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2017년 새해 들어 가장 추운 체감온도가 20도에 육박한다는 1월 14일 토요일 오후 6시, 합정동 언저리에서 박창수 대표를 만났다. 예술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시간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약속시간 2분 전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으니 무척 반갑고 신선했다. 지난 1월 4일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깜짝 출연으로 새롭고 역동적인 무대를 연출하며 진한 감동을 주었던 제514회 더하우스콘서트(제6회 번개콘서트) 이후 딱 열흘 만에 인터뷰를 목적으로 다시 만났지만, 그의 눈빛을 본 순간 형식적인 인터뷰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었다.

“더하우스콘서트(The House Concert),
2002년, 15년, 514회 콘서트,
서울대 출신의 천재…”

2017년 현 시점으로 더하우스콘서트를 이끌어온 박창수 대표를 생각할 때 사회적으로 따라오는 꼬리표 같은 식상한 개념이다. 좋게 말해서 훈장, 레떼르 라고 할 수 있겠으나 애써 평가를 만드는 듯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30대였던 청년이 중년이 되어 내 앞에 있었다. 적당히 은은해진 눈빛을 가지고 자기만의 나이테를 이루고 있는 그에게 더 이상 장황한 수식어는 필요치 않았다. 온화한 표정의 박 대표가 지그시 눈감고 잠시 생각하는 짧은 순간, 오늘의 인터뷰가 지혜롭지 못한 콘텐츠 양산의 목적성만 드러나는 듯해서 머쓱해졌다. 본디 인터뷰 약속을 하면서 그에게 던지고자 했던 질문은 한 단어 <Why>였다. 하지만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인터뷰를 해 왔을 박 대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그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음미할 시간과 편안한 공간을 통해 사유하도록 배려하는 것일 뿐이고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Taeuk Kang
ⓒTaeuk Kang

 

그렇지 않다면 쥐어짜듯 묻고 답하고 적당히 긴장감이 흐르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나 또한 통속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인터뷰를 내심 마뜩잖게 생각했던 터라 그냥 편안한 티타임을 누리도록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예상했던 질문을 하지 않는 나를 의아하게 보던 박 대표도 내 뜻을 전해 듣고는 한결 편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는 토끼처럼 난 Interviewer 노릇 대신 또 다른 관객으로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2002년 시작된 그의 실험적인 무브먼트는 연희동 어느 공간에서 시작되어 더 많은 관객과의 만남을 위해 매주 새로운 무대를 연출하고 있고 또한 원먼스페스티벌(One Month Festival)을 통해 세계 28개국 142개 도시에서 425개의 공연을 진행하며 다양한 뮤지션들과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짧은 지면에 더하우스콘서트를 훌륭한 무대로 채워온 강선애, 한진희 매니저의 수고와 열정 그리고 박창수 대표의 새로운 무대를 위한 창작의 깊은 고민과 남모를 고독한 시간을 인터뷰 지면 속에 우겨 담는 것은 욕심이었다. 그간 긴 세월 동안 부드럽고 장중하게 진행되어온 그의 정성 어린 작업을 생각할 때, 이번 인터뷰는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마침표가 아니라 느낌표로 중략을 한 채 15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박창수 대표를 만나 파트투(Part two)로 이어져야 될 듯 하다.

아마도 그때는 햇살이 넉넉한 가을 무렵 노을을 배경으로 못다한 무대 이야기를 하며 그와 캐모마일 차 한잔을 하고 싶다. 뚜벅 뚜벅 문이 열리고 어둡고 텅 빈 공간, 육중한 스타인웨이 피아노 하나, 아직 오지 않은 관객들의 자리, 더하우스콘서트 그곳에는 박창수 대표가 있을 것이다.

글 | 이정제 (문화평론가, Opus On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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