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제의 겨울 궁전이자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사 장소인 호프부르크 비엔나에서 2024년 5월 25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비비눔 국제 와인 페스티벌’에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이 모일 예정이다. 권위가 높은 이 행사는 와인 메이커, 와인 전문가 및 감정가들 모두에게 고위급 만남의 장이다. 오스트리아 수도 중심부의 유명 국립도서관 옆에 위치한 호프부르크 비엔나는 이 성대한 와인 축제에 우아한 배경이 된다.약 400개 업체가 참가하는 비비눔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와인 행사로, 업계 전문가뿐만 아니라 각
[아츠앤컬쳐] 오스트리아와 대한민국에는 많은 정치적 차이점이 있는데, 그 중 몇 가지 주요 차이점을 소개한다.오스트리아의 정부 형태는 연방 의회 공화국으로, 국가 원수는 대통령이고 정부 수반은 총리다. 대통령은 국민 투표로 선출되며 임기는 6년이고 최대 두 번까지 연임할 수 있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며 내각을 이끌고 있다. 의회는 국가평의회와 연방의회라는 두 개의 상원으로 구성된다.대통령제 공화국으로 대통령이 국가 원수이자 정부 수반인 대한민국과 비교하면 그렇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5년 단임제로 국민투표로 선출되며 재선에 출마
[아츠앤컬쳐]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한국-오스트리아 간의 접촉은 188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선박 SMS 노틸러스호(1873년)가 한국의 거문도, 부산, 원산 항에 정박하면서 이루어졌다. 당시 조선의 인구는 683만 가구였다. 1894년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모험가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이 한국을 여행하고 여행기를 책으로 펴내 그 후 20년간 독일 여행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1892년 조선과 오스트리아 간 최초의 외교 조약(조오수호통상조약)은 ‘수호통상항해조약’으로 불렀다. 조선의 고종 황제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황제에게 선
525주년의 오스트리아 음악대사[아츠앤컬쳐] 525년 전 창단된 이래 빈 소년 합창단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합창단으로 성장했다. 소년 합창단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296년 호프부르크 궁정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1498년, 막시밀리안 1세 황제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궁정과 궁정 음악을 빈으로 옮겨 비엔나 궁정 음악대와 비엔나 소년 합창단의 토대를 마련했다. 막시밀리안 1세 황제는 빈의 궁정 음악에 있어 최소 6명의 소년들이 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이들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전례를 담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츠앤컬쳐] 비엔나는 사자死者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어 종종 “사자의 도시”라고 불린다. 이미 약 300만 명의 사람들이 묻혀 있으며, 매년 평균적으로 약 20,000건의 매장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비엔나에는 죽음을 기리는 노래가 있고, 죽음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지며, 결국 비엔나 사람들은 ‘아름다운 묘소’가 되기를 원한다.그러나 아름다운 묘소인 ‘쇼네 라이히(Schoene Leich)’뿐만 아니라 웅장한 무덤도 있다. 이는 비엔나의 묘지 문화를 보여주는데, 묘지는 산책 장소로 자주 선택되며 많은 예술가들이 묘지에서 영감을
[아츠앤컬쳐]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한인은 약 2,500명으로 추산된다. 오스트리아와 한국 간의 첫 접촉은 19세기 중반에 시작되었다.1836년 슈바르첸베르크 왕자 요한 2세가 한국과 중국, 일본을 방문했다. 오스트리아 및 헝가리와의 공식적인 접촉은 1890년 9월 경비함 ‘즈리니’호가 제물포를 방문함으로써 이루어졌다. 1892년 6월 23일 도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뤼디거 프라이헤르 폰 비겔레벤 대표)와 한국 사이에 우호, 무역 및 항해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비준서(1893)는 어뢰 격침 순양함 ‘황제 엘리자벳’(함장 알
