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28)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드뷔시와 함께 ‘인상주의 음악가’라고 불린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각자 독자적인 작품을 썼다. 라벨의 대표작이라면 단연 <볼레로>를 가장 먼저 손꼽는다. 볼레로는 원래 18세기 후반의 스페인 춤곡이지만 라벨의 <볼레로>는 기존의 볼레로와는 달리 매우 느린 곡이다. 이 곡은 매혹적인 단순한 선율과 놀라운 오케스트레이션을 바탕으로 역설과 재미와 즐거움을 듬뿍 선사한다.
이 곡이 탄생한 곳은 생-장-드-뤼즈라고 하는 작은 도시로 프랑스 남서부 끝부분 스페인 국경 가까이에 위치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지는 모르지만 이곳은 대서양을 품어 안은 듯한 긴 백사장뿐만 아니라 온화한 기후와 맛있는 요리로 유명한 휴양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프랑스어와 바스크어로 병기된 거리 표지판이 유난히도 눈에 띈다. 또 군데군데 바스크어로 휘갈겨놓은 낙서들도 보이는데 이곳이 행정상으로는 프랑스 영토이지만 이곳만큼은 또 다른 종족인 바스크족의 땅이라는 것을 알아두라고 외치는 듯하다. 스페인의 북동부와 프랑스의 남서부 일대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인 바스크족은 스페인이나 프랑스 사람들과는 기질이 많이 다르고, 이들이 쓰는 바스크어는 다른 유럽 언어들과는 완전히 다른 희귀한 언어이다.
생-장-드-뤼즈 옆으로 내륙에서 바다로 강이 흘러 들어가는데, 강 건너편에는 작은 어촌 시부르가 바로 눈앞에 보인다. 시부르의 강변도로에 늘어선 바스크 전통 건축물 사이에 관광안내소 건물이 있다. 이 회색 건물 입구 벽면에는 ‘이 집에서 모리스 라벨이 1875년 3월 7일에 태어났다’라는 명판이 붙어있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에 조예 깊은 스위스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바스크 여인이었으니 그의 혈관 속에 반은 바스크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라벨은 스페인을 소재로 하는 작품도 썼기 때문에 그가 스페인 혈통을 물려받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의 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스페인의 ‘정열의 피’는 아닌 것이다. 라벨이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때 그의 가족은 수도 파리로 이주했다. 그러니까 시부르나 생-장-드-뤼즈는 그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성장하여 파리에서 휴가차 이곳으로 자주 내려오곤 했다. 그의 대표작 <볼레로>는 대서양의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이곳에서 탄생하게 된다.
<볼레로>의 탄생은 192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벨은 파리에서 유대계 러시아인 발레리나 이다 루빈슈타인으로부터 작곡의뢰를 받고 그해 6월 이곳에 여름 휴가차 내려왔다가 작곡했던 것이다. 이 곡은 그해 11월 22일,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이다 루빈슈타인 주역의 발레 무대에서 초연되었다. 그런데 라벨은 이 곡을 작곡하고 나서 확신이 서지 않아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들이 연주하길 꺼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곡은 발레를 위한 음악을 넘어서서 독립된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어 다음해에는 대서양을 건넜다.
1929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볼레로>를 미국에서 초연했을 때 청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다음해 토스카니니는 유럽 순회연주를 하는데, 그가 지휘하던 <볼레로>는 템포가 빨랐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라벨은 그에게 이 곡을 더 이상 연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토스카니니는 이 곡을 제대로 살리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맞섰다. 두 사람 간에 언성이 높아졌지만 나중에는 결국 서로 화해했고, 또 두 거장 간의 갈등은 ‘노이즈 마케팅’ 효과로 이 곡을 더욱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라벨이 생각했던 <볼레로>의 연주시간은 17분이다.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15분 전후로 연주한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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