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타바 강과 건너편 언덕 위의 프라하 성
블타바 강과 건너편 언덕 위의 프라하 성

 

[아츠앤컬쳐] 체코는 ‘이야기의 땅’이다. 사실 체코는 전국 어디에서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프라하는 이러한 ‘이야기의 땅’의 수도이니 다른 곳보다 더 다양하고 더 많은 전설이 거리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그런데 이런 전설들 대부분은 내용이 좀 섬뜩하거나 음침해서, 날씨가 음산할 때 이러한 이야기들은 더욱 피부에 와닿는 듯하다.

프라하의 구심점은 블타바 강 건너편 언덕 위에 마치 마법의 성처럼 세워진 프라하 성이다. 1천 년이 넘는 프라하의 역사를 증언하는 이 성은 높은 곳에서 프라하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성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성 비투스 성당을 수평으로 길게 휘어 감고 있는데, 그 안에는 성 비투스 성당을 비롯, 구 왕궁, 성이르지 성당과 수도원, 황금골목, 왕실정원 등과 같이 다양한 건물들과 정원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단순히 하나의 성채라기보다는 도시 속의 또 하나의 작은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달리보르 탑
달리보르 탑

프라하 성 동쪽 출입구 부분의 북쪽 성벽 끝에 원통형 탑이 있는데, 이름이 달리보르 탑이다. ‘달리보르’라면 19세기에 스메타나가 작곡한 체코 오페라 <달리보르>를 떠올리게 된다. 스메타나(B. Smetana)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오스트리아가 체코를 지배할 때 체코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체코의 역사와 전설, 또 체코의 여러 지역을 소재로 한 음악을 작곡하는데 전념했던, 이른바 체코 국민음악파의 선구자였다. 그렇다면 달리보르 탑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달리보르(Dalibor)는 프라하 근교의 마을 코조예디 출신의 젊은 기사의 이름이다. 이 탑에는 젊은 기사와 아름다운 공주 간의 낭만적이고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섬뜩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달리보르의 탑의 내부는 좁은 계단으로 연결된 아래위 두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에는 옛날에 쓰던 여러 가지의 고문기구들이 전시되어 있고, 특히 아래 공간 한가운데에는 죄수를 매달아 두고, 또 바로 그 아래에 시체를 버리던 구멍이 있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탑은 원래 프라하 성을 방어하는 궁수들이 활을 쏘기 위해 1495년에 세운 것인데, 그 이후에는 기능이 첨가되어 18세기까지 죄수를 가두고 처형하던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 이 탑이 달리보르 탑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1496년에 달리보르가 농민들의 반란을 부추겼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이곳에 최초로 투옥되었기 때문이다.

달리보르 탑 내부
달리보르 탑 내부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그는 감옥에서 사형을 앞두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자신의 슬픈 삶을 달래기 위해 바이올린을 배워 연주하곤 했는데 그가 연주하던 구슬픈 선율은 탑의 좁은 창문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가 이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또 사람들은 창에서 끈에 매달려 내려진 바구니에 음식을 넣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고 보면, 달리보르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는 사실 이면에는 전혀 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당시의 감옥이란 그야말로 고문이 끊이지 않는 지옥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바이올린’이란 악기가 아니라 고문도구의 하나였다. 그러니까 ‘바이올린’으로 고문할 때 달리보르가 지르는 비명소리가 감옥 밖으로 들렸을 것이며 이를 듣는 사람들은 그를 측은히 여기고 동정했을 것이다. 백성들은 달리보르를 사면해 달라고 왕에게 탄원했지만 그는 끝내 처형당하고 말았다.

달리보르가 처형당한 지 약 300년이 지난 다음 달리보르 탑 아래 인근의 땅 밑에서 사형수들의 유골들이 다수 발굴되었는데 모두 하나같이 목이 잘린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죄수들이 모두 끔찍하게 참수형 당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중에 달리보르도 있었을까?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