니더외스터라이히주의 추수감사절[아츠앤컬쳐] 추석과 마찬가지로 유럽에도 추수감사절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추수감사절은 보통 9월이나 10월에 열린다. 도시에서는 주로 10월 첫 번째 일요일에, 시골에서는 지역과 장소에 따라 9월 말 또는 그 이전에 열리기도 한다.추수감사절(또는 추수 축제라고도 함)은 가을 추수 이후 기독교 신자들이 수확의 선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전통적인 축하 행사로, 3세기부터 기록되어 왔다. 기독교 이전 시대에도 비슷한 축제와 관습이 다른 나라에도 존재했다.이 축제는 보통 9월 말에서 10월 말 사이에
[아츠앤컬쳐] 비엔나에서 약 20km 떨어진 곳에 뫼들링 지역의 락센부르크 마을이 있다. 이 비엔나 남쪽 숲에 있는 옛 여름 황실 궁에는 생생한 역사가 남아 있다. 오늘날 이곳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크고 잘 유지된 공원과 궁전 중 하나로 유명하다. 황제의 발자취를 따라 거닐거나, 그늘 산책, 프란젠스부르크성으로의 보트 여행 또는 낭만적인 피크닉 등, 락센부르크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매우 아름다운 휴양지다. 또한, 자전거 애호가를 위한 광범위한 자전거 네트워크도 잘 닦여 있다.1306년, 합스부르크가는 전 지역을 사냥터로 사용했고, 1
[아츠앤컬쳐] 벨베데레는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일 뿐만 아니라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의 주요 작품과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귀중한 예술 컬렉션 중 하나를 소장하고 있다. 이곳 벨베데레에서 1955년 오스트리아 국가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레오폴트 피글 외무장관이 벨베데레 상부 발코니에서 “오스트리아는 자유다!”라는 문구와 함께 서명하고 선포한 바 있다.역사를 살펴보면, 유럽 귀족인 사보이의 외젠(1663~1736) 공자가 투르크 전쟁의 사령관으로 승리를 이루어 오스트리아가 강대국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외
[아츠앤컬쳐] 1914년 6월 28일, 왕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사라예보에서 암살되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사흘 뒤 총동원령이 내려진다. 실레는 많은 예술가들 사이에 팽배한 전쟁에 대한 애국적인 열정에 동참하지 않았다.그는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기 시작한다. 봄에 그는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인 로버트 필리피로부터 목판화와 에칭의 판화 기법을 소개받았고 사진 작가 안톤 요제프 트르치카와 요하네스 피셔와 협력하여 사진 자화상을 실험했다. 실레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에도 불구하고 전시회가 늘어, 오스
[아츠앤컬쳐] 여름은 축제의 시간이다. 오스트리아에서 6월부터 8월까지 벌어지는 축제를 소개한다.뫼르비슈 호수 페스티벌-노이지들러제 뫼르비슈 호수의 독특한 야외 무대, 국립공원의 자연 경관, 다양한 요리로 결코 잊지 못할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맘마미아! ABBA의 히트곡.장크트 마르가레텐 채석장 오페라는 유럽에서 가장 큰 자연 무대의 독특한 분위기에서 고품격의 화려한 야외 공연으로 전 세계의 경험 많은 음악 애호가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것이다.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그라페네그 클래식 음악 콘서트-비엔나와 바하
[아츠앤컬쳐] 잘츠부르크 축제는 잘츠부르크 페스트슈필하우스 커뮤니티가 만들었으며, 1920년 첫 번째 축제에서 ‘예더만’(보통사람들)을 초연하고, 1922년에는 모차르트 오페라 ‘바스티앙과 바스티엔’을 공연하였다. 1923년은 축제가 없었지만 막스 라인하르트가 레오폴드스크론 궁에서 몰리에르의 연극 ‘상상병 환자’를 무대에 올렸고 후에 주립극장에서 재공연했다. 그리고 1924년에는 자금난으로 잘츠부르크 축제가 완전히 중단되었다. 그러나 1925년에는 소공연장을 열어 첫 라디오 방송을 하고, 브루노 발터가 ‘돈 파스콸레’를 지휘하는 등
[아츠앤컬쳐] 이 도시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미국과 아시아에 널리 알려졌다. ‘모차르트의 도시’라는 표현은 잘츠부르크와 음악, 즉 진부하고 효과적인 광고문구처럼 너무 흔하게 느껴진다.7세기 말 잘츠부르크 음악의 첫 자취는 ‘잘츠부르크의 수도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잘츠부르크 수도사(종종 헤르만, 잘츠부르크 수도사)는 14세기 후반 잘츠부르크의 익명 시인이자 작곡가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아마도 필그림 폰 푸흐하임 II 대주교의 궁정의 사람이었을 텐데, 일부 역사가들은 대주교를 의심하기도 하며 또는 이전의 베네딕토회
