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로마제국시대에 라인강과 도나우강은 거대한 제국의 북쪽 국경이자, 문명과 야만세계의 경계선이었다. 당시 로마는 이 국경선을 지키기 위해 라인강과 도나우강 따라 많은 병영 도시들을 세웠는데, 그중 라인강변의 보르마티아(Vormatia)는 현재 독일 도시 보름스(Worms)로 발전했고, 도나우강변의 빈도보나(Vindobona)는 현재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으로 발전했으며, 또 그곳에서 상류 쪽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코마게나(Comagena)는 현재의 툴른(Tulln)으로 발전했다.
로마제국의 국운이 기울어지자 5세기에 들어서는 로마제국의 국경 안으로 여러 게르만족들이 밀려들어왔다. 그중에는 로마제국의 방어에 협력하던 게르만족도 있었다. 당시 보르마티아를 중심으로 하는 라인강 유역은 스칸디나비아에서 남하해온 게르만족의 일파인 부르군트족의 땅이 되어버렸다. 그런가 하면 훈족은 아시아 지역에서 서쪽으로 진출하여 현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 해당하는 도나우강 유역을 거점으로 아틸라의 지휘 아래 유럽을 온통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하지만 훈족은 중부 라인강 서쪽 유역의 평원에서 로마군과 동맹한 부르군트족과 벌인 치열한 전투에서 처음으로 패배를 맛보고는 그들의 본거지 도나우강 유역으로 되돌아갔다. 그 후 훈족의 왕 아틸라는 453년에 한 젊은 여인과 결혼하지만 첫날밤 급사했고, 훈족도 역사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게르만 영웅설화 <니벨룽엔리트(Nibelungenlied)>, 즉 <니벨룽의 노래>는 당시의 상황이 배경이 된다. <니벨룽의 노래>는 1부 ‘지크프리트의 죽음’, 2부 ‘크림힐트의 복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부] 부르군트 왕국의 왕 군터의 누이동생 크림힐트에게 크산텐의 왕자 지크프리트가 구혼하러 온다. 지크프리트는 니벨룽이란 소인족(小人族)을 정복하여 보물을 얻었는데, 당시 그 보물을 지키고 있던 괴물 용(龍)을 퇴치할 때 그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불사신(不死身)의 영웅이 되어있었지만 등에 보리수 나뭇잎 하나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피 묻지 않는 그 부분은 마법이 통하지 않는 취약점이다.
한편 국왕 군터는 북방 이젠란트의 여왕 브륀힐트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여왕과 무예로 겨루어 이겨야만 결혼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있다. 군터는 지크프리트에게 여왕을 이기게 해주면 여동생과 결혼시켜 주겠다면서 그의 도움을 청한다. 지크프리트는 니벨룽 보물의 마법을 이용하여 군터를 도와 그녀를 이기게 한다. 이리하여 군터는 브륀힐트와, 지크프리트는 크림힐트와 결혼한다. 하지만 몇 년 후 크림힐트와 브룬힐트 간에 말다툼이 벌어져 결혼 비밀이 누설되자, 이 사실을 안 브룬힐트는 지크프리트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하고는 군터의 부하 하겐을 매수하여 지크프리트의 몸에 있는 취약점을 알아낸 다음 그를 뒤에서 암살하도록 한다.
[2부] 실의에 빠진 크림힐트에게 훈족의 왕 아틸라가 사신을 보내 구혼하자 그녀는 이를 받아들이고 수행원들과 함께 도나우강을 따라 그가 기다리는 곳을 향해 동쪽으로 떠난다. 아틸라는 코마게나에서 그녀를 맞이한 다음 빈도보나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13년이 지난 후 죽은 전남편의 원수를 갚을 생각을 한 그녀는 군터와 하겐을 훈족의 축제에 초대하고는 이들을 죽여 피의 복수를 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무참히 살해당하고 만다.
<니벨룽의 노래>는 예부터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와 북유럽의 신화를 중세에 새로 각색하고 정리한 것으로 게르만의 중세 기사문학(騎士文學)의 최대 걸작이자 최고의 게르만 고전(古典)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작가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고 내용도 역사적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 한편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1848년부터 1876년까지 26년에 걸쳐 <니벨룽의 노래>의 1부 내용과 북유럽 신화를 다시 엮어 방대한 4부작의 독일 악극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를 창조해냈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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