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앞 테라스에서 본 감라 스탄. 오른쪽에 리다르홀멘 교회가 보인다.
시청 앞 테라스에서 본 감라 스탄. 오른쪽에 리다르홀멘 교회가 보인다.

 

[아츠앤컬쳐]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 불릴 정도로 물과 도시가 서로 아름답게 어우러진 매력적인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13세기 중엽 맬라렌 호수와 바다 사이의 섬들을 중심으로 독일계 상인들이 모여 사는 상업 중심지로 발전한 것이 기원이 된다. 이 도시의 심장 감라 스탄(Gamla Stan) 섬을 중심으로 반경 500~700미터 안에는 왕궁, 왕립오페라 극장, 리다르홀멘 교회, 시청사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들이 몰려있다.

감라 스탄에서 다리 건너 북쪽 지역에는 구스타브 2세 광장이 있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1594~1632)라면 17세기에 스웨덴을 엄청난 군사 강국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가 하면 스웨덴 사회를 개혁하고 스웨덴을 문화의 나라로 이끌어 올린 왕은 구스타브 3세(1746~1792)였다. 이 광장에는 19세기 후반에 세워진 왕립오페라극장이 있는데, 원래 이 자리에는 구스타브 3세가 세웠던 스웨덴 최초의 왕립오페라극장이 있었다.

계몽군주 구스타브 3세
계몽군주 구스타브 3세

구스타브 3세는 1772년에 즉위하여 의회와 귀족들의 지위와 권익을 축소하고 전제왕권을 확립하면서도 민중의 편에 선 혁명적인 계몽군주였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여 죄인에 대한 고문을 폐지했고, 사형은 장기 수감형으로 바꾸었으며, 일요일을 제외한 법정 휴가일을 일 년에 20일로 정했고, 스웨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도 종교의 자유를 주었을 정도였으니 그의 사회개혁 정책은 어떻게 보면 프랑스 혁명보다 한발 앞선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귀족들은 그의 정치에 불만을 품었다.

구스타브 3세는 이러한 개혁뿐 아니라 음악, 미술, 문학, 연극, 발레 등 모든 예술 분야를 진흥시키는 데 온 힘을 쏟았는데 한림원, 왕립 오페라단, 왕립 음악원 등을 비롯한 여러 문화기관이 설립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그는 특히 오페라에 관심을 갖고 이탈리아와 독일 작곡가들을 초빙하여 스웨덴 시인들이 쓴 스웨덴어 작품을 기조로 한 스웨덴 오페라를 쓰게 했고, 다른 나라의 유명한 오페라 작품들은 모두 스웨덴어로 번역하여 공연하도록 했으며, 왕립 오페라극장을 1775년에 착공하여 즉위 10주년을 기념하는 1782년 9월 30일에 개관했는데, 이 극장은 19세기까지 스톡홀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오페라극장 중 하나로 손꼽혔다. 그런데 그는 왕립오페라극장 개관 10주년 기념을 반년 앞둔 1792년 3월 16일 저녁, 이곳에서 열리던 가면무도회에서 흉탄에 맞아 쓰러졌다. 범인은 왕의 정책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귀족 장교 앙카르스트룀이었다.

현재의 왕립오페라 극장
현재의 왕립오페라 극장

당시 유럽 사회를 뒤흔들어 놓은 이 암살 사건을 소재로 프랑스 작곡가 오베르는 극작가 스크리브가 쓴 대본에 오페라 <구스타브 3세, 혹은 가면무도회>를 작곡했다. 그러자 이탈리아의 베르디도 그 내용을 이탈리아어로 다시 각색한 대본을 바탕으로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했다. 하지만 왕의 암살 사건을 다룬 내용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당국의 검열로 제목을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로만 하고 작품의 배경도 스톡홀름이 아닌 영국이 식민 통치하던 미국의 보스턴으로 바꾸었다. 게다가 주인공도 구스타브 3세가 아닌 보스턴 총독 리카르도로 바꾸었고 앙카르스트룀도 레나토로 바뀌었다. 오페라에서는 자신의 아내와 총독과의 관계를 의심한 레나토가 가면무도회에서 총독을 칼로 찌른다. 20세기 중반부터 이 오페라는 원작대로 배경을 스톡홀름으로 복원하여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내용은 기본적으로 ‘사랑과 질투’라는 삼각관계에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계몽군주로서 구스타브 3세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엿볼 수 없다.

감라 스탄의 서쪽 섬에 세워진 리다르홀멘 교회는 감라 스탄에서 가장 중요한 랜드마크 중 하나로 높은 첨탑은 어디에서나 눈에 잘 띈다. 이 교회에는 구스타브 3세를 비롯 1632년부터 1950년까지의 스웨덴 국왕들이 잠들어있다. 유럽의 변방이던 스웨덴을 문화적으로 앞선 나라로 이끌어 올렸던 구스타브 3세는 생전에 오페라를 너무나 사랑했다. 하지만 자신의 비극적 죽음이 나중에 오페라화될 줄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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