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마곡사는 태화산의 산과 물의 형세가 쌍태극을 이루는 명당 자리에 위치한다.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염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이름의 유래는 보철화상이 설법할 때 사람들이 마치 삼밭을 이룬 듯 몰려들어 삼골, 즉 마곡이라 하였다고 하며, 이전에 마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신라말부터 고려 초까지 약 200년 간 폐사되어 도둑떼의 소굴이 되었으나,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 지눌이 신술(神術)로써 호랑이를 만들어 도둑을 물리치고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 집결지로 쓰이다가 소실되었는데 1651년(효종 2)에 각순스님이 중수하였다.
마곡사는 김구(金九)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장교 쓰치다를 처단한 김구는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1898년에 반 년 남짓 이 절에서 승려를 가장하여 은신한 적이 있다.
선생은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 독립운동을 했고, 돌아와 남북 단일화에 노력하다가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지금도 백범당 옆에는 해방 후 방문한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마곡천변에는 김구 선생이 삭발했던 바위와 사색하며 거닐던 명상길이 있다.
마곡사에 들어서서 왼쪽의 영산전은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법당으로서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양식을 대표한다. 그 현판은 세조가 김시습을 만나기 위해서 이 절에 왔다가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면서 남긴 필적이라 한다.
영산전은 본래 부처님의 영산회상을 재현해 모시는 곳인데, 이곳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과거칠불과 1,000 부처님을 모셨다.
대웅보전은 조선 중기의 사원건축 양식의 2층 건물로, 외관은 2층이나 내부는 통층이다. 현판은 시문서화 사절로 꼽히던 표암 강세황(姜世晃, 1712~1791)의 글씨이다. 또한, 내전에는 싸리나무 기둥 네 개가 있는데 싸리나무 기둥을 많이 돌수록 극락길이 가깝다고 하며 아들이 없는 사람이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설화가 전한다. 이런 연유로 싸리나무 기둥은 유독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었다.
대광보전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퇴색한 단청에 다양한 꽃살무늬 창호가 아름다운 전각이다. 내전에는 특이하게 비로자나 부처님이 건물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도록 봉안되어 있고 부처님 뒷벽에는 18세기 후반 조선회화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백의수월관음도가 있는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환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관음보살님으로 이름나 있다.
이곳에는 조선 후기에 이름없는 앉은뱅이의 전설이 전한다. 앉은뱅이는 참나무 껍질로 삿자리를 짜면서 법당의 비로자나불께 불구를 고쳐달라고 백일기도를 드리다가 문득 주제 넘는 자신의 소원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겸손히 삿자리를 완성하며 백일기도를 마치고 부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절을 올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걸어서 법당을 나갔다고 한다. 지금도 법당 바닥 아래에는 삿자리가 깔려 있다.
경내 중앙의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탑으로 일명 다보탑 또는 금탑이라고도 부른다. 탑의 1층 몸돌에 자물쇠를 새겼고, 2층 네 면에는 사방불이 양각되어 있으며 상륜부의 청동 풍마 등은 라마식 보탑과 유사하여 원나라 영향으로 보인다. 오층석탑은 세계에서 한국·인도·중국 3개밖에 없는 귀중한 탑이라고 하며 나라의 기근을 3일간 막을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란 별칭처럼 봄이 가장 아름답다는 마곡사는 백제 공산성, 무령왕릉과 함께 꼭 한 번 찾아볼 만하다.
글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