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2012년 6월 21일 밀라노의 베르디국립음악원 성악과장을 만나러 그의자택을 방문했다. 한국 성악도들이 많이 유학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국립음악원 학제변화와 한국 유학생들의 평가 등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을 데메트리오 꼴라치 교수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
전동수(이하 전) : 지난 3월에 만난 후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데메트리오 꼴라치(이하 데) : 저 역시 반갑습니다.
전 : (‘데’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며)이것은 포크의 종류로 나무로 수제 작업 한 것입니다.
데 : 감사합니다. 매우 친절하시군요. (선물을 만지작거리며) 저는 한국적인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도 한국으로부터 온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작년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위한 음악회에 출연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었습니다. (선물을 다시 보며) 정말 아름답군요.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한국이라는 땅을 엄청 사랑합니다.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서울이나 대구에서 제가 느꼈던 점은 한국인은 매우 친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공기는 마치 이탈리아에서 느끼는 것과 같았습니다.
전 : 한국도 이탈리아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져 있어서 반도국가의 기질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데 : 그래서 저는 한국에 있는 동안 너무 잘 지냈습니다. 또한, 서울대 음대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했는데 아마 한 번쯤은 더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서울음대 측에서 다시 한번 초청했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방문할 생각입니다. (서울대학교 로고 메달을 보여주며) 이것은 그들이 저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해 준 메달입니다.
전 : 아 그렇군요. 제 모교가 바로 서울대 음대입니다.
데 : 그러시군요.
전 : 교수님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먼저 음악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데 : 저는 피아니스트와 미술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가족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입니다. 아버지는 미술을 하셨는데 조각가였고 저의 삼촌은 영화감독이십니다. 문화예술을 사랑한 가족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하게 되었고, 어렸을 적부터 음악에 흥미를 가지고 성장했습니다. 저는 8살 때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17살에는 대중가요도 불렀고 공연도 많이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31명의 대중가수와 이탈리아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목소리가 성숙해지며 성악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미 피아노를 공부하던 중이었고 지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7살에 국립음악원에서 성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처음 배웠던 선생님은 MARINA PINTUS라는 분이셨는데 그분은 유명하신 CORELLI 선생님과 함께 공연을 하셨습니다, 또한 저는 ROSA UCELLO선생님과도 공부를 했습니다. ROSA UCELLO 선생님은 성악선생님이셨고 MARINA PINTUS 선생님은 연출선생님이셨습니다. 24살에 저는 만점으로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는데 졸업하기 전에 저는 굉장히 중요한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특히 저는 TITTO GOBBI 선생님의 거의 마지막 제자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바리톤으로서 전문적인 성악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졸업한 후에 저는 ALFRED CRAUS 선생님과 만나게 되었고 선생님과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지휘를 공부하며 음악을 해석하는 공부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SPOLLETTO 콩쿨에 나가서 ‘시몬 보카네그라’를 포함한 베르디 음악과 푸치니 음악으로 콩쿨에서 수상하게 되어 1988년 9월 SPOLLETTO에서 오페라 ‘돈 카를로’의 로드리고 역으로 오페라 데뷔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시몬 보카네그라’를 BARI의 PETRO ZELLI 극장에서 지휘자 DANIEL L’OREN 선생님과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오페라 ‘UN BALLO IN MASCHERA’의 RENATO 역, ‘LA TRAVIATA’의 제르몽 역, ‘RIGOLETTO’와 ‘IL TROVATORE’ 푸치니 오페라 중에서는 시칠리아 팔레르모에 있는 MASSIMO 극장에서, ‘TURANDOT’ 등 많은 오페라를 하였습니다. 또한, 하이든의 ‘INFEDELTA DELUSA’ 등 현대 오페라도 했었습니다. 베르디와 포레의 레퀴엠 연주 등을 비롯하여 많은 연주를 했는데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연주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앞에서의 연주회였습니다.
전 : 어느 국립음악원에서 공부하셨나요?
