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잘 만들어진 무대 퍼포먼스는 그 자체가 한편의 예술이다. 오페라나 발레는 실력 있는 성악가, 발레리나를 최고의 구성 요소로 하지만 무대 구성과 디자인, 의상디자인, 전체적인 미적 밸런스 그리고 전체를 잘 아우르는 기획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뉴욕, 런던, 혹은 유럽의 유수 아트페스티벌에서 만나는 무대공연 대작들이 관객을 압도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자본이 중요하다. 자본과 후원이 많은 팀의 공연은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Salzburger Festspiel)이나 뉴욕 멧(Met) 오페라는 아티스트들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상상 이상의 창의적인 현대미술과 디자인이 잘 접목되어 무대가 이채롭다. 미적인 디자인 외에 기술적인 장치나 3D 시각적 IT시설을 무대에 올려 판타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뮤지컬이나 서커스가 아닌 순수 예술분야인 오페라와 발레 공연에서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된 무대와 의상 디자인은 옛날 배경의 오래된 레퍼토리 공연마저도 새롭고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큰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도시를 대표하는 오페라단이나 발레단의 공연을 관람함으로 그 도시의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도 있다. 홍콩은 동서양의 문화가 뒤섞인 것처럼 순수예술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오페라인 경극도 일 년 내내 볼 수 있으면서 수준 높은 서양 오페라와 발레도 늘 성황이다. 공연의 각 장르마다 관객의 수요가 다양하고 많으니 그만큼 후원금과 자본의 스케일도 커서 무대가 다채롭다. 각 무대공연은 클래식 음악이나 발레만큼 무대디자인과 의상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중 홍콩발레단의 변화가 놀랍다. 홍콩발레단은 2017년 6월 셉타임 웨브레(Septime Webre)를 예술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는 세계 유수 발레 콩쿨의 심사위원이자 17년간 미국 워싱턴발레단 예술감독을 역임하며 이루어낸 그의 업적이 상당하다. 300명에 불과했던 워싱턴 발레 스쿨 학생이 1,500명까지 늘었고, 워싱턴발레단 댄서들의 출신도 다양하게 뽑으며 발레단의 수준을 한층 높여놓았다. 또한 F.스콧 피트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헤밍웨이의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등 미국 현대소설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발레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그의 성과로 워싱턴발레단은 예산을 미화 2백만 달러에서 천2백만 달러로 6배 올리며 실력과 명성을 드높였다.
홍콩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오면서 그가 내놓은 포부는 두 가지이다. 홍콩에서 발레를 더 대중화하고 홍콩발레단의 수준과 위상을 세계에 더 높이겠다는 것. 처음 그가 한 것은 홍콩발레단의 이미지이다. 디자인과 함께 하는 댄스(Design Meets Dance)라는 컨셉으로 홍콩발레단의 캠페인 포스터부터 바꿨다. 미국의 유명 포토그래퍼 Dean Alexander로 하여금 홍콩의 랜드마크 여러 곳에서 발레 댄서들의 역동적인 동작을 스틸컷으로 남긴 것인데, 고리타분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발레라는 분야에 대한 흥미를 일으킬 만큼 포스터 사진은 강렬하고 생동감이 있다.
홍콩 곳곳에 걸린 포스터 사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디자인이란 것이 예술 분야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예술감독은 무대 디자인과 의상에도 그 변화를 이끌고 있다. 그가 부임한 후 홍콩발레단은 그가 참여해 만들었던 ‘위대한 개츠비’ 발레를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홍콩 무대에 올리며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셉타임 웨브레의 노력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그가 시도하는 것은 홍콩의 랜드마크 아트 공간 곳곳에서 팝업으로 발레를 하는 것이다. 아트 갤러리, 타이권 헤리티지 센터(Tai Kwun and heritage centre),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 등의 공간에서 팝업으로 이어지는 발레 공연으로 대중에 다가가고 이 공연들 중에 무료로 제공 되는 것도 많다. ‘A Day in the Life’라 불리는 그의 팝업 발레는 비틀즈 음악과 발레의 만남으로 유명하다.
그 외에 홍콩 내 필리핀 가사도우미들과 같은 사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도 계획 중이다. 셉타임 부임 후 홍콩발레단 소속 단원들의 국적도 매우 다양화되었는데 20%의 홍콩 출신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해외 국적의 댄서들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실력으로 뽑은 댄서들을 통해 발레단 수준을 높여 정기적인 해외 투어를 하고 국제 댄스 페스티벌에 참여해 아시아 최고 발레단으로 거듭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세계 최고의 예술 감독 섭외와 홍콩 발레 단원들의 세계적인 구성 등 일련의 변화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홍콩 정부의 큰 그림을 놓칠 수 없다. 홍콩 정부는 도시 모든 예술 분야의 예산을 올해 추가로 10%를 올리며 문화예술 분야의 질적 양적 향상을 꾀하고 있다. 지난달 소개했던 West Kowloon Culture District(WKCD)가 공공예술의 인프라를 받치고 있다면 홍콩정부는 순수예술 분야의 다방면 투자로 그 내실까지 키우고 있는 셈이다.
홍콩 정부의 이런 정책과 노력은 더불어 무대예술을 즐기는 관객에게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WKCD의 완성과 더불어 도시 구석구석에서 발전을 도모하는 순수예술 분야의 변화가 기대된다. 그 안에 도시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홍콩발레단의 강렬한 광고 포스터도 눈여겨 보자.
5월 31일과 6월 1일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이 셉타임 웨브레의 색깔을 입고 홍콩발레단과 홍콩필하모니오케스트라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그 외에 홍콩발레단의 연간 스케줄 팝업 발레 공연 정보, 발레단 캠프와 같은 이벤트나 홍콩 발레단의 새로운 포스터와 예술적인 광고 영상은 아래 메인 홈페이지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https://www.hkballet.com/en/index.html
글 | 박희정
문화칼럼니스트, 아츠앤컬쳐 홍콩특파원, 서강대 영문학과, 2006 미스코리아 美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맨파워코리아 전시컨벤션 큐레이팅, 중앙일보플러스 교육사업본부 예술교육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