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ierismo

Mannerism- Giuseppe Arcimboldo- Rodolfo II Vertumno (1590), Stoccolma, Skoklosters Slott, Styrelsen
Mannerism- Giuseppe Arcimboldo- Rodolfo II Vertumno (1590), Stoccolma, Skoklosters Slott, Styrelsen

[아츠앤컬쳐] 우리는 항상 르네상스가 엄청난 부와 번영의 시기라 믿어왔다. 물론 이 시기 인구의 대부분이 깊은 고통에 처했던 사실을 감안하고도 말이다. 1500년대 이탈리아는 거대한 위기를 맞았다. 예술 활동 또한 큰 영향을 받았고, 가톨릭 교회의 위용은 1527년 황제 카를 5세와 란츠크네히트 용보병의 ‘로마 약탈’(Sacco di Roma)과 루터의 종교개혁에 의해 약화되었다. 도시는 심각하게 파괴되었으며, 경제 위기를 맞아 이탈리아는 정치적, 문화적으로 침체되기 시작했고,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이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Pontormo- Vertumno e Pomona- 1519- Villa Medicea- Poggio a Caiano –Italy
Pontormo- Vertumno e Pomona- 1519- Villa Medicea- Poggio a Caiano –Italy

자신을 세계의 주인이라 믿으며, 이를 지배하고 계획하는 방법에 탁월했던 르네상스인들은 갑자기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빠졌다. 예술 분야도 역시 격동을 맞아 소위 “새로운 예술가”들이 위대한 르네상스 예술가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대신, 완벽함과 균형, 비율을 찾는 데만 급급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새로운 예술가”들은 예로부터 전수된 고전적 규칙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으며, 자신들의 상상력을 표현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 라파엘로(Raffaello)나 다른 위대한 거장들을 능가하려 했다. 이 새로운 예술적 트렌드는 마니에리즘 또는 마니에라(maniera)로 정의된다.

Jacopo Pontormo – Halberdier- 1530-  Getty museum – Los Angeles
Jacopo Pontormo – Halberdier- 1530- Getty museum – Los Angeles

마니에리즘은 1520~1527년 사이에 번성하게 되는데 이는 ‘로마 약탈’과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의 사망으로부터 라파엘로의 제자들이 흩어져 반도 전체에 새로운 스타일을 퍼뜨린 시기이다. 조르죠 바사리(Giorgio Vasari)에 따르면 마니에리즘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포함한다. 다채롭고 풍부한 기이함, 모호한 색상, 집합적인 주거 풍경, 다양한 마을의 원경 그리고 전체에 대한 발견 즉, 자유롭고 창의적인 작풍이다. 이 규칙은 마니에리즘 화가들의 회화 구성에 온전히 적용되었으며, 때로는 원근감의 왜곡 혹은 기행적 주제로 나타났다.

Pontormo, Dinner in Emmaus, 1525, Uffizzi Gallery, Florence, Italy
Pontormo, Dinner in Emmaus, 1525, Uffizzi Gallery, Florence, Italy

빛은 표현력과 움직임, 시선과 표정을 강조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강렬하고, 고통스러우며, 아예 없거나 형이상학적이었다. 옷의 주름들은 지겹도록 중요하게 다루어져서 배경과 같이 인공적인 듯 부자연스럽기도 했다. 르네상스와는 달리 마니에리즘 작품에서는 풍경이나 건축물에서 원근감이 중요하지 않았다. 인물 역시 엄격하고 정리된 규칙을 벗어나 종종 그림의 중심으로 부터 옮겨졌다. 배경 색상 역시 사실적이라기보다 환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톤으로 변모했으며, 원근법과 마찬가지로 왜곡되었다.

