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1810~1856)은 낭만주의 예술가곡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예술가곡은 “시와 노래, 그리고 피아노가 하나로 융합되어 가사와 음악의 내용을 충분히 표현한 가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슈만은 초기에 피아노와 같은 순수 기악 작곡가로서 활동했고 “인간의 언어와 결부된 성악”에는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클라라(Clara Josephine Schumann)(1819~1896)와 결혼을 한 해이자, '가곡의 해'라 불리는 1840년에 무려 138곡의 가곡을 작곡하였다.슈만은
[아츠앤컬쳐]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1528~1588)는 르네상스(Renaissance)(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일어난 문예 부흥 운동) 시대의 화가로서 티치아노(Tiziano Vecellio)(1488~1576)에게 큰 영향을 받아, 빈틈없는 구도와 화려한 색채의 장식화를 주로 그렸다. 그는 (1563), (1573)과 같은 작품에 당시의 호화로운 베네치아의 연회를
[아츠앤컬쳐]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1571~1610)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카라바조라는 이름은 그가 태어난 마을 이름에서 딴 성(性)이다.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1853~1890), 피카소(Pablo Ruiz Picasso)(1881~1973), 마티스(Henri Émile Benoît Matisse)(1869~1954)를 비롯하여 미술사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미술가들은 성으로 불린다. 한편,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리는 몇 명
[아츠앤컬쳐] 첼로 협주곡(cello concerto)은 독주의 첼로와 관현악(orchestra)을 위한 협주곡이다. 첼로 협주곡은 역사 자체는 오래되어, 바로크(Baroque) 시절(일반적으로 1600년경부터 1750년경)부터 작곡되어 왔다. 첼로는 따뜻하고 풍성하면서 묵직한 음향 덕분에 관현악에서 가장 사랑받는 악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전주의(1750년경부터 1810년경)에서 낭만주의(1815년경부터 1960년경)에 이르는 주요 첼로 협주곡을 살펴보면, 그 수가 하이든(Joseph Haydn)(1732~1809), 슈
[아츠앤컬쳐] 폴 세잔(Paul Cézanne)(1839~1906)은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화가가 되는 것을 반대한 아버지였지만 나중에는 세잔이 미술을 공부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화가로서 빠른 성공을 기대한 아버지의 희망과는 달리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세잔의 아버지는 세잔이 화가로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을 하며 세잔이 50세가 되는 해에 그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겨줌으로써 세잔은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워진 세잔
[아츠앤컬쳐] 폴 시냐크(Paul Signac)(1863~1935)는 프랑스의 화가로서, 처음에는 모네(Claude Monet)(1840~1926)의 영향을 받아 인상파 화가로 출발하였다. 그 후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1859~1891)와 함께 신인상주의의 입지전적인 존재가 되었다. 점으로 그리는 ‘점묘법(pointage)’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며, 단순하고 신선한 수채화도 많이 남겼다. 그는 작품 심사 없이 누구나 출품할 수 있는 ‘앙데팡당 전시회(salon des indépendants)’의
[아츠앤컬쳐] 에발트 마타레(Ewald Mataré)(1887~1965)는 1887년 독일 부르스샤이트(Burtscheid)(현재는 아헨(Aachen) 지역) 태생의 동물을 모티브로 한 조각 작품으로 잘 알려진 조각가이자 화가이다. 마타레는 1907년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하고, 베를린에 위치한 프로이센 예술 아카데미(Prussian Academy of Arts)에 입학해 회화를 공부했다. 1918년에는 표현주의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결성한 근대 미술 단체 ‘11월 그룹(November Group)’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마타레는 19
[아츠앤컬쳐]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1938~현재)는 독일의 화가이자 조각가, 판화가로서, 그의 본명은 한스 게오르그 케른(Hans-Georg Kern)이다. 그는 독일을 반으로 가르는 벽이 만들어지기 전 서베를린으로 이주했고, 동독에 위치한 그의 고향인 드레스덴(Dresden) 외곽 도이치바젤리츠(Deutschbaslitz)를 그리워하며 해당 지명에서 필명을 따왔다. 그는 일생동안 다양한 논란 속에 자기 방식대로 예술 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초창기부터 기존의 관습에 저항하는 작품을 선보이며 자신이 속
[아츠앤컬쳐] 모리스 프랜더개스트(Maurice Prendergast)(1859~1924)는 캐나다 남동부에 있는 뉴펀들랜드(Newfoundland)주의 세인트존스(Saint John's)에서 태어났다. 프랜더개스트 가족은 1861년 미국 뉴잉글랜드(New England) 지방 남부에 있는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주의 주도인 보스턴(Boston)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프랜더개스트의 형인 찰스 프랜더개스트(Charles Prendergast)도 화가로 활동했으며 그들은 평생 함께 살았다. 프랜더개스트는 직물 가게에서 일하
[아츠앤컬쳐] 튜더 왕조(The Tudor Dynasty)는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1455~1485)을 종식시킨 헨리 7세(Henry Ⅶ)(1457~1509)부터 헨리 8세(Henry Ⅷ)(1491~1547), 에드워드 6세(Edward Ⅵ)(1537~1553), 메리 1세(Mary Ⅰ)(1516~1558)를 거쳐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Ⅰ)(1553~1603)에 이르러 마감된다. 장미전쟁을 통해 귀족세력의 발호가 가져올 수 있는 왕권의 불안정성을 염려한 헨리 7세는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애국심이 강
[아츠앤컬쳐]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는 인상파(印象派)가 절정에 있던 1882년 프랑스 파리 교외의 아르장퇴유(Argenteuil)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건축의 도장 관련 일을 했고, ‘일요화가(日曜畵家)’로도 활동했다. 그래서 브라크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나타냈다. 어린 시절의 그는 주로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의 그림들을 모사(模寫)하였다. 브라크는 15세에 시립미술학교에 다니면서 부댕(Louis-Eugène Boud
