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삼킨 파도의 사우다지
[아츠앤컬쳐] 리스본의 여인들은 바다가 두려웠다. 하지만 바다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곳은 오로지 바다밖에 없었다. 바다는 사람을 빼앗아 가기도 했고 또 돌아오게도 했다.
여인들은 모두 바다로 나가 부서지는 파도에 서러움을 토해냈다. 그러다 가끔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정박된 고깃배들 사이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바다는 그녀들의 짧은 안위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동틀 때쯤 쓸려 내려올 배엔 검은 돛이 달려 있으리라는 걸, 그리고 그녀의 사랑이 돌아올 수 없으리라는 걸 바다는 이미 알고 있었다.
‘파두(Fado)’는 바다를 향해 던진 여인들의 속절없는 노래이다. 대항해 시대(Era dos Descobrimentos), 무자비한 정복의 욕망은 정복자들에게도 큰 희생을 요구했다. 포르투갈 상선들은 남자들을 태우고 식민지로 떠났고 혼자 남은 여인들은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바다 기슭에 배가 도착할 때 즈음 그녀들의 눈에 남편이 띄면 가슴을 쓸어내리며 달려나갔지만 검은 돛을 단 배가 도착할 때면 모래 바닥에 쓰러져 우는 것밖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기다림 속에 그녀들의 평상복은 검은 상복이 되었고 그것이 곧 파두 가수들의 전통이 되었다.
“무자비한 바다 저편 나의 작은 배에서 춤추려 했다. 포효하는 바다는 당신의 아름다운 눈빛을 내가 훔쳤다고 했다. 바다가 옳은지 와 보아라. 나의 마음이 춤추는 것을 보러 오라. 나의 작은 배 안에서 춤출 때면 잔인한 바다엔 가지 않겠다. 당신과 웃고 춤추고 살고 꿈꾸며 노래할 그곳도 절대 말하지 않겠다.”
프레데리코 지 브리토(Frederico de Brito)가 작사하고 페레르 트린다지(Ferrer Trindade)가 작곡한 ‘바다의 노래’에는 포르투갈 여인들의 한탄 젖은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난다. 전설적인 여가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ália Rodrigues)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파두는 그 어휘가 ‘Factum’이란 라틴어에서 유래하듯 바다를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과 사우다지(Saudade)의 노래이다.
달동네로 불리는 알파마(Alfama) 지역을 낀 리스본의 항구에는 무역업자들이나 노동자들, 외지인들, 그리고 가난한 현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여기에 식민지 문화가 더해져 브라질 모딩냐(Modinha), 아프리카의 룬둠(Lundum), 카보베르데의 모르나(morna), 인도네시아 크론총(kroncong) 등이 혼합되며 파두 음악의 근간이 형성된다. 이렇듯 파두의 깊은 여운은 정복자와 정복을 당한 자 사이를 헤집고 찾아온 죽음과 이별, 가난과 향수에서 비롯된다.
영혼을 울리는 파두의 애절함은 기타하 포르투게사(Guitarra Portuguesa)로 완성되는데 열두 개의 금속 현을 가진 이 기타는 두 줄로 된 여섯 쌍의 줄과 동그란 몸통이 특징이며 그 모체를 유럽의 시턴(cittern)으로 보고 있다. 파디스타(Fadista)라 불리는 파두 가수들의 노래에 더해진 포르투게사와 스패니시 기타, 그리고 콘트라베이스의 앙상블은 처량하면서도 안온한 이중적 느낌을 전달한다.
2011년 파두는 스페인의 플라밍고와 함께 이베리아반도를 대표하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는데 여기엔 여가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역할이 컸다. 그녀는 1954년 프랑스 영화 ‘타쿠스 강변의 연인들(Les Amants du Tage)’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고 이어 ‘Barco Negro(검은 돛배)’, ‘Maldição(어두운 숙명)’, ‘Que Deus Me Perdoe(신이여 용서하소서)’, ‘Duas Luazes(두 개의 빛)’, ‘Naufragio(난파선)’, ‘Gaivota(갈매기)’, ‘Lagrima(눈물)’ 등 수많은 파두를 세계에 알리며 ‘파두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검은 옷에 그윽한 눈매와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리스본 파두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호드리게스 외에도 파두의 발전에 기여한 2세대 여가수로는 둘세 폰테스(Dulce Pontes)가 있다. 폰테스는 파두의 비극적 서사성에 현대적이며 극적인 호소력을 더해 파두를 ‘사우다지의 예술’로 각인시켰다.
특히 폰테스가 부르는 ‘바다의 노래’는 힘찬 목소리와 드라마틱한 무대, 그리고 월드 퓨전이 가미된 신비로움으로 마리자(Mariza), 크리스티나 브랑쿠(Cristina Branco), 카티아 게헤이루(Katia Guerreiro), 까르미뇨(Carminho), 미지아(Misia) 등 여성 파디스타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어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다.
포르투갈 여인들의 애환과 한탄, 눈물을 대신한 ‘바다의 노래’는 강하게 부서지는 파도의 파동 속에서 오직 바다만이 들을 수 있는 애끓는 신음으로 불린 그리움의 노래였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