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베네치아의 화가
[아츠앤컬쳐]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 중 조르조 가스파리니(Giorgio Gasparini)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매우 중요한 인물로 ‘대(大) 조르조’라는 뜻의 조르조네로 불린다.
조르조네는 약 1478년경 카스텔프랑코 베네토(Castelfranco Veneto)에서 태어나 아주 어린 나이에 베네치아로 이주한 후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의 공방에서 풍경화에 대한 열정과 색감의 취향을 터득했다. 그는 도제 과정이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가 몇몇 현지 예술가들과 함께 프레스코 기법을 특화하여 이를 리알토(Rialto) 다리의 독일상관백화점(Fondaco dei Todeschi)과 같은 베네치아 궁들의 내부 및 외장 장식을 했다. 조르조네는 베네치아 출신 화가들의 대부로 불렸는데 그를 통해 이탈리아 회화의 기술과 구성이 결정적인 발전을 거듭했기 때문이며, 또한 티치아노(Tiziano)같은 특출한 화가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조르조네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가 천문학과 점성술, 그리고 수학에 대한 큰 호기심과 열정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호기심과 개방성은 그 시대로서는 매우 신선하고 대단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베네치아를 방문한 레오나르도(Leonardo)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그리고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작품에도 큰 흥미를 느끼고 그들로부터 새로운 기법들을 배웠다.
사실상 조르조네는 단 한 명의 스승이 아닌, 보다 다양한 방면으로 지속적으로 배우며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그의 특성은 무엇보다 색채감에 있는데, 이는 빛의 표현과 양질의 색상, 그리고 옅은 밀도감에도 깊이를 지닌 배경에 나타나며, 스푸마 기법의 색조회화는 부드러운 풍경들을 담아내며 새로운 화풍을 탄생시킨다.
먼저 색채에 관한 이론을 언급하기 전, 이 위대한 화가의 상징성과 마법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1502~1503년의 작품 <이중 초상화(Doppio ritratto)>에는 두 젊은이가 보이는데 이들은 각각 전면과 후면에서 관람자를 바라보지만, 한 명은 정면을 향하며 다른 한 명은 살짝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어깨 너머의 젊은이는 도전적인 시선을 지녔고 그 앞의 소년은 나른한 몽상에 잠겨 있으며 어두운 색감의 옷들은 두 인물의 사색의 순간을 강조하듯 보인다. 전면의 소년은 오른손으로 머리를 받쳐 고개가 기울어졌고 왼손에는 과일을 쥐고 있는데, 쓴맛의 야생 오렌지는 당시 우울한 인간들의 전형적 기질인 ‘감미로움과 고통의 양존성’을 상징한다. 또한 어두운 색채감은 의복의 금을 두드러지게 하여 재화(財貨)의 부패성을 나타내며, 붉은색 과일 또한 인간의 불안정성을 상징한다. 조르조네의 이러한 화풍은 카라바조(Caravaggio)에게 계승되어 심리학적이며 상징적인 회화가 시작되는데 카라바조의 탄생보다 무려 7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또 다른 중요한 작품은 <세 명의 철학가(I tre filosofi)>이다. 베니스는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다양한 민족과 지식의 조화를 통해 문화적, 외적 실험의 중심에 있었다. 1500년대 베네치아의 예술 후원자들은 상류계급에 속했고 풍부한 문화적 소양을 갖추었으며, 궁궐과 방마다 전시된 예술 작품들은 부의 상징이었다. 이 부유층 사람들은 예술가가 소수의 사람들과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상징적 의미의 작품들을 그려 주길 원했는데, 그들이 부유하면 할수록 상징성은 더욱 복잡하여졌음에도 이를 판독함으로 자신들의 문화적 소양을 타인에게 과시하곤 했다.
위의 그림 또한 매우 비밀스럽고 신비한 해석을 필요로 하는데 세 우화적 인물들은 각기 다른 연령층의 다양한 문화적 단계를 나타낸다. 오른쪽의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은 중세적 사상의 우화이고, 중간의 중년은 아랍 문화를 대표하며, 마지막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젊은이는 인본주의 문화의 우화로 해석된다. 이 세 형상은 중세의 주요 교양 과목인 ‘천문학’과 ‘산술’ 및 ‘기하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여러 가지 해석들을 도출하며 특별한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그려진 장면이라 볼 수 있다.
<La tempesta(폭풍)>은 또 다른 불가사의를 지닌 가장 신비스러운 작품이다. 무엇보다 배경과 색상, 그리고 색조회화의 아름다움 외에도, 금빛 번개와 다양한 녹색 명암으로 분위기를 자아낸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자연의 마성을 열렬히 찬미한 이 그림은 아직까지도 정의되지 않은 무수한 논제와 가설들을 수반하는데, 그 어떤 지식으로도 이 작품의 불가사의와 우화적 내용을 설명하기에 어렵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모진 관계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으며, 더 깊고 신비한 상징적 의미에 관해서는 다음 칼럼을 통해 설명하려 한다.
<잠자는 비너스(La Venere dormiente)>는 아마도 수 세기에 걸쳐 다른 화가들에게 가장 많이 모방되고 인용된 그림일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현대미술사를 통틀어 완전히 벌거벗은 여성을 그린 첫 번째 작품이며, 이로 조르조네는 혁신가로 불리며 수많은 화가들은 고전적 영감으로 가득한 이 작품을 모방하여 새로운 장르가 개척된다.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의 특별한 자세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Venere di Urbino)>를 시작으로, 루벤스(Rubens), 앵그르(Ingres), 마네(Manet) 등 후세의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는데 그 사례는 1500년대에서 아방가르드 시대인 190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삶이 항상 인간에게 관대하지만은 않듯, 1510년 32살의 조르조네는 불행히도 흑사병으로 죽어 베네치아의 한 검역소에 버려진다. 오로지 12년 동안 그림만을 그리다 사라진 르네상스의 화가 조르조네는 유럽 미술사의 대부로 불리며 짧은 인생에 강렬한 작품을 남겼다.
번역 | 길한나 백석예술대학교 음악예술학부 교수
글 | 로베르토 파시
저널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