Mannerism- Giorgio Vasari- The Forge of Vulcan- 1564- Gallery Uffizi- Florence - Italy
Mannerism- Giorgio Vasari- The Forge of Vulcan- 1564- Gallery Uffizi- Florence - Italy

폰토르모(Pontormo)로 알려진 야코보 카루치(Jacopo Carucci), 그는 이 새로운 움직임의 위대한 선구자 중 하나였다. 그는 폐쇄적 성격이었지만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인물상이나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빛의 유희를 작품에 반영하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화가였다. 야코보는 어려서 부모와 가족들을 일찍 여의는 비극을 겪고, 할머니에 의해 피렌체로 보내져 당시 고아들을 돌보던 행정관에게 맡겨졌다. 행정관은 어린야코보의 자산을 관리하면서 그를 다빈치와 델 사르토(Andrea del Sarto)의 공방에서 일하게 했다. 그러나 1513년, 19세였던 야코보는 뛰어난 첫 작품과 함께 견습 화가로서의 경력을 끝내버린다.

Pontormo-Visitation of Carmignano, 1528located in Carmignano Church, Tuscany, Italy
Pontormo-Visitation of Carmignano, 1528located in Carmignano Church, Tuscany, Italy

조르죠 바사리는 폰토르모의 초상화를 매우 유망한 예술가이자, 뛰어난 영재의 작품으로 묘사한다.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역시 그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했고, 작품에서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보았다. 정확하게 이 폰토르모의 작품은 전통 회화의 전형에서 벗어나, 당시로는 이해되지 않던 기괴하며, 지나치게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도전이었다. 실제로 폰토르모는 전통과는 먼 자율적이고도 반고전적인 스타일과 밝고 빛나는 색채를 시도함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예를 들어, 그는 중앙을 중심으로 형상들을 배열하던 오랜 이탈리아식 전통을 깨고, 신중한 조절능력을 발휘하여 네 모서리에 등장인물들을 분산시킨다. 인물들의 특별한 자세는 관람자의 시야에 깊이 침투하는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북유럽 예술에서 영감을 받았다.

Mannerism- Agnolo Bronzino- Venus, Cupid Folly and Time 1540-1545- National Gallery London
Mannerism- Agnolo Bronzino- Venus, Cupid Folly and Time 1540-1545- National Gallery London

폰토르모의 새로운 예술적 경향과 개방성은 이탈리아를 뛰어넘었다. 그는 곧 회화적 기술로 명성을 쌓았으며,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을 비롯한 수 많은 부유한 고객들의 의뢰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계속 피렌체를 떠나지 않았고, 1525년 가장 중요한 예술기관 중 하나였던 미술 아카데미(accademia del disegno)의 일원이 되었다.

Jacopo Pontormo, Deposition from the Cross, 1526-1528,Santa Felicita Church, Florence, Italy
Jacopo Pontormo, Deposition from the Cross, 1526-1528,Santa Felicita Church, Florence, Italy

1526년, 산타 펠리치타(Santa Felicita) 피렌체 교회의 바르바도리 예배당(Capella Barbadori)에 그려진 그의 작품은 당대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거리나 원근감에서 벗어난 배경을 바탕으로 각 등장인물들은 비극적, 연극적인 구성에 따라 마치 시대를 초월한 공간에 매달려있는 듯 보인다. 인물들의 몸은 가늘고, 길며, 두상은 작아서, 위쪽을 향해 비약적이며 극적인 인상이 부각된다. 그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색의 음영은 어떤 면에선 무리하고 부자연스러우며, 인물들의 눈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의도적으로 중심부가 비어있다.

Jacopo Pontormo – Deposition from the Cross- 1526-1528 (particular) – Santa Felicita Church – Florence - Italy
Jacopo Pontormo – Deposition from the Cross- 1526-1528 (particular) – Santa Felicita Church – Florence - Italy

 

그러나 아마도 그림에서 가장 흥미로운 측면은 피에타(Piet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일 것이다. 항상 어머니와 아들이 하나가 된 미켈란젤로 풍의 전통적 피에타와는 달리, 폰토르모의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 떨어져 있다. 긴장감을 강조하기 위해 제스처는 두드러지고, 표정은 고통스럽다. 이는 장르 중 유일한 혁명적 작품으로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단언컨대, 회화적 언어의 독창성과 혁명성을 띠는 폰토르모의 위대함은 라파엘로를 능가한다.

번역 | 길한나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글 | 로베르토 파시 Basera Roberto Pasi
Journalist, Doctorate Degree University of Siena(Literature, Philosophy, History of Art with honors), Study at Freiheit Univerisität Berlin, Facilitator at Osho Resort, Poona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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