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ssenger, Martin Drolling, 1806
The Messenger, Martin Drolling, 1806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0년, 프랑스의 대표적 미술 전문지(誌) 보자르(Beaux-Arts)는 ‘예술계의 믿기 힘든 30대 불가사의’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낸다. 30대 불가사의 중 하나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프랑스 군주였던 루이 14세(Louis XIV)의 심장 또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루이 16세의 부인)의 어머니이자 오스트리아의 여왕이었던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의 심장이 모두 그림의 물감으로 쓰였다. 심장을 재료로 그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세기 프랑스 화가 마르탱 드뢸링(Martin Drolling, 1752~1817)의 작품을 꼽을 수 있다.”

Interior of a Kitchen, Martin Drolling, 1815
Interior of a Kitchen, Martin Drolling, 1815

보자르 편집장인 파브리스 보스토(Fabrice Bousteau)가 프랑스 국립문서 보관소의 문서를 확인하다가 마르탱 드뢸링의 <부엌 풍경(Interior of a Kitchen)>(1815)이 죽은 사람의 심장으로 그려졌다는 믿기 힘든 내용을 발견하고는 이를 발표한 것이다. 특히 이 <부엌 풍경>에는 루이 14세의 심장이 물감으로 사용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관련 내용을 앞다퉈 보도하기도 하였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뒤 왕족의 시신을 없애라는 명이 떨어졌지만, 당시 일부 화가들이 시신을 그냥 없애지 않고 심장을 따로 갈아 그림에 쓰이는 염료로 사용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화가들 사이에서는 글라시(glacis)라는 회화 기법이 유행했다. 글라시는 유화 물감의 투명한 효과를 살리기 위해 엷게 칠하는 묘법이다. 본래의 뜻은 도기(陶器)에 유약을 칠하거나 혹은 유리로 덮는다는 의미이다. 밑그림이 마른 다음 기름으로 푼 투명 또는 반투명의 물감을 엷게 칠하고, 밑그림의 모델링이나 명암의 골격을 그대로 하거나 더 나아가 밑그림의 색조와 뒤섞어 화면에 깊이가 생기도록 창출한다.

글라시는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1488~1576),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등이 즐겨 사용한 방법으로 고전적 작품은 거의 다 이 수법으로 그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기법을 사용하면 화면에 윤기와 깊이는 물론이고 섬세한 변화를 주기가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명한 유채에만 있는 독특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글라시는 식물성 기름과 알코올을 섞는 방법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실제 당시 일부 화가들은 글라시 작업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심장을 섞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심장을 갈아 기름과 함께 안료를 섞어 글라시를 위한 왁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Portrait of Louis XIV, unknown author, 1670년경 추정
Portrait of Louis XIV, unknown author, 1670년경 추정

그렇다면 루이 14세의 심장은 과연 누구의 소유일까? 소유라는 것이 가능할까? 과거에는 인체에서 분리되어 활용되는 구성부분은 기껏해야 가발용 머리카락 등이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종래에는 분리된 인체구성부분에 대해서 대체로 그 당사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하는 입장이었다. 다만 민법 제211조에 명시한 사용·수익·처분 등에 관해서 ‘다른 물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특히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는 인체구성 부분을 사고 파는 것에 대해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인체 구성부분은 여타의 물건과는 달리 인간의 인격이 깃들어 있다는 사고에서 인체구성부분에 대한 ‘존중’의 관점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심장과 같은 주요 장기 중 하나는 그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다. 심장 자체를 분리해서 그 당사자가 소유한다는 개념은 성립하기가 쉽지 않다. 즉, 심장은 생명과 직결된다는 특성상 물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 프랑스는 인체로부터 분리된 인체 구성 부분에 대해 ‘물건’으로 보는 것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프랑스 민법은 ‘인체에 대한 존중’ 편에서 생명윤리법률의 내용을 명시하였으며, 특히 “인체, 인체 구성 부분 및 그 적출물에 대하여 일정한 재산적 가치를 부여하는 내용의 약정은 무효이다”라고 적고 있다.

A Girl Copying a Drawing, Martin Drolling, Unknown
A Girl Copying a Drawing, Martin Drolling, Unknown

미국에서는 아예 재판으로 간 사례도 있다. 1970년대 무어(Moore)는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된다. 또한 림프절 질환과는 상관 없는 비장비대증을 앓고 있었다. 담당의사인 골데(Golde)는 무어에게 비장 절제술을 제안하고 결국 비장은 적출되었다. 골데는 무어의 비장에 있는 특이세포가 학문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매우 가치가 크다는 것을 알았으나 적출 전 무어에게 연구나 상업적 이용에 대한 별도의 안내나 설명을 하지 않았다. 골데를 비롯한 의사들은 무어의 비장세포를 토대로 유용한 단백질을 다량 생산하는 세포주를 만들어냈으며, 1984년 특허까지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연구로 골데와 대학 등은 큰 연구비를 받게 되고, 특허의 경제적 가치는 치솟았다.

이에 대해 무어는 ‘주치의가 자신에게 이러한 계획을 설명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횡령’과 ‘신임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해 캘리포니아주 최고법원은 ‘설명에 기초한 승낙의 결여’와 ‘신임의무위반’은 인정하였지만, ‘횡령’은 배척하였다. 즉 불법행위인 횡령이 인정되려면 소유권이나 점유권에 침해가 있어야 하는데, 인체조직·세포에 대해서는 ‘소유권’이 성립될 수 없기에 무어는 자신의 비장세포에 대한 소유권을 갖지 않는다고 하였다.

특히 캘리포니아주 최고법원은 ‘인체유래물의 개인적 재산권으로의 인식은 중요한 의학연구의 진행에 경제적 동기를 위축시킬 수 있으며, 만약 세포가 연구에 이용되는 것이 횡령이라면 연구자가 가지는 모든 세포의 표본은 소송의 대상이 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본 판결은 생명의료과학 산업의 발전을 촉진하려는 국가정책적 의도에서 나온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사건 이후 다양한 소송에서 법원들은 ‘인체유래물에 대한 소유권’을 부정하고, 이를 근거로 ‘연구결과에 대한 특허와 경제적 이익’에 대한 조직기증자의 권리까지도 부정하였다.

글 | 이재훈
문화칼럼니스트, 변호사,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주)파운트투자자문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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