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의 문화읽기

워싱턴현대미술관 이동통로
워싱턴현대미술관 이동통로

[아츠앤컬쳐] 앤디 워홀, 잭슨 플록, 로이 리히텐슈타인…. 모두 작고한 화가지만, 소더비 경매에서 최고가를 갱신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현대 화가들이다. 이게 그림 가격이 맞나 싶어 ‘0’이 몇 개인지 다시 세어보게 만드는 작가들. 가격은 보통 수백억대를 호가하곤 한다. 빌게이츠가 잭슨 플록의 그림 한 점을 팔아 언론사를 샀을 만큼,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그림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현대미술관에도 세계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들의 그림이 한 점이라도 있었으면 싶어 안타깝다. 외국 출장길에 시간을 내어 현지 미술관에 들르면, 처음에는 명작 감상에 신이 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부러움에 풀이 죽곤 한다.

하나에 수백 억대에 이르는 귀한 그림을 방마다 걸어 놓았으면 삼엄한 경비에 숨죽이고 관람해야 맞을 것 같은데, 의외로 외국의 현대미술관들은 그렇지 않다. 큼직큼직한 현대미술 작품조차 웬만해서는 왜소해 보일 만큼 널찍한 미술관은 마치 어린이 놀이터를 방불케 하고, 그 공간을 만끽하는 어린이들의 몸짓은 자유롭기 그지없다.

언젠가 한・미・일 의원회의의 참석차 워싱턴에 갔다가 오후에 잠깐 짬을 내 현대미술관에 들렀다. 2002년 넉 달 동안 워싱턴에 있는 연방항소법원에서 일하는 동안, 시내 미술관을 자주 다녔었다. 8년 만에 다시 찾으니, 기존의 미술관 반대편으로 현대미술관 동이 증축되었다. 두 미술관은 우주의 터널을 지나가는 것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별빛을 맞으며 긴 컨베이어벨트로 이어져 있었다. 신기해서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로비의 중앙 천장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움직이는 조각, 모빌의 대명사인 미국 출신 칼더의 상징적인 모빌이 걸려 있었다. 전시장 마당에는 선생님을 따라왔는지, 엄마를 따라왔는지 올망졸망한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품을 따라 그리는 아이, 선생님과 대화하는 아이, 한눈파는 아이…. 선생님과 아이들의 대화를 잠시 엿들으니, 절로 웃음이 날 정도로 엉뚱한 답변을 해대는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발상에 선생님은 연신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작품에 경보기가 울리는 근거리까지 가지 않는 한, 아이들은 마음껏 앉거나 돌아다니면서 미술관에서 놀이를 즐겼다.

거대한 놀이터의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거대한 놀이터의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2010년 7월 한영 포럼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을 찾았다. 해외여행이라고는 처음이었던 대학 2학년인 1985년에는 런던에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아직 생기기 전이었다. 현대미술까지도 테이트 갤러리에 쑤셔 넣은 듯 다닥다닥 전시되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발전소였던 건물의 내부를 다 들어내고 현대미술관으로 변신시킨 테이트 모던은 명실상부한 거대한 놀이터였다. 테이트 모던을 보고 오겠다고 하니 한 친구가 “너도 미끄럼 한번 타보고 와”라고 했다. 부지런히 전시와 철거를 거듭하는 통에 전에 있었다던 미끄럼틀은 찾을 수 없었지만, 자료사진을 보니 물놀이 공원에나 있을 법한 미끄럼틀이 미술관 3층과 5층에서부터 로비까지 구불구불 내려와 있었다.

각 방마다 안내원들이 있었지만, 플래시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거나, 최소한의 돌출행동만을 제재할 뿐, 이들의 존재감을 거의 느낄 수 없을뿐더러 상당히 세련되고 전문적이었다. 미술관에만 들어가면 유난히 크게 울리는 내 하이힐 소리 때문에 숨죽이고 눈치 보게 되는 우리의 미술관과는 사뭇 달랐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관람료는 무료지만, 기부금을 넣는 곳이 시선을 끌고 재미를 유발하도록 설치되어 있었다. 미술관들은 앞다투어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보일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더 오래 미술관에 잡아 둘까 연구하는 놀이공원 같은 마케팅을 펼치고 있었다.

파리퐁피두 미술관 외관
파리퐁피두 미술관 외관

퐁피두도 마찬가지였다. 미술관 앞 광장의 니키 드 샹팔의 장난스런 분수 조각이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른인 나도 물줄기를 맞아 해괴하게 움직이는 총천연색 조각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울 지경이니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파랑, 초록, 노랑, 빨강의 공기, 물, 전기 배관을 모두 건물 밖으로 꺼낸 건물 디자인도 아이들에게는 장난스럽다. 마치 정맥, 동맥, 심줄이 그대로 드러난 인체 해부도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여름에는 아예 미술관 로비를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10대들을 위한 행사를 마련한다. 10대들이 좋아하는 DJ, 록 밴드, 댄스 베틀을 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현대미술의 창작 체험이 가능하도록 현대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따라 아이들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참여하게 한다. 

한 작가는 광주리 가득 테니스공에 색색의 물감을 묻혀 캔버스로 두른 벽에 대고 벽치기를 하게 해서 공에서 찍히는 물감 자국으로 작품을 만드는가 하면, 색색의 풍선을 불어 터뜨린 후 여러 명의 아이들로 하여금 무작위로 붙여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무한한 재료, 무한한 표현, 무한한 방식에 도전하는 현대미술을 체험하게 한다.

현대미술은 인간의 생각, 인간의 도구, 인간의 표현 방법이라는 한계를 뚫고 창조의 외연을 넓혀 가는 종합적인 노력이다. 우리의 현대미술 공간이 너무 어른들의 눈으로 점잔만 빼는 건 아닌지, 《어린왕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어른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어른들에게 늘 설명을 하자니 어린이로서는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헌사에서 생텍쥐페리는 말했다. “어른들도 한때는 모두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창작력의 기관실인 동심을 빨리 가까이 둘 생각을 해야겠다.

국회의원 조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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