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의 문화읽기

각상차림으로 진행되는 식행사장.1인당 음식을 앞에서 올리는 한국전통서비스형태.
각상차림으로 진행되는 식행사장.1인당 음식을 앞에서 올리는 한국전통서비스형태.

[아츠앤컬쳐] 올해 가구박물관 정미숙 관장은 성북구청과 함께 전통 의식주 체험 행사를 했다. 첫 번째 ‘의’ 체험은 궁중복식연구원의 전통혼례복 패션쇼였다. 많은 외국 대사 부부들이 참석했다. 우리가 늘 접하는 한복보다도 더욱 격식을 갖춘, 그야말로 자부심 느낄 수 있는 그런 전통의상이 선보였다. 휘날레는 녹원삼이었다. 화려한 의상 안에 입은 것을 하나씩 펼쳐 보였다. 놀랍게도 열두 벌의 옷을 안에 입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영화 ‘마리 앙트와네트’를 보고 프랑스 궁정의 의생활에 놀라듯, 우리 복식의 정성과 격식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가구박물관에는 이런 저런 행사 차 여러 번 왔었다. 부엌 채에서 디너도 해봤고, G20 영부인 식사를 했다는 곳에서도 한번 행사를 참석해봤다. 모두 열 한 채의 집으로 되어 있다는 이 집은 어느 곳에서나 셔터를 누르면 작품 사진이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마당. 이집 마당에 서면 낮은 울타리 밖으로 시내 풍광이 한 눈에 보인다. 특히 밤에는 은은한 조명까지 받은 서울성곽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어 정말 몇 백 년 전의 모습을 찍은 사진 위로 현재의 모습을 이중 촬영한 사진을 보는 듯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 집에 오기를 여러 번 했지만, 늘 이야기 거리가 너무 많아 와도와도 스토리는 끝이 없었다. 얼마 전에는 ‘식’ 음식 행사를 했다.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꽃장식과 먹감나무 그리고 민화특별전과 유기특별전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꽃장식과 먹감나무 그리고 민화특별전과 유기특별전

한식정찬시연 행사의 주제는 ‘가을과 감’이었다. 식재료도 감을 주요 소재로 했고, 특별전으로 먹감나무로 만든 가구를 위주로 전시를 꾸몄다. 정관장은 그 전날 민화 박물관에서 민화를 한 트럭 빌려왔다고 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감 가지에, 먹감나무 가구에 민화 병풍을 둘러 놓았다. 멋진 인트로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반으로 각상을 받듯, 작은 테이블을 짜서 스무 명 되는 손님들을 앉혔다. 첫 번째 코스가 되니, 스무 명의 남녀 직원들이 음식을 하나씩 들고 들어왔다. 남자들은 검은 공단으로, 여자들은 검은 갑사로 예쁜 덧옷을 해 입었다. 조끼라고 하기에는 길었고, 에이프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급스런 유니폼이었다. 모두들 누가 어떤 테이블에 서빙을 하는지를 미리 정해 놓았다. 쟁반에 담긴 음식 뿐만 아니라 이들이 서빙하는 모습 자체가 예술이었다. 문득 한 지인으로부터 들은 프랑스 대통령 초청 만찬 얘기가 생각났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그동안 문화 예술 부분에 기부 또는 기증을 활발히 한 인사들에 대해서 감사의 저녁을 한다고 초청장을 보냈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설레였고, 그중 몇몇은 내가 과연 이런 초청을 받을 만큼 기부를 많이 하지 않았다 싶어서 서둘러 퐁피두에 작품을 기증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저녁 자리에서 주된 이야기 거리는 기부한 작품이 될 터인데 변변치 않은 작품을 기증했다가 저녁 자리에서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후문이었다. 만찬장은 미술관에서도 좀처럼 공개하지 않는 작품들로 꾸몄다. 모든 게 황홀했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메뉴였다고 했다. 그 메뉴에는 다름 아닌, 그날 서빙하는 직원들의 옷을 누가 디자인 했는지를 적어 놓은 부분이었다. 이런 대통령의 만찬에 우리는 메뉴가 무엇일지 가장 신경을 쓰지만, 프랑스는 이미 그 수준을 넘었던 것이다. 그날 직원들의 유니폼 디자이너까지 메뉴에 오르는 건 물론, 그들이 입은 옷은 이제 대통령궁의 전시장의 쇼 케이스에 들어간다고 했다.