[아츠앤컬쳐] 환자를 진료하는 데는 문진, 시진, 청진, 타진, 촉진 등의 방법이 있으며 여기에 사용되는 간단한 기구 중의 하나가 청진기(stethoscope)다. 청진기는 1816년 르네 라에네크(René Laennec)(1781~1826)가 발명하였는데 현재까지도 의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도구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청진기는 폐와 심장은 물론이고 장이나 혈관이 운동하면서 발생하는 소리를 듣기 위하여 사용된다.청진(聽診, auscultation)은 히포크라테스 시절부터 의사들이 사용하던 진찰법이었다. 옛날의 청진은 직접 청진에 해
[아츠앤컬쳐] 안토니오 마리아 에스퀴벨(Antonio María Esquivel)(1806-1857)은 스페인의 세비야(Sevilla)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기병대 대위 프란시스코 에스퀴벨(Francisco Esquivel)과 세비야의 우르비나(Urbina) 가문 출신의 루크레시아 수아레스(Lucrecia Suárez)였다. 에스퀴벨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3년 후인 1808년 바일렌(Bailen)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어머니는 에스퀴벨과 함께 가난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지만, 어려운 시절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홀
[아츠앤컬쳐] 얀 페이트(Jan Fyt(또는 Joannes Fijt) 1611~1661)는 1611년에 벨기에의 앤트워프(Antwerp)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페이트는 그가 12살일 때부터 옛 그림 복원가로 유명했던 얀 베르흐(Jan van Berch, 1587~1660)의 밑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다가, 이후 프란스 스나이더스(Frans Snyders, 1579~1657)의 지도를 받았다. 스나이더스는 주로 정물화, 동물, 사냥 등에 특징이 있는 화가였고 페이트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페이트는 1633~1634
[아츠앤컬쳐]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많이 남긴 미국의 화가다. 호퍼는 1882년 미국 뉴욕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독일계 부모에서 태어나 그림에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실용적인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가 되기 위해 1900년 뉴욕미술디자인학교(New York Institute of Art and Design)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샤스(William Merritt Chase, 1849~1916)로부터 프랑스 인상주의와 작가들의 작품을 알게 되고 로버트 헨리
[아츠앤컬쳐] 토마스 롤런드슨(Thomas Rowlandson, 1756~1827)은 175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은 런던의 유명 방직업자였는데, 섬유 무역업을 하기 위해 과도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1759년 파산 선고를 받고는 결국, 런던에서의 생활을 접고 1759년 말 가족과 함께 토마스의 삼촌 제임스가 있는 노스요크셔(North Yorkshire)로 이사를 한다. 그런데 삼촌 제임스도 1764년에 사망했고, 사실상 숙모 제인이 토마스 롤런드슨의 어린 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주게 된다. 1777년 숙모 제인이
[아츠앤컬쳐] 웨인 티보(Morton Wayne Thiebaud)(1920~2021)는 미국 애리조나(Arizona)주 메사(Mesa)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California)주 롱비치(Long Beach)에서 성장하였다. 어릴 때 웨인 티보는 롱비치 해변에서 신문을 판매하기도 했고, 구조대원으로서 일을 한 경험도 있다고 한다. 그는 1941년 새크라멘토주립대학교(Sacramento State College, 현재 명칭: California State University, Sacramento)를 졸업하였는데 웨인 티보가 오늘날의
[아츠앤컬쳐] 메리 카셋(Mary Stevenson Cassatt)(1844~1926)은 미국 피츠버그 근처에서 태어난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이다. 그녀는 미국 출신이지만 프랑스로 귀화하여 50여 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모 덕분에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였는데, 어릴 때부터 유럽 여행을 하며 프랑스, 독일 등에서 체류한 경험으로 다양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고 한다.카셋은 필라델피아 미술 대학에서 그림을 그리며 화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그 당시 카셋은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누드 드로잉 수업을 받을
[아츠앤컬쳐]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의 희곡 『햄릿(Hamlet)』(1601년 추정)에서 ‘오필리아(Ophelia)’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 인물이다. 그녀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인물로서 『햄릿』에서도 일부 장면에만 등장하는데, 그나마 햄릿에 관해 말하는 내용과 관련하여 거론될 뿐이다. 오필리아는 『햄릿』 내에서 한 번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로 표현한 적이 없다.그래서 평소에 그녀는 작품 내외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해석되기만 한다. 햄릿이 자기 숙부와 근친상간적 결혼을 한 거
[아츠앤컬쳐] 역사화의 배경이나 종교화의 공간 처리를 위한 부속 장치였던 풍경은 1750년대 이후, 풍경화라는 하나의 가치 있는 미술 장르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 변화와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후반 유럽은 전쟁 등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였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자국 내 여행이나 다른 국가로의 여행을 쉽게 떠날 수가 있었다. 이렇게 여행을 하며 보고 느낀 자연의 아름다움과 추억을 남겨두고자 여행객들은 화가들에게 풍경화를 주문하게 된다.풍경화의 부상과 함께 이 분야에 두각을 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