조각의 생명이자 영혼이며 조각가는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함으로 <모세(Mosè)>나 <피에타(Pietà)>와 같은 완벽한 예술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Giambologna - Colosso dell' Appennino Villa Demidof 1580
Giambologna - Colosso dell' Appennino Villa Demidof 1580

반면 잠볼로냐에게 조각은 ‘추가’를 의미한다. 이는 조각가가 자신의 작품에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작업으로, 이 추가 작업에는 조각가가 무엇을 어떻게 작품에 더하여야 하는지에 관한 지식과 함께 예술적 발상과 기교를 필요로 한다. 이 무언가를 추가하는 작업은 잠볼로냐에게 청동을 사용한 작품들의 제작을 가능하게 한다. 그는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점점 범위를 넓혀가며 또한 대리석 외의 다른 소재들을 사용하여 그의 풍부한 예술성을 표현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 예로 <아펜니노 거석상(Colosso dell’Appennino)>을 들 수 있다. 그의 성숙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14m의 높이로 제작되었으며 현재 빌라 드미도프(Villa Demidoff)로 알려진 프라톨리노(Pratolino) 지역의 메디치가(家)에 있다. 거석상은 군주의 오락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외부의 연못 아래로 물을 쏟아내는 형태로 해면과 석회질로 꾸며졌다.

​Giambologna_Mercurio_volante MUSEO DEL BARGELLO 1580.jpg​
​Giambologna_Mercurio_volante MUSEO DEL BARGELLO 1580.jpg​

또한 잠볼로냐는 청동을 사용한 완벽한 소형 작품들을 만드는데 특별히 <비상하는 메리쿠리우스(Mercurio volante, 1580)>는 진정한 조각의 혁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잠볼로냐 이전의 조각품들은 바티칸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처럼 관람자가 정면에서 주시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관람자는 작품의 정면을 주시해야 한다. 잠볼로냐는 감상을 위한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데 그의 작품엔 더 이상 주된 시점이나 고정된 지점이 없이 둥글고 회전된 나선형의 형태를 지닌다. 즉 관람자가 한 곳에 눈을 고정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위치를 바꾸면서 나선을 따라 움직이게 되므로 더 이상 작품의 중심점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관점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은 1580년 완성한 <사비네 여인들의 약탈(Il Ratto delle Sabine)>이다. 4m 높이의 이 작품은 잠볼로냐가 단지 금속 작품에만 능하며 위대한 조각품의 창조와는 거리가 멀다고 폄하하고 시기했던 당시 예술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조각상은 현재 피렌체의 우피치(Uffizi) 부근의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내 로지아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화랑에 있다. 이 작품에서 잠볼로냐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보다 불의 혀와 같이 갑작스럽고 야단스러우며 상승된 서로 얽히고 또아리진 나선형의 형태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잠볼로냐는 세 형상의 동작 가운데 움직임의 시점을 작품에 투영하며 미켈란젤로의 엄숙하고도 극적인 영혼주의를 넘어서며 완벽한 작품을 창조한 것이다. 잠볼로냐는 관찰자의 지대한 관심을 끌 만한 놀라운 것을 원했는데 무엇보다 부드럽고 유연한 신체의 표현은 미켈란젤로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또 한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더 깨닫게 한다. 그것은 바로 여인의 허벅지를 움켜잡은 중간 인물의 손으로, 여인의 살에 박힌 손가락들은 관능적이면서도 처음으로 조각품에 극적 형식을 부여한다. 

Giambologna -Ratto-delle-sabine particolare
Giambologna -Ratto-delle-sabine particolare

1583년은 이탈리아가 루터와의 반혁명의 한 가운데 있던 시기이며 약 십 년 후 바로크라 불리는 예술사조와 함께 베르니니(Bernini, 1598~1680)의 놀라운 극적 조각의 시대가 시작된다. 그러나 베르니니의 작품 중 하나인 <프로세르피나의 납치(Il ratto di Proserpina, 1621)>는 잠볼로냐를 회상하게 되는데 무엇보다 프로세르피나의 신체를 거머쥔 손들이 잠볼로냐의 작품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Gian Lorenzo Bernini -Ratto di Proserpina 1622Galleria Borghese Roma
Gian Lorenzo Bernini -Ratto di Proserpina 1622Galleria Borghese Roma

잠볼로냐는 바로크 시대의 전반적 특징인 극적 형식을 처음으로 작품에 투시한 뛰어난 조각가로 1500년대 조소의 새로운 동향을 만들어나간다. 위대한 잠볼로냐는 미켈란젤로와 베르니니 사이의두 가지 표현 방식의 가교(架橋)이며 미켈란젤로의 본질적 영혼과 베르니니의 유희 사이를 연결한다. 그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전환을 가능케 한 이탈리아인보다 더 이탈리아적인 플랑드르 예술가이다.

번역 | 길한나 백석예술대학교 음악예술학부 교수

글 | 로베르토 파지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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