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황악산 직지사는 서기 418년 신라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무려 1600년이 넘는 고찰로서 아도화상 이래 자장법사, 천묵대사, 능여대사, 신묵대사, 사명대사, 녹원화상 등 수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하였다.
또한, 우리 가슴 속에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심어온 대사찰로서 이른바 해동의 중심부에 으뜸가는 가람이라는 뜻으로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이라고 칭한다. 황악산은 우리나라 중심부에 자리하여 오방 청, 황, 적, 백, 흑 중에 중앙을 상징하는 황(黃)을 넣어 황악산이라 하며 정상 비로봉에 오르면 충청, 전라, 경상의 도계가 접하는 중심에 있어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절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도화상이 냉산(서산)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곳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라 하여 직지사라 했다는 전설과 고려시대 능여대사가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측지하여 직지라 붙였다는 설이 있지만, 실은 불교 본연의 직지인심(直指人心)을 상징한다고 한다.
직지사에는 신라말에 금자대장경(金字大藏經)을 서사(書寫)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원나라의 침공을 불법으로 막고자 제작하였던 고려팔만대장경에 비해 금자대장경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금자대장경은 신라 말기에서 고려로 국운이 넘어가는 과도기에 제작된 것으로 고려 태조 왕건의 불심을 생각나게 한다. 왕건은 직지사 능여대사의 도움을 받아 후백제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직지사는 조선 중기에 주지 사명대사가 임진왜란에 큰 공을 세워 조선 8대가람의 위치에 올라 300여 소속사암을 거느릴 정도로 확장했으나, 조선 말기를 지나 일제시대에는 해인사의 말사로 전락하였다가 광복 이후 회복 승격되고 중흥불사하여 현재에 이른다.
전각 중에 대웅전은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2층 5칸의 특별한 건축물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현 건물은 1735년 영조 때 중건된 것이라고 한다. 비로전은 임진왜란 때 병화를 모면한 건물 중 하나이며 불당에 들어가 첫 눈에 천불상 중 벌거벗은 동자를 보면 옥동자를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이 외에도 응진전,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 극락전, 설법전, 남월료, 만덕전, 명월당, 박물관으로 쓰이는 청풍료 등의 전각이 있고, 신라시대 고탑 4기를 이건하였다.
요즘 코로나19로 서로를 배려하고 조심하며 사람 살아가는 공간이 많이 좁아졌으나 직지사는 변함없이 불교대학과 템플스테이로 마음을 닦고 수련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엄격한 규율을 지켜가며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해 성금을 전달(2020.3)하고 기도입재식(2020.4)을 했으며, 지역문화제와 사명대사 추모다례재(2020.9)를 거행한 바 있다.
직지사는 수많은 성보문화재와 고적, 대중을 위한 행사 외에도 자연환경이 압권이다. 가을 단풍뿐만 아니라 사철 아름답고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는 평안과 위로를 전해주고 있다.
[사진제공=직지사]
글 | 전예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