[아츠앤컬쳐] 1911년 봄에 그는 모델 발부르가 노이질(“발리”)을 알고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함께 그의 어머니의 고향 체스키크룸로프로 이주한다. 거기서 실레는 예술적으로 유익한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발리와의 자유로운 동거와 야외에서의 누드화가 거부감을 일으켜, 초여름에 다시 그곳을 떠나게 된다.실레는 곧 비엔나 근처의 작은 마을 노이렌바흐에 정착한다. 그는 자연을 즐기며 그곳에 영원히 머물 생각이다. 하지만, 거기서도 뛰어난 발전을 보이다가 곧 중단되고 만다. 1912년 4월, 그는 한 소녀를 납치하고 젊은이들을 폭행한 혐의
[아츠앤컬쳐] 150년 전, 비엔나 만국박람회가 열렸다. 이 인상적인 전시회를 기억하기 위해 비엔나는 전시장 일대를 그린 사진과 엽서를 기반으로 3D 가상 현실을 만들어 제공했다. 비엔나 만국박람회는 황제 요제프 2세가 1766년에 비엔나 주민들에게 휴양지로 기증한 옛 황실 사냥터 ‘프라터’에서 열렸다. 총 233ha 중 16ha에 건설되었는데 이전 파리 만국박람회의 약 5배 크기였다. 그 한가운데 거대한 산업 전시관에서도 대표적인 중심은 철제 중앙 건물인 ‘로툰다’였다.총감독 슈바르츠-센본은 1845년 오스트리아 무역박람회에 에두
[아츠앤컬쳐] 오스트리아 스키장에서 스파와 휴양은 멋진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대다수의 멋진 스키장들은 멀리 산 정상까지 독점적인 휴양시설을 갖추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지역은 해발 약 1,500m에서 시작하는 보랄베르크이다. 이곳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럭셔리한 5성급 호텔이 많이 있는데, 일부 호텔은 겨울에만 운영된다.만약 당신이 의사가 함께하는 치료를 원한다면, 몇몇 다른 장소들을 추천한다. 오스트리아 남부 카린시아주의 유명한 스파 ‘Kurzentrum Warmbad Villach’ 의료휴양센터가 있는 필라흐는
[아츠앤컬쳐] 잘츠부르크는 1815년경 이후 완전히 몰락했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으로 사람들은 도탄에 빠졌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바이에른 주의 국경을 가르는 잘자흐강 근처의 작은 마을 오베른도르프는 괜찮았던 소금 운송업이 헝가리로의 운송권을 잃게 되자, 빈곤함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설상가상으로 홍수 재해와 흉작으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오베른도르프의 성 니콜라스 교회의 오르간 풀무는 쥐가 갉아먹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1818년, 이런 분위기에서 26세의 보조 사제 요제프 모어는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에 깊은 눈속을 걷고 있었다.
[아츠앤컬쳐] 에곤 실레는 1890년 6월 12일 비엔나에서 약 40km 거리인 툴른에서 독일 북부 출신의 아돌프 실레(1850~1904)와 남보헤미아 체스키크룸로프 출신의 마리 실레(1862~1935)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툴른 기차역장이었고 1896~1900년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기차와 역을 그리기 좋아했다. 1904년 섣달 그믐날, 아버지를 매독과 관련된 진행성 마비로 잃고, 삼촌이 후견인이 되었다.1906년 가을, 가장 유명한 예술학교인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한다. 1907년, 처음 만난 비엔나 아르누보의 거장
[아츠앤컬쳐] 유럽의 ‘막걸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 오스트리아나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와인 생산국에는 ‘막걸리’가 있다. 이 ‘막걸리’는 주로 포도를 기본으로 하며 발효가 완료되지 않은 유백색 음료로, 매년 가을 와인생산 과정에서 나온다. 유럽에서는 이 진한 발효 음료를 캔이나 밀폐된 병에 보관하는 방법을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와이너리에서 열린 병이나 주전자에 담아서만 맛볼 수 있다.그 맛은 포도에 달려있으며, 풀바디의 달콤한 맛부터 아주 드라이하면서도 맛 좋은 음료까지 다양하다. 이 포도는 ‘쉴허’라고 하
[아츠앤컬쳐] 오늘날 음식이나 그 기원을 찾을 때 흔히 그렇듯이 아이스크림의 시작은 명확하지 않다. 고대중국에는 첫 먹는 얼음이 이미 5000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다른 예로는 아랍인들이 이른바 ‘샤르바트’를 시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져갔고, 십자군도 그것을 유럽으로 가져갔으며, 마르코 폴로 또한 그의 여행에서 신기한 것을 가져왔다고 한다.고대로마에는 이미 ‘천연 얼음’이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들은 베수비우스와 에트나에서 얼음과 눈을 가져와 과일과 향을 섞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여행 중 전령들이 가져온 눈에 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