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아름다운 건축물 시리즈 3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 건축가로서 그녀에게 홍콩은 노스텔지어 같은 존재였다.
자하 하디드는 남성의 직업으로만 여겨졌던 건축 설계 분야에서 2004년 ‘프리츠커상’(Pritzker/architecture Prize)을 세계 최초로 거머쥔 여성 건축가다. 1950년 10월 31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태어난 그녀는 레바논에 있는 아메리칸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72년 영국으로 옮겨 영국 건축협회 건축학교(AA School of Architecture)를 졸업했다. 이후 1979년 자신의 이름을 딴 건축회사(Zaha Hadid Architecture)를 설립했으나 이렇다 할 큰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다 1983년, 건축가로서 그녀에게 큰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당시 홍콩의 프라이빗 레저 클럽을 피크에 짓고자 낸 설계 공모전에서 그녀의 작품이 1등을 한 것이다. 피크의 언덕 지형을 따라 뚜렷하지 않지만 유기적인 느낌의 형태로 설계된 그녀의 작품은 지형학과 건축학 그 중간 어디쯤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수학과 공학의 결정체가 건축이라 여기며 반듯하게 설계하는 것을 당연시하던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하지만 유니크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그 작품은 아직 컴퓨터로 공학적 계산의 도움을 받지 못하던 시기였기에 아쉽게도 구현되지 못했다.
이후로도 그녀는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축의 공모전에 응모해 여러 번 우승을 하고도 같은 이유로 실제로 지어지지 못하는 비운을 겪게 된다. 아방가르드하고 미래지향적인 그녀의 디자인은 선구적이라 평가되었지만 기술의 한계로 실제 건설될 수 없었기에 그녀는 ‘종이건축가’라는 별명도 얻었다. 1994년 그녀의 실제적인 첫 작품이라 할 만한 비트라(Virtra) 소방서가 독일에 세워진 이후에야 건축가로 입지를 정확히 다질 수 있었지만 1990년대에도 기술적인 이유로 실제로 지어지지 못한 그녀의 작품은 여전히 많았다.
컴퓨터에 의한 공학기술이 발전된 근래에도 그의 작품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은 것은 건축 비용도 한몫한다. 건축 디자인의 해방이라 불리는 그녀의 설계 작품들은 디자인 측면에서는선구자적 타이들을 얻었지만 대신 건축비가 어마어마하게 들곤 했다. 예산의 몇 배를 웃돌게 했던 건축비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이 인정받는 점은 기존의 유형건축에 대한 틀과 관념들을 보기 좋게 깨고 새로운 미학으로의 건축을 만들어낸 것에 이유가 있다.
건축비 외에도 늘 논쟁거리를 낳는 그녀의 작품에 대한 비판은 사실 여자이기에 얻게 되는 불필요한 평가들도 많았다. 2020년 도쿄올림픽 주경기장의 공모전에서도 그녀의 작품이 1등을 했지만 일본 내 건축가들의 거센 반대로 결국 지어지지 못했는데 반대의 이유도 남성위주의 건축 세계에서 여성건축가를 향한 과한 비판들이 대부분이란 평가가 많다. 83년 홍콩 피크의 레저 클럽 공모전에서 그녀가 1등을 할 수 있었던 계기도 ‘자하’라는 익숙지 않은 이슬람 이름이 심사위원들에게 여자라고 인식되지 않아 가능했던 일이라고 밝힌 심사위원의 인터뷰도 있었다.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진 건축 세계에서 유리천장을 깨가며 끊임없이 한계를 넘어선 그녀의 대담한 노력은 큰 가치가 있다. 편견과 차별에도 불구하고 형식과 기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색을 뚜렷이 확립하고 밀고 나간 그녀의 성장 덕에 건축의 디지털 역사도 새롭게 발전했다.
하디드는 2016년 3월 31일 심장발작으로 65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그 후 그녀의 회사 동료는 인터뷰에서 “자하 하디드는 자신에게 세계적인 관심을 얻게 해 준 홍콩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녀는 83년 피크 레저 클럽 공모전 후 홍콩에 자신이 설계한 건축을 남기고자 여러 번 시도했었다. 결국 쟈키클럽 이노베이션 타워(Jockey Club Innovation Tower)로 2014년 홍콩에 돌아오게 되었지만 결국 이 건물은 홍콩에 세워진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건물이 되었다. 2014년 그녀가 처음 이 건물을 소개할 때 첫 마디는 “모든 게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였다. 간절히 바라던 그녀의 첫 작품은 30년이 지나서야 이 땅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쟈키클럽 이노베이션 타워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그래서 결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 그 자체다.
쟈키클럽 이노베이션 타워는 현재 홍콩 폴리텍 대학교(HongKong Polytechnic University) 내에 있다. 미래지향적이고 역동적인 디자인의 이 건물은 벽돌 건물로 지어진 기존 대학 건물들 사이 하나의 오브제 같이 우뚝 서 있다. 디자인 교육을 위해 지어진 만큼 독창적으로 디자인 되었는데 실내 계단조차 층마다 각도가 다르다. 미학적인 모습만 강조되어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그의 설계 작품에 대한 비판들과는 달리 쟈키클럽 이노베이션 타워 외부 각층에 만들어진 기하학적 날개(Fin)는 뜨거운 홍콩의 햇빛을 적절히 차단하면서 건물 안까지 자연광을 깊이 받을 수 있게 설계된 기발한 아이디어다. 쟈키클럽 이노베이션 타워는 MTR 홍함역(Hung Hom)에서 도보로 가능하다. 홍콩 폴리텍 대학 내에서도 한눈에 띄는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글 | 박희정
문화칼럼니스트, 아츠앤컬쳐 홍콩특파원, 2006 미스코리아 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