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1600년대부터 1700년대는 미술 역사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던 시기다. 중세 암흑기에서 벗어나 인본주의 사상이 중심이 되는 근대로서, 종교적인 변화와 발전이 있었을 뿐 아니라 르네상스의 탄생으로 회화, 음악, 조각, 건축, 음악 등 분야에서 전무후무한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다양하게 활동한 배경에는 예술 창조 작업이 이루어지는 시대의 사회, 문화, 경제 방면 등의 적극적 후원과 지지가 있었기에 그 상승 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 중 메디치(Medici) 가(家)는 당시 이탈리아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가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들은 1400~1746년까지 약 350년간의 역사 속에서 가문을 이어가며 유럽의 근대를 이끌어간 중요한 인물들이다. 메디치 가문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가문의 이야기가 때로는 유럽 전체의 이야기가 되기도 할 정도이다. 그 중에서도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Giovanni di Bicci dé Medici, 1360~1428),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é Medici, 1389~1464),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é Medici, 1449~1492)는 르네상스 예술사에서 메디치 가문의 이름을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의 영향력을 끼쳤다.
이처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예술과 학문에 적극 후원하며 예술의 수준과 지위를 향상시켜 르네상스를 일으킨 메디치 가문의 인물 중 프랑스의 문화·예술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프랑스 궁정 발레가 탄생하게 되는 시점에 이르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녀는 카트린 데 메디치(Catherine dé Medici, 1519~1589)다. 카트린은 위대한 로렌초 데 메디치의 증손녀이자, 50여년 동안 프랑스의 왕비와 왕후를 지냈으며, 특히 무용사에 있어서 루이 13세와 루이 14세 시기의발레의 황금기를 열게 해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카트린은 1519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난 지 3주 만에 부모가 모두 세상을 뜨며 고아가 되었다. 6살이 될 때까지 할머니, 고모, 사촌 등의 손에 키워졌고, 험한 세상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한다는 목적 하에 수녀원에 보내졌는데, 이곳에서 소녀시절을 보내면서 갖은 결단력과 생존 본능 등 또래의 나이로는 소유하기 힘든 면모를 습득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1533년 14세의 나이에 클레멘스 7세의 교황권 강화를 목적으로 프랑스의 앙리 2세와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다. 1544년부터 10년 동안 카트린은 10명의 아들, 딸들을 출산했으며, 그 중 프랑스 군주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인 세 명의 아들들(프랑수아 2세, 샤를 9세, 앙리 3세)이 차례대로 발루아 왕가의 마지막 왕들이 되었다.
1547년 프랑수아 1세가 죽고 앙리 2세가 왕좌에 오르면서 카트린에 대한 앙리의 신뢰가 커져 왕비 카트린은 왕국의 섭정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1559년 앙리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장남 프랑수아 2세가 즉위하면서 이후 황태후로서의 섭정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타고난 정치적 감각을 지닌 여인이었으나,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묵묵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30년의 세월을 인내하였고, 그 후 30년은 종교전쟁, 프로테스탄트 대학살(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 독살 등의 의혹 등 수 없는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황태후로서의 권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당대의 프랑스인들에게는 교활하고 권력에 미친 악녀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실제 카트린이 악행을 벌였다는 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
우리나라 형법에는 명예훼손죄가 있다(형법 제307조). 여기에서는 허위의 사실만이 아니라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여도 범죄가 성립된다. 여기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야 한다고 하여 죄의 성립에 공연성을 요구하고 있다. 공연성이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물론,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가 어떠한 경우를 말하는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이에 법원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본다. 비록 서너 명이 있는 자리에서 사실을 유포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에 의하여 외부에 전파될 가능성이 있어도 명예훼손죄에서의 공연성이 인정된다.
물론, 전파될 가능성이 없다면 특정한 한 사람에 대한 사실의 유포는 공연성이 없어 이는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다만, 법원은 개인 블로그의 비공개 채팅창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비밀을 지키겠다는 말을 듣고 1대1로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대화 상대방이 대화내용을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으므로, 명예훼손죄의 요건인 공연성을 인정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사실’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증명할 수 있는 과거나 현재의 상태를 말하며, 장래에 벌어질 일은 의견 진술에 불과하여 사실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사실적시인지 가치판단인지 논란이 항상 있을 수밖에 없는데, 법원은 “사실적시는 의견 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진술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표현 내용이 증거에 의한 입증이 가능한 것을 말하고, 이것이 가치판단이 포함된 의견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언어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입증가능성, 문제된 말이 사용된 문맥, 그 표현이 행하여진 사회적 정황 등 전체적 정황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본다.
사실 적시는 특별히 그 방법을 제한하지 않는다. 따라서 구두·채팅 등에 의할 수도 있으며, 출판물 자체에 명예훼손의 목적이 있다면 이 또한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다. 물론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법원은 “진실한 사실”인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데, “진실한 사실”이란 사실에 대한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사실이라는 의미로서 일부 자세한 부분이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방하다고 보고 있으며, “공공의 이익”은 널리 국가·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한다”고 보고 있다.
글 | 이재훈
문화칼럼니스트, 변호사,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주)파운트투자자문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