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전라남도 강진군 보은산 남쪽 양지바른 곳에 금곡사가 있다. 거대한 기암괴석이 쌍벽을 이루고 그 사이로 청정 자연수가 흘러내리는 곳에 위치한 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이후 청정 자연과 한 몸이 되어 묵묵히 천 년의 세월을 지켜와 그 경치가 마치 한 폭의 산수화와 같다.
그 정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로서 그들의 감흥을 노래했다. 조선시대 방랑 시인으로 유명한 김삿갓은 이곳에 머물며 쟁계암이라는 거대한 바위와 그 사이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의 평화로운 정경에 취해 시 한 구절을 남겼다.
兩山竝立持戰意 두 산이 나란히 서서 싸울 뜻을 가졌는데
一水中流洗忿心 하나의 물줄기로 흘러 분한 마음을 씻네 - 김삿갓 김병현
한 시인은 “금곡사에 당도하는 순간 세상에는 이처럼 소담하고 한적하고 검소하고 질박한 아름다움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더욱이 그 소박함은 가난의 미가 아니라 단아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라며 감탄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금곡사의 건물 모습에 변화가 있었으나 절 앞마당의 고려 초기 조성된 3층석탑은 예전 모습 그대로인데, 보물 제829호로 세존 진신사리(적멸보궁) 32과가 모셔져 있음이 밝혀져 오랜 역사와 함께 부처님의 자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석탑은 전체 높이 5m가 넘는 큰 탑으로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은 네 모서리에 두터운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마다 판돌을 끼워 두었는데 그 중 한 면에는 판돌이 없이 작은 돌들로 채워져 있다. 이렇게 모서리기둥을 본떠 새기지 않고, 직접 세운 방식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에서도 볼 수 있다. 탑신의 1층 몸돌은 각 면마다 감실(龕室)을 팠는데, 목탑에서의 감실은 불상을 모셔두는 공간이지만, 석탑에서는 이처럼 형식적인 조각만 하게 된다. 두툼한 지붕돌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고, 밑면에는 6단씩의 받침을 두어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백제 양식이 보이는 고려시대의 탑으로 기단에서 3층 탑신에 이르기까지 점차로 규모를 줄여 안정된 비례를 보이는 점이나, 각 부분에 짜임새가 있는 점에서 이 탑의 우수함을 엿볼 수 있다.
금곡사에 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1481년(성종 12)에 언급이 있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승군의 훈련장으로 활용하다가 왜군의 침습으로 소실되었으며, 『범우고(梵宇攷)』1799년(정조 23)에는 이미 폐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절터에 건물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천불전·지장전·설선당·범종각·요사채가 있다. 대웅전에는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나, 모두 근대에 조성된 작품이다. 유물로는 보물 제829호인 삼층석탑과 석등 대좌, 범종이 있다.
이 곳은 봄에 벚꽃축제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지장보살 마애여래불
금곡사 옆 개울가에는 언제 조성되었는지 알 수 없는 마애여래불이 있다. 금곡사 주지스님인 도허스님께서 어느 날 개울가를 거니시다 절벽을 쳐다보니 마애불이 있었다고 한다. 각종 문헌에도 마애불에 관한 기록이 없지만, 도허스님은 불교문화재로 지정받아야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한다.
금곡사의 풍경은 사계절 내내 아름답지만 벚꽃이 만발하는 봄날이 더욱 아름답다. 금곡사 뒷산에는 500년 된 야생 녹차밭이 펼쳐져 있어 다인(茶人)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맑고 차가운 자연수는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축적된 과거의 결과물이다. 결과를 낳기 위한 내적, 직접적 원인을 인(因)이라 하고 이를 돕는 외적, 간접적 원인을 연(緣)이라 하며 이 둘을 더해 인연이라고 한다. 불가에서는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이루어져 있고 그 연기적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금곡사를 찾으며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을 떠올린다.
글 | 김달중
현)한국예총 강진지회 사무국장, 국립목포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동신대 문화기획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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