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으로부터의 구애

[아츠앤컬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버거워질 때 사람들은 그만둘 이유를 하나둘꺼내 든다. 감정이 지나간 자리엔 그저 무미건조한 계산만이 남아서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를 다시 만나더라도 처음만큼 정서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잃을 것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그러나 ‘작은 참새’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골목에서 샹송 몇 구절을 부를 때 발밑에 던져지던 동전 몇 닢뿐. 길거리 여가수였던 어머니는 전쟁 통에 떠났고 곡예사 출신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인 외할머니에게 그녀를 보냈다. 그도 여의치 않자 어린 피아프는 매춘업소를 운영하던 친할머니 집에서 버려진 듯 살았고, 결핍을 너무 빨리 배운 까닭에 성년이 되고 이름이 알려진 가수가 되어서도 언제나 외롭고 허전했다. 그래서 약을 찾듯 사랑을 찾았고 외롭지 않으려 노래를 불렀다.

“그가 나를 꼭 껴안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일 때 나는 장밋빛 인생을 봐요. 그가 사랑을 속삭이거나 일상을 얘기할 때도 나는 무언가를 느낀답니다.
그는 내 마음속의 행복 자체이며 나는 그 이유를 알아요.
그는 나를 위해, 나는 그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는 생을 걸어 내게 맹세했고 그걸 안 순간 난 느꼈죠. 심장이 마구 뛰고 있다는 걸.”

그저 십여 분 만에 탄생한 이 가사는 세기의 미남 배우 이브 몽땅(Yves Montand)과 사랑에 빠진 그녀의 마음 자체였다. 물랭루즈 공연 시 갓 데뷔한 이브 몽땅을 생각하며 떠오른 가사를 풀어나간 이 곡은 당시 그녀가 얼마나 그에게 빠져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계산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던 피아프는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의 이브 몽땅을 성공의 문턱까지 이끌었지만, 마르셀 까뮈 감독의 영화 ‘밤의 문(1946)’에서 ‘고엽’으로 인기를 끌게 된 그는 자연스레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Édith Piaf
Édith Piaf

물론 그의 빈자리를 메꾸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그녀가 느낀 배반감은 무수히 많은 남자들과의 염문으로도 채워질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세계 미들급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Marcel Cerdan)을 알게 되고, 그가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비난 따위는 아랑곳없이 둘은 서로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세르당은 1949년 뉴욕으로 그녀를 만나러 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죽게 되고 피아프는 또 혼자가 되어 세상에 자신을 던져버린다. 이때 그녀의 눈물로부터 탄생한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는 이생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담고 있어 한없는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세르당을 잃은 후 누더기가 된 그녀의 마음은 세계적인 인기와 쏟아지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술과 마약, 그리고 방종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더욱이 다섯 차례에 걸친 교통사고와 그 후유증은 그녀를 모르핀에 의지하게 했고 그런 가운데도 그녀는 허약한 정신과 육신을 오로지 공연과 레코팅에 쏟아 부며 쇠약한 나날을 견뎠다.

이런 그녀의 생에 마지막 열정이 찾아왔는데 바로 21세나 어린 그리스 출신의 헤어디자이너 테오 사라포(Théo Sarapo)였다. 이 열정은 그녀를 다시 세간의 심판대에 오르게 했지만 그럼에도 둘은 파리 16구 시청에서 결혼까지 하며 사랑을 지켜나갔다. 피아프는 테오와 함께 ‘사랑은 뭐에 쓰나(A Quoi Ca Sert L'amour)’를 듀엣으로 발표하며, 그를 가수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혼 이듬해인 1963년, 병세가 악화된 피아프는 4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7년이 지난 어느 날 테오마저도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어 그녀 옆에 나란히 묻혔다.

Édith Piaf 묘지
Édith Piaf 묘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노래보다 ‘사랑의 행복’을 가장 잘 표현한 ‘장밋빛 인생’은 피아프를 가장 많이 닮았다. 단순하고 열정적이며 솔직한 그녀의 노랫말은 가끔은 너무 쉽고 단순하여 작곡가들에게 무시되기도 했지만, 대중들은 그런 그녀의 노래를 너무나 좋아했다. 피아프의 노랫말은 행복의 절정을 표현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엔 절정을 넘어선 그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그녀 이후에 무수히 많은 가수들이 ‘장밋빛 인생’을 불렀지만 첫 소절을 타고 흐르는 피아프의 목소리가 그들과 구별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마치 사람의 표정에서 내면이 읽히듯 그녀의 목소리에는 빛의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가 느껴진다. 힘차지만 떨리는 듯한 바이브레이션의 깊이는 백지와 같은 내면을 꽉 채운 기억의 저편으로부터 들리는 진동과 같으며, 그 안에는 미쳐 아물지 않은 상처투성이의 고통스러운 자아가 터질 듯 울리고 있다.

거렁뱅이 아버지와 곡마단에서 잔 심부름으로 연명하던 시간들, 푼돈을 위해 그 어떤 것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던 암울한 성장기, 17세에 낳은 딸을 뇌수막염으로 잃고도 장례비를 구하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던 치욕감, 그녀를 길거리에서 카바레로 끌어준 르플레(Louis Leplee)의 석연치 않은 피살과 수사, 그리고 인생을 통틀어 가장 사랑했던 세르당의 죽음 등 그녀는 말로 할 수 없던 고통을 단조로운 가사에 기대어 지워 나갔다.

피아프는 종종 죽음보다 외로움이 더 두렵다 했고 노래를 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라 했는데, 그것은 사랑과 노래가 빠진 인생에서 자신의 척박한 자아와 조용히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리라는 추측을 해본다. 그녀의 ‘장밋빛 인생’은 가장 춥고 배고픈 자가 따뜻한 음식 한 끼만을 소원하듯, 결핍으로 가득한 그녀의 인생이 갈구하던 단 하나의 사랑, 그것뿐이었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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