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푸시킨(Alexander Sergeyevich Pushkin, 1799~1837)은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y, 1821~1881) 등 위대한 작가들이 많은 러시아에서도, 전 국민적으로 가장 많이 사랑을 받는 작가는 푸시킨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의 러시아의 낭만주의는 곧 푸시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작품을 집필하고 러시아의 근대문학을 발전시켰다.
푸시킨의 외증조부는 표트르(Pyotr, 1672~1725) 대제(大帝)를 섬긴 흑인 출신 귀족이었다. 곱슬머리와 검은 피부를 가진 푸시킨은 자신의 몸속에 에티오피아 지중해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프랑스인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러시아어 읽기와 쓰기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민담과 민요를 들었다.
또한 그는 유모를 통해서 러시아 민중의 삶에 대해 깊이 동정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어렸을 때 유모 아리나가 들려준 러시아의 옛날이야기 및 설화가 그를 대시인으로 성공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는 시와 소설, 희곡에 모두 능한 작가였다. 대표적인 시로는 <예브게니 오네긴(Eugene Onegin, 1823~1831)>, 대표적인 산문으로는 <벨킨 이야기(The Belkin Tales, 1831)>, <스페이드의 여왕(Queen Of Spades, 1834)> 등이 있다. 특히 <예브게니 오네긴>은 시로 쓴 소설로서, 예브게니 오네긴이라는 인물의 생애, 그와 타티야나 라리나와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이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러시아 오페라와 연극의 소재가 되고 있을 정도로 러시아인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당시 차르 체제, 즉 모든 자유가 억압당하는 상황에서 예브게니 오네긴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모든 것에 권태를 느끼는 ‘잉여인간’의 전형이다. <예브게니 오네긴>의 서문에는, 오네긴의 친구가 등장하여 오네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형태로 시작하는데, 사실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음을 끝에서 상기시키며 문학 안과 밖을 드나드는 기법을 사용한다.
오네긴의 친구로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푸시킨을 보면 그의 생애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에게는 이후에는 러시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명령이 내려지는데, 작품에서 그는 자유를 갈망하는 등 자신의 상황을 나타낸다.
푸시킨이 실제 검열에 의해 많은 억압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그를 깊게 이해할 수 있다. 1817년,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침체해 있던 제정러시아의 외무성에서 근무하고 있던 푸시킨은 <자유>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는데, 해당 내용으로 인해 상사의 눈 밖에 났고, 해당 내용이 사회 선동 등 불순하다는 이유로 그는 좌천되고 만다.
그는 귀족의 아들답지 않게 농노들의 비참한 생활과 귀족, 지주들의 타락한 삶을 주제로 삼았던 터라 그 창작 생활이 가시밭길이었다. 1824년에도 서정시 <집시>를 썼다가 다시 유배되었다가 니콜라이 1세의 특별사면을 받아 모스크바로 돌아오기는 했으나, 유배를 풀어주는 대신 정부에서 그의 작품을 직접 검열하겠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이후 그의 작품은 계속해서 개작 명령이 내려지는 등 창작의 자유는 여지없이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1830년 그는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약혼하고 이후 <벨킨 이야기>를 비롯한 30여 편의 서정시와 작품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1830년에 <예브게니 오네긴>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이후 푸시킨은 1831년에 결혼을 하였으나, 신혼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32살에 결혼을 하고도 요절한 푸시킨에 대한 일화가 있다. 푸시킨의 아내인 나탈리아와 당테스에 대한 추문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미 널리 퍼져 있었고 사람들이 푸시킨을 조롱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푸시킨은 당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하게 되었다.
이 결투에 앞서 당테스는 푸시킨의 부인 나탈리아의 큰 언니인 카타리나와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표함으로써 결투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당테스는 오히려 처제가 될 나탈리아와의 연애관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다.
결국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 오직 결투의 장에 서야만 하는 것이었다. 푸시킨은 끝내 결투에서 복부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이틀 후인 1837년 1월 10일 38살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실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소위 ‘현피’라고 표현되는 새로운 현상이다. 온라인상에서 일어난 다툼이나 분쟁이 비화되어 분쟁의 당사자들이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 물리적 충돌을 벌이는 일(폭력행사)을 가리키는 인터넷 용어이다. 현실 PvP(Player versus Player)의 줄임말로서, PvP란 온라인 게임에서 상대방 유저를 상대로 싸우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은 단순한 위협이거나 어느 한쪽이 참가하지 않음으로써 실제로 폭력이 일어나지 않지만, 간혹 일부 온라인 게임을 중심으로 실제 현피 사건들이 발생하여 문제시되고 있다.
온라인 게임 과정에서 실제로 A와 B가 현실에서 만나 싸움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A의 B에 대한 폭행 또는 상해행위로 인해 B가 사망하였다면 이는 형법상 폭행치사죄 내지 상해치사죄에 해당한다. 폭행과 상해의 경우 싸움을 할 당시 고의가 폭행의 고의였는지 상해를 가할 고의였는지에 따라 구분되나, 법정형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구별의 실익이 크지는 않다.
형법 제259조 제1항(상해치사)은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법 제262조(폭행치사)는 ‘전 2조(폭행, 특수폭행)의 죄를 범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때에는 제257조 내지 제259조의 예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상해치사와 폭행치사 모두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대법원도 소위 ‘싸움’의 경우, “가해자의 행위가 피해자의 부당한 공격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서로 공격할 의사로 싸우다가 먼저 공격을 받고 이에 대항하여 가해하게 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한 경우, 그 가해행위는 방어행위인 동시에 공격행위의 성격을 가지므로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여 원칙적으로 정당방위나 과잉방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A가 B와 싸우는 과정에서 B에게 폭행 내지 상해를 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면 이는 폭행치사죄 내지 상해치사죄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글 | 이재훈
문화칼럼니스트, 변호사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주)파운트투자자문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