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누리는 자의 것이다

 

[아츠앤컬쳐] "바쁘다, 바빠"... 우리는 늘 비명처럼 바쁘다 소리를 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없다"는 말도 수없이 하며 살아간다. 왜 그토록 시간이 없는 것일까. 왜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뛰어야만 하는 것일까. 밀란 쿤데라는 사람은 자기의 육체 속에 물집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쁜 호흡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를 서두르게 하는 그 물집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생계의 물집일 수도 있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한 욕망의 물집일 수도 있고, 약속을 지키기 위한 언약의 물집일 수도 있다. 그런 물집 때문에 숨 가쁜 호흡으로 뛰어가는 우리. 내 안에는 어떤 물집이 있어서 뛰어가는 것인지, 생의 속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날, 이 영화를 보았다. <인 타임>. 2011년 앤드류 니콜 감독이 연출하고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에서는 말 그대로 시간이 돈이다. 돈으로 시간을 사고 파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인간은 모두 25세가 되면 노화를 멈춘다. 그러니까 자식도 부모도 노인도 모습은 모두 25세에서 멈춘다.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시간을 벌지 못하면 곧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25세가 되면 팔뚝에 ‘카운트 바디 시계’가 새겨진다. 그리고 1년의 유예 시간을 제공받는다. 1년이라는 그 시간으로 사람들은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낸다. 커피 1잔에 4분, 권총 1정에 3년, 스포츠카 1대에 59년... 모든 것은 그렇게 시간으로 계산한다. 그러나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 팔뚝에 새겨진 시계가 멈추면 그 즉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윌 살라스(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아침에 일어나며 이렇게 독백한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이제 돈이다. 부자는 영원히 살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손에 쥐려고 하루를 보낸다.'

그날 윌은 많은 수명을 지닌 헤밀턴이라는 남자를 우연히 만난다. 이미 105세가 된 그 남자는 시간에 지배당하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미련도 없다. 위기의 상황에서 시간 부자의 생명을 구해준 윌은 그에게서 시간의 비밀을 듣게 된다.

"소수의 영생을 위해서 다수가 죽어야 돼. 누구도 시간이 없어 죽을 필요는 없어."

부자는 윌에게 묻는다.

"자네의 시계에 나만큼 시간이 있다면 뭘 하겠나?"

윌은 대답한다.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내게 시간이 있다면 당신처럼 시간을 헛되이 쓰지는 않을 거예요."

105세의 부자는 윌에게 자신의 시간을 모두 충전시켜준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부자는 윌에게 "내 시간을 낭비하지 말게"라고 창문에 써놓고 밖으로 나가 죽음을 맞는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갖게 된 윌은 어머니에게 달려간다. 어머니는 열심히 일하고 대출금을 갚아나간다.

"대출하신 이틀이 상환되셨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버스를 타러 간 어머니는 버스 값이 두 시간이라는 말에 놀란다. 대출시간을 갚고 나니 팔뚝에 새겨진 시계에는 이제 한 시간 반 밖에 남지 않았다. 버스는 매몰차게 떠나버리고 어머니는 아들이 기다리는 정류장까지 뛰기 시작한다. 정류장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던 윌은 버스에서 어머니가 내리지 않자 불안감에 어머니를 향해 뛰어간다. 죽을힘으로 아들을 향해 뛰어가는 어머니, 안간힘으로 어머니를 향해 뛰어가는 아들... 두 사람은 서로 가까워져간다. 그러나 그 조금의 시간이 없어서 어머니는 아들의 앞에서 죽어간다. 눈 앞에서 시간이 없어서 죽어간 어머니를 안고 윌은 오열한다. 그들에게 시간은 돈이 아니라 목숨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어머니를 구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소수의 영생을 위해 다수가 죽어야 하는 시스템의 비밀을 듣게 된 윌은 졸지에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쫓기게 된다. 윌은 부자들이 모여 사는 뉴 그리니치로 잠입한다. 끈질긴 타임 키퍼 (경찰)의 추적으로 체포될 위기를 맞지만, 와이스 금융사의 회장 딸인 실비아(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인질로 삼아 간신히 탈출한다.

실비아는 윌에게 말한다.

"가난한 이는 죽고 부자는 살죠. 이건 사는 것도 아니죠."

윌과 실비아는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함께 전세계를 통제하는 시스템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타임키퍼들에게 쫓기며 시간 은행을 터는 두 사람은 시간을 훔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안 갚아도 되는 시간을 나눠드립니다. 시간을 가져가세요. 한달이든 1년이든 어서요!"

사람들이 시간 칩을 가져가느라 아우성이다.

시간을 얻기 위해 뛰고 뛰고 또 뛰는 윌과 실비아... 위험한 생의 고비를 넘어선 두 사람은 이렇게 묻고 답한다.

"시간 얼마나 있어?"

"하루. 하루면 많은 걸 할 수 있지."

영화 속에서 시간을 얻고 뺏기 위해서 뛰고 또 뛰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지금의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SF 영화가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누리는 자와 시간에 쫓기는 자, 과연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일까? 자기 페이스대로 삶의 속도를 결정할 줄 알며 남의 속도에는 초연한 사람, 그리고 남의 속도에 내 보폭을 맞추며 허둥대며 달려가다가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그 속도감을 잃어버리는 사람, 이 두 사람의 비유는 마치 설화 속의 토끼와 거북이 경주를 떠올리게 한다. 누가 앞에 가든 쫓아오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보폭으로 꾸준히 발걸음을 쉬지 않았던 거북이, 뒤를 끊임없이 돌아보며 쫓아오는 거북이가 보이지 않자 낮잠을 청하다가 거북이에게 뒤쳐진 토끼 이야기,. 우리는 과연 이 중에 어떤 타입일까?

남에게 나를 맞추다보면 늘 조급하고 늘 허기가 지고 늘 고달프다. 그러나 나에게 나를 맞추면 내가 나를 조정할 수 있게 된다.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나에게 맞는 정도와 수준으로 나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가며 결코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초연함... 이 과속의 시대에 지녀야 할 중요한 삶의 덕목은 아닐까? 

송정림 방송작가, 소설가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