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참 흉흉한 세상이다. TV 시리즈 드라마 중 스릴러물을 보면 범죄 현장들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대부분 부녀자 납치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미국 드라마들을 보면서 인간이 어떻게 저런 잔인한 짓을 저지를까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잔혹 범죄들이 대한민국의 사회면에 단골 메뉴로 등극한 지 이미 오래다.

최근 ‘힘쎈 여자 도봉순’이라는 코믹 멜로드라마에도 연쇄 부녀자 살인 및 납치 사건이 발생한다. 특정 연극에 광적으로 빠져있는 범인이 극의 내용대로 현실에서 재현하고자 도봉구에서 주인공의 친구를 비롯해 예쁘고 날씬한 여인들만을 자신의 신부로 삼기 위해 납치한다는 설정이다. 여기에 범인이 미쳐있는 연극이 바로 ‘푸른 수염과 7인의 신부’인데 유럽에서 활동하던 시절 일부분이지만 프랑스 작곡가 폴 뒤카(Paul Dukas, 1865~1935)의 오페라 <아리안느와 바버블루(Ariane et Barbe-bleue, 1907)>에서 푸른 수염 역할을 해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뭔 이런 내용의 오페라가 있
는가? 했는데 유럽에서는 우리나라의 콩쥐팥쥐만큼 유명세를 갖고 있는 잔혹동화 스토리다.

실제로 우리가 잘 아는 ‘신데렐라’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 그리고 ‘장화신은 고양이’ 등이 17세기에 활동한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라는 한 사람의 작품이다. 우리에게는 ‘헨젤과 그레텔’, ‘라푼젤’, ‘브레멘 음악대’, ‘개구리 왕자’를 쓴 독일의 그림(Grimm)형제가 잘 알려져 있지만 샤를페로가 이들보다 거의 100년은 앞서 활동했으니 잔혹동화의 원조라고 할 만하다.

푸른 수염은 끔찍한 내용이지만 동화의 모습을 띤 이야기이기에 만화영화로 많이 제작된 단골 메뉴이며 연극을 거쳐 오페라로 제작되는 예도 심심치 않게 많았다. 특히 오히려 성인들이 감상하기에 적당한 내용이라 여러 작곡가들에 의해 무대 위에서 공연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초연된 오펜바흐의 푸른 수염은 <카르멘>의 대본가 ‘앙리 메이악(Henri Meilhac, 1831~1897)’이 맡아 바람난 남편이 전 부인을 죽이고 새 신부를 얻는다는 원작보다 더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작된다.

오페라들마다 아내들의 숫자와 이름들이 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푸른수염이 절대 열지 말 것을 당부한 비밀의 방에 전 부인들이 살해되거나 갇혀있다는 사실이다. 뒤카의 작품은 마지막 부인에 의해 여인들과 푸른 수염이 구원받는 결말이고, 바르톡의 작품은 마지막 부인이 푸른 수염을 너무나 사랑해서 영원히 푸른 수염의 기억 속에 남겠다고 일곱 번째 방의 어둠 속에 스스로 갇히면서 끝난다.

폴 뒤카와 벨라 바르톡(Béla Bartók, 1881~1945)의 작곡 배경에 공통점이 있는데, 둘 다 대본가가 먼저 오페라 제작을 제안했다는 것, 그리고 이 작곡가들은 섭외대상 1순위가 아닌 차선책이었다는 것이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1892>의 희곡을 쓴 ‘모리스 메터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라는 프랑스의 유명 희곡작가는 처음부터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 1843~1907)에게 자신의 대본을 헌정하려던 계획이었고 약속도 했었으나, 그리그가 작곡하겠다던 굳은 약속을 저버리게 되면서 폴 뒤카에게 대본이 돌아갔다. 그래서 탄생한 3막 오페라가 <아리안느와 바버블루>이다.

전 부인들의 이름은 대본가의 여러 전작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이름들을 마구 가져다 썼다. 극 중 아주 잠깐 나오는 ‘멜리장드’라는 전 부인이 있는데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에 드뷔시가 작곡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중 멜리장드의 테마음악을 사용했다. 물론 오페라 처음부터 악보에 출처는 분명히 밝혔다.

또 다른 푸른 수염을 소재로 한 작품은 헝가리 대본가인 벨라 발라즈(Béla Balázs, 1884~1949)가 쓴 대본으로 시작한다. 자신의 룸메이트인 졸탄 코다이(Zoltán Kodály, 1882~1967)가 작곡한다는 전제하에 대본을 썼지만 정작 코다이 보다는 또 다른 친구였던 바르톡이 더 적극적으로 작곡을 했다. 이 작품은 원래 생각했던 작곡가들에게 가지 못할 운명이었나 보다. 우여곡절 끝에 작곡된 작품은 1시간 조금 넘는 분량에 겨우 두 명의 주인공만 등장해서 흥미 요소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곤 했다. 바르톡 자신도 그다지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작곡 초기 극장 공연 기피 대상의 오페라였다. 하지만 현재까지 살아남아 세계 주요 극장에서 심심치 않게 공연되는 걸 보면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에는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는 듯하다.

이런 잔혹 소재의 작품들이 나온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사회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자각하고 현실에서 바른 방향으로 다잡아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임에 틀림이 없다. 집을 나서기 전 현관 주변에 거울이 있는 이유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잘못된 점이 보이면 고치고 나가라는 것이다. 예술이 바로 시대의 거울이다. 왜곡 없는 거울은 시대의 양심이다. 고로 예술을 지키려는 예술가들의 책임감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인 것이다.

신금호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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