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삶이란 무엇일까? 중국 작가 위화는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소설에서 “인생은 무거운 등짐을 지고 머나먼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아무리 퍼내고 또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고달픔이 이어지는 삶, 혼자 태어나 혼자 떠나가는 길에 잠시나마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사찰이 바로 전라남도 화순군 천불산에 있는 운주사일 것이다.
송광사의 말사로 구름이 머무는 절(雲住寺), 배가 움직여 가는 절(運舟寺)이라는 뜻을 가진 운주사는 천불천탑(千佛千塔)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신비한 사찰이다. 운주사 일주문 뒤편 현판에는 천불천탑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고려혜명스님이 1,000여 명과 함께 천불천탑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혜명스님은 970년 관촉사 대불을 조성한 바가 있어 운주사가 고려 초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성종 12년(1481)에 편찬되고 중종 25년(1530)에 중보된 <동국여지승람> 능성현(綾城縣) 조에도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천 개가 있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조선 초기까지 존속했으나 정유재란 때 왜적에 의해 폐사되고 말았는데, 인조 10년(1632)에 편찬된 능주읍지에도 천불산 좌우 협곡에 석탑과 석불이 천 개씩 있다는 기록이 있다. 1800년경 설담자우 스님이 무너진 불상과 불탑을 세우고 중건하여 현재에 이른다.
석탑과 석불이 정말로 천 개씩 있었는지 고증할 방법은 없지만 골짜기의 구석구석까지 불상과 불탑들이 흩어져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찾게 된다. 그리고 1천 구의 불상을 다 보지 않더라도 천불천탑이라는 말이 과연 뜬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현재는 93구의 석불과 21기의 석탑이 남아 있으며 이곳의 석불상들은 아주 작은 석불부터 10m의 거대한 석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또한 석불의 얼굴은 친한 동네 사람들의 형상을 하고 서너 구씩 몰려 있어 마치 가족을 보는 듯하다. 석탑은 골짜기 전체에 즐비하게 흩어져 있으며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원형 덮개돌 위에 원형의 탑신을 세워 호떡을 닮은 호떡탑이 있고, 탑신에 x형 동그라미 문양이 새겨져 있는 탑 등 탑의 형태와 층수도 다양하다.
운주사와 천불천탑에는 여러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 도선국사 전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의거하여 이곳 지형이 배형으로 되어 있어 배의 돛대와사공을 상징하는 불상 천 위와 탑 천 개를 세웠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하루 낮 하룻밤 사이에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급히 천불천탑을 조성하는 중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꼬끼오”하고 닭 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공들이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석불 하나를 미처 세우지 못하고 와불로 남기게 되었다고 한다.
운주사의 대표적인 석불인 이 와불은 하늘을 보고 있다. 약 20m 길이에 폭7m의 큰 규모임에도 와불에서 느껴지는 위엄이 없고 온화한 표정으로 편하게 누워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허나 처음부터 와불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석공은 뉘어서 제작하여 일으켜 세우려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불상은 끝내 일어서질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바뀌고 이곳이 불국토의 중심이 되며 태평성대한다고 하니 언제 일어설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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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달중
현)한국예총 강진지회 사무국장, 국립목포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동신대 문화기획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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