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찬가
[아츠앤컬쳐] 밀바(Milva)의 음성을 듣고 있자면 가수의 표현력이 노래에 끼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깨닫곤 한다. 아름답고 붉으며 풍성한 머리칼로 인해 ‘붉은 머리의 디바’로 불리는 그녀는 1959년 스무 살에 데뷔해 2021년 사망하기까지 이탈리아 대중음악계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통상적인 칸초네의 영역을 넘어 음악과 영화, 연극계를 오가며 전방위적 활동을 펼쳤는데, 특히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프란시스 레(Francis Lai),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반젤리스(Vangelis)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과의 협업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음악미학적 가치를 선사한다.
1981년 밀바의 앨범인 <나는 두렵지 않아(Ich hab' keine Angst)>는 영화 <불의 전차>의 주제곡으로 알려진 반젤리스와의 협업으로 유명하다. 반젤리스는 그리스 유일의 아카데미상 수상자로, 3인조 록밴드인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의 멤버이자 <블레이드 러너>, <1492 콜럼버스>, <남극이야기>, <코스모스> 등 여러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신디사이저 기반의 획기적인 스코어로 전자음악의 선구자로 불린 반젤리스와 밀바의 만남은 당시 유럽에서 인기를 끌던 슐라거(schlager) 장르의 정통성을 재현한다. 이는 주로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의 민속적 뉘앙스에 팝이 절충된 밴드음악으로, 그 의미가 “강타하다(hit)”이듯 보컬과 반주 악기들의 독특하고 선명한 조화가 단순한 서사와 음률을 뇌리에 주입시킨다.
앨범 <나는 두렵지 않아>에는 반젤리스가 작곡하고 각본가인 토마스 보이트케비치(Thomas Woitkewitsch)가 작사한 11곡의 슐라거가 담겼는데, 개인적으로 ‘Sie sind noch jung’을 백미로 꼽는다. “그들은 아직 어리다”라는 의미의 이 노래는 인생에서 가장 예쁘게 핀 꽃봉오리를 쓰다듬을 때 느껴지는 소중한 감흥을 녹여낸다. 가사에서 마치 세상이 멈춘 듯 둘 만의 세계에 몰입된 젊은 연인들의 모습은 사랑과 젊음, 미래와 삶의 본질을 반추하게 한다.
“저기 둘 만을 바라보고 있죠? 누가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을까요?
만지지 않고도 서로를 느끼는 두 사람을.
그들은 아직 어려요. 햇살 아래 계산도 잊은 채 마주앉은 그들은 설사 웨이터가 끼어든 데도 눈치조차 못 채겠죠.
그들은 아직 어려요. 물론 그들도 무덤에 묻힐 날이 올 테죠.
하지만 확실한 건 ‘얼마나 행복하고 충만한가’예요.
어린 그들이 생을 완성하는 방법이니까요.”
호소력 짙은 밀바의 음성은 굴절이 두드러지는 독일어의 특성에도 원곡의 몽환적 느낌을 잘 살려낸다. 원곡은 1972년에 발표된 반젤리스의 ‘바닷가의 작은 소녀(La petite fille de la mer)’로, 프랑스 TV 다큐인 <동물의 묵시록(L'apocalypse des animaux)>에 사용되었다. 이듬해 총 7곡을 담아 사운드트랙이 발매되었는데 ‘바닷가의 작은 소녀’는 그 중 두 번째 트랙에 실려 큰 사랑받았다.
프랑스권에서 인어공주를 암시하는 이 곡은 마치 공주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듯 투명하고 영롱한 애잔함을 느껴지게 한다. 블루 톤의 앨범 커버 역시 그 느낌과 닿아 있는데, 바로 폭풍 전야의 바다 위를 지나는 작은 새의 비행이 그러하다. 인어공주의 새드 엔딩으로 미루어 이 새는 폭풍에 휘말려 난파한 왕자이기도, 그와의 사랑을 꿈꾸다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지는 공주이기도 할 터이다.
때로 운명의 가혹함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꾸게 하고, 잡을 수 없는 것을 붙들게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운명의 본질을 알게 될 즈음, 누구나 한 때의 추억이나 젊음의 찰나가 영원하지 않기에 아름다운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인어공주의 꿈은 고통스럽지만, 밀바의 노래가 위안이 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때문이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