데 : 처음에 REGGIO CALABRIA 국립음악원에서 공부하였고, 메시나 국립음악원에서 졸업을 했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거기서 만났고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칼라브리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사투리의 문제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만난선생님 덕분에 소리와 발음을 할 때 어디에 중점을 두고 노래를 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목소리나 발음에 있어서는 단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좋은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을 사사했다고 늘 생각하고 있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전 : 이탈리아 국립음악원의 학제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음악원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비엔뇨(biennio)나 뜨리엔뇨(triennio)로 학제가 바뀌고 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데 : 확실히는 기억 못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이탈리아의 국립음악원과 대학교 과정을 합치려는 법이 생겨났습니다. 1999년도부터 대학과정처럼 시스템이 바뀌고 있습니다. 원래의 음악원체재를 유지해가면서 수업내용이나 과목들이 조금씩 변화해가며 새롭게 자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보충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많아서 현재에도 큰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새로운 과정을 만들면서도 이전의 것들을 유지해야 하므로 아직도 많은 고민과 회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부터 이어져 왔던 학교전통이나 학사과정을 새로운 시스템으로 만든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유럽음악에서 뮤지컬이 새롭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1993년도에는 푸치니 음악 자체가 현대음악으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푸치니의 음악이나 브람스의 피아노곡들을 더는 현대음악으로 볼 수 없고 레스피기나 마데르나 같은 현대의 작곡가들이 생겨났으며 더 많은 장르와 더 다양한 곡들이 나오고 있어서 새로운 변화에 준비해야 합니다. 뮤지컬 같은 장르의 음악이 1700년대나 1800년대 음악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러한 것 또한 우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베르디국립음악원을 졸업하려면 적어도 2개의 오페라 전곡을 공부해야 가능합니다. 이것 또한 굉장히 중요한 것들이고 현재 학교에 새로 생긴 5개 과목 중 선택할 수 있는 수업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앙상블수업은 저의 경험으로 봤을 때 극장에서 노래하는 데에서 매우 중요한 과목으로 2~3명의 연주자가 함께 목소리를 맞춰 지휘자를 중심으로 오페라의 중창이나 대화하는 레치타티보, 그리고 합창에서의 곡 중 솔로를 공부할 수 있는 과목입니다. 이런 새로운 과목들이 비엔뇨 와 뜨리엔뇨 과정에 생겨나며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비엔뇨 와 뜨리엔뇨는 무엇일까요? 현재로서는 첫 번째 레벨(primo livello)과 두 번째 레벨(secondo livello)로 나누어지기도 하는데요. 3년짜리 과정인 뜨리엔뇨는 기본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시창·청음 이나 기본 이론들, 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화성학·음악분석, 음악사·시와 드라마를 포함한 문학에 나오는 모든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대본수업,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발성법·레퍼토리수업 등을 공부하는 기본적인 과정입니다. 뜨리엔뇨를 마친 학생들은 성악곡을 어느 정도부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현재 뜨리엔뇨 과정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전의 5년 짜리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수업들을 이수한 학생들은 비엔뇨 과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현재 학교에서는 두 번째 레벨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2년 과정으로 전문연주자를 양성하는 코스입니다. 더 중요하고 깊이 있는 음악 공부를 위해 전문성을 가진 과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업 안에는 오페라를 공부하는 비중이 제일 크며 이탈리아 오페라를 포함하여 외국 오페라를 공부하고, 과목 선생님들과 성악선생님들은 그 학생에게 맞는 레퍼토리와 역할을 중심으로 수업이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노래를 배웠어도 자기에게 맞지 않는 역할이나 오페라를 했을 때에는 발성에 무리가 따르고 음악을 표현하는 데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 : 그럼 현재 이탈리아의 모든 국립음악원은 새로운 과정으로 이미 바뀌었습니까?
데 : 이미 모든 학교가 바뀌었고, 아직 졸업하지 않은 예전 5년 과정의 학생들만 이전과정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저희 음악원에서 새로 준비 중인 과정이 있는데...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년부터 마스터 성악과정 수업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수업은 정말로 높은 레벨의 성악가를 양성하기 위한 수업이 될 것이며 비엔뇨 과정보다 더 전문성을 가질 수 있는 과목들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전 : 그렇다면 뜨리엔뇨 다음에 비엔뇨 그다음에 마스터라는 말씀이신가요?
데 : 네, 그렇습니다.
전 : 박사과정은 없습니까?
데 : 현재 박사과정 또한 우리가 생각하고 있고 준비 중입니다. 뭐든지 하나를 시작하면 최고의 레벨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하므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뜨리엔뇨와 비엔뇨의 코스가 생겨났듯이 앞으로 박사과정 또한 생겨날 것입니다. 내년에 생길 예정인 마스터과정을 지나 박사과정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스터과정을 2년을 생각하고 있고 졸업 후에 박사과정을 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전 : 현재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성악가로서 성장하고있으며 이미 무대에 서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한국 성악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데 : 제 생각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탈리아와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달리 한국인은 정감 어린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탈리아는 오페라가 탄생한 나라이며 평생 오페라를 생각하는 나라입니다. 헌데 한국은 이탈리아처럼 오페라를 그렇게 많이 접하지 않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에 대해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보고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한국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들은 이미 좋은 소리를 가지고 오페라 무대에서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먼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와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고향인 칼라브리아를 떠나 밀라노에 살면서 공부에 대한 열정이나 무대에 서는 즐거움으로 타향생활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들도 그러한 열정이 있기에 힘든 유학생활을 잘 견뎌낸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은 정말 굉장히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한국에는 오페라를 잘 가르칠 수 있는 좋은 선생님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 마지막으로 이번 ‘베르디국제콩쿨’에서 한국인이 1·2·3등을 다 차지했는데...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데 : 저는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정말 잘하는 성악가들은 이탈리아에서 존중해야 합니다. 다른 외국인들보다 두드러지게 노래를 잘 불렀기 때문에 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베르디국제콩쿨은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콩쿨입니다. 이 중요한 콩쿨에서 그들이 노래를 잘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에서 보듯이 이탈리아는 외국인들에게 굉장히 열려있는 나라입니다. 이탈리아는 외국인에 대해 차별이나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노래를 잘한다면 그 사람이 상을 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지요.
전 :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궁금했던 점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데 : 저 또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집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에 한국에 갔다 온 이후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저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나라로 생각되어왔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지 ‘아츠앤컬쳐’와 인터뷰를 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음에 다시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지면 한국에서도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담 | 전동수 발행인 자료번역 | 현진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