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기다림과 고독의 세레나데
[아츠앤컬쳐]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밤, 오지 않을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다려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숨막힐 듯 아름다운 순백의 공간과 그곳을 채우던 절망의 목소리를. 빈 가슴에 주먹질을 하던 그 목소리는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끔씩 달갑지 않은 독감처럼 찾아오곤 하는데, 이럴 땐 그저 따뜻한 차 한잔과 흘러간 노래 몇 곡이 썩 좋은 비상약이 되어준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듯 아다모의 ‘Tombe la neige’를 따라 부르다 보면 서글픈 기억도 소중한 추억으로 가슴에 담아지듯.
‘Tombe la neige(1963)’는 살바토레 아다모(Salvatore Adamo)의 감성적 발라드 샹송이다. 아다모의 시적 감수성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어우러진 이 곡은 낭만적이며 상징적인 가사와 독백이 인상적이다. 눈 오는 밤의 적막함 그리고 만남의 불발로 인한 절망감이 중첩된 가사는 소박한 단조 선율과 후렴구, 볼레로 록(Bolero Rock)의 리듬구를 갖는 단조로운 음악 구조를 풍부하게 채우며 대중의 공감을 끌어낸다.
성장기로부터 빅토르 위고(Victor Hugo)나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의 시에 열중한 아다모의 문학적 소양은 ‘Tombe la neige’ 뿐 아니라 ‘상투아 마미(Sans toi mamie,1963)’ ‘밤(La Nuit,1964)’ ‘인샬라(Inch'Allah,1967)’ ‘작은 행복(Petit bonheur,1970)’ 등 그의 수많은 자작곡들에 섬세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잘 표현되어 있다.
“눈이 내린다…그대는 오지 않으리라! 눈은 내리고 내 마음은 검
은 옷을 입는다. 비단과 같은 행렬은 하얀 눈물로 가득하고 가지 위의
새는 저주로 울부짖는다. 절망은 내게 오늘 밤 그대가 오지 않으리라
외치지만 아직도 눈은 내린다. 어찌할 도리도 없이…!”
음악적인 관점에서 아다모의 샹송들은 프랑스의 유명 작곡가이자 가수인 조르주 브라상(Georges Brassens)의 영향과 상징적 낭만성, 그리고 프렌치 팝(French Pop)이 절충된 세련되고 독특한 발라드 스타일로 분류된다. 단순하면서도 애잔한 멜로디와 사랑과 인생의 명상을 솔직하게 표현한 아다모의 음악은 6~70년대 새로운 샹송 붐(Boom)을 일으키며 그를 국제적 스타로 거듭나게 한다. 같은 시기 유럽 음악시장에는 새로운 샹소니에(Chansonnier)와 가수들이 인기의중심에 서며 입지를 다지는데, 바로 샤를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 세르주 갱스부르(Serge Gainsbourg), 프랑소아즈 아르디(Francoise Hardy), 미레유 마티외(Mireille Mathieu), 실비 바르탕(Sylvie Vartan), 다니엘 비달(Daniele Vidal) 등이며 이들을 통해 수많은 명곡들이 세계 음악 시장에 유입되어 사랑받는다.
이들의 곡들은 국내에서도 스크린과 라디오를 통해 젊은 층들을 사로잡았으며 대표적인 곡으로는 ‘샹젤리제(Aux Champs Elysees)’, ‘마이 웨이(Comme D'habitude)’, ‘어떻게 안녕이라고 말할까(Comment Te Dire Adieu)’, ‘너무 늦었어요(Il Est Trop Tard)’, ‘애욕(Je T'Aime Moi Non Puls)’, ‘마리차 강변의 추억(La Maritza)’, ‘Monaco(모나코)’,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 등이 있다.
한편 ‘Tombe la neige’를 세계 8개국 언어로 취입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아다모는 이후 연이은 히트곡들을 발표하여 전 세계 8천만 장 이상의 앨범과 2천만 장 이상의 싱글 판매량을 기록하며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음악가 반열에 오른다. 그의 대표곡 ‘Tombe la neige’는 아즈다 페칸(Ajda Pekkan), 로랑 불지(Laurent Voulzy), 알렉산드라(Alexandra), 에밀 고로베츠(Emil Gorovets), 서소붕(Paula Tsui), 남명전(Wang Ming-Chuen) 등 동서양을 막론한 유명 아티스트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샹송의 수식어로 불릴 만큼 각광받았을 뿐 아니라, 70년대 이후 국내에서도 이숙, 루비나. 김추자, 계은숙에 의해 ‘눈이 내리네’로 취입되어 낭만적이며 이국적인 샹송의 정취를 한껏 전달하게 된다.
아다모 역시 수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내한공연을 통해 수많은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는데, 무엇보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으로 폐국을 맞은 동양방송(TBC)의 고별방송 중 ‘눈이 내리네’를 한국어로 부른 그의 영상은 당시 혼돈의 시대에 놓여있던 수많은 팬들의 가슴을 울리며 두고두고 회자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눈 오는 날의 추억 하나쯤은 지니고 산다. 대부분의 추억이 서럽거나 절망적일지라도 그들은 그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 한다. 추억은 때로는 독백이 되거나 노래가 되기도 하며 가끔은 타인의 노래에 실린 고백이 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아다모의 ‘Tombe la neige’는 수많은 고백을 실은 고독의 세레나데이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예술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