지난 G20 정상배우자 오찬 장소였던 한국가구박물관 특별전시실
지난 G20 정상배우자 오찬 장소였던 한국가구박물관 특별전시실

나는 우리 가구 박물관의 직원들 유니폼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았다. 그만큼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모든 큐레이팅과 음식 메뉴, 음식 장만을 관장이 직접 했다는 것이었다. 테이블 하나마다 감 가지를 하나씩 올려 주었는데, 남원에 있는 김갑수 고택의 안뜰 감나무에서 직접 따온 것을 손으로 하나하나 닦아 올려 놓았다고 했다. 백김치는 속을 파 낸 감속에 담아냈는데, 관장은 어제 밤 잠 한숨 자지 못하고 감 스물 두개를 일일이 속을 파냈다고 했다. 테이블 보, 냅킨 모두 같은 색조로 동대문 시장에서 끊어다 만들었다고 했다.

점심을 마친 후에는 사대부집 대청마루에서 다과를 하면서 국악 공연을 보았다. 대사부인들은 하나같이 압도당한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외교관저들이 성북동에 있었다. 관장은 성북동 주민의 한 사람으로 외국 대사부부들을 늘 바지런히 챙기고 있었다. 나는 그날 LA 헐리우드에서 일하는 유력한 영화인 한사람과 미팅을 하게 되어 있었다. 미국 영화에서 한국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 늘 있었던 차였기 때문에 그를 이 장소로 오라 했다. 행사의 일부분이라도 함께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정교한 문화적 저력이 있는 나라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감명을 받고는, 정말 한국에 이런 문화가 있었는지 몰랐다고 놀랐다. 문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앞으로 헐리우드의 영화계 인사들과 새 영화에 관해서 논의할 때 이 순간을 떠올리기를 바랬다.

다음날 나는 일본에서 방문한 정, 재계 및 외교관 부인들의 모임인 봉사 모임의 방문단을 맞았다. 전 수상 Haruko Komura의 부인, 롯데 그룹의 Manami Shigemitsu회장 부인등 많은 일본의 여성 인사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이렇게 대거 한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이 흐뭇했다. 나는 LA에서 했던 강연을 줄여 한국의 전통 문화에 대해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그들에게 정말 좋은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일정을 물었다. 혹시 가구박물관이 들어 있지 않으면 한번 주선해주고 싶어서였다. 돌아온 답은, 그날 오후에 가구박물관에 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어디를 가야할 지를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나는 가구박물관 방문이 일생에 단 한번 있을 법한 경험일 것이라고 선전을 했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기대했다. 아마도 내말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가구박물관은 내년에는 일반 공개를 계획하고 있다. 아마도 입장료를 얼마를 받던지 간에 그곳은 늘 어마어마한 적자에 시달릴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집 주인이 버텨내도록 도와야 한다. 그는 사명감 하나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아니면 이렇게 발품 손품을 팔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고가구를 사 모으고, 그들을 이렇게 애교스럽게 전시할 애정을 지닌 사람이 없다는 사명감이다. 나아가 서울에서, 한국에서 한국 전통 문화를 공부하고, 더욱 이를 외국인들에게 부지런히 알리는 민간 외교관이라는 사명감이다. 하지만, 사명만으로는 오랫동안 버티기 쉽지 않을 터였다. 나는 나이 서른이 훨씬 넘은 아들들을 둔 정미숙 관장이 유창한 영어로 외국인들에게 집의 유래며 곳곳의 꾸밈을 설명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경탄하고 한다. 그리고 늘 생각한다. 정부는 아무리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이런 일을 하는 민간을 어떻게 찾아 내 독려하고 도와 줄 것인지를 연구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문화는 정말 유능한 외교관이라는 사실.

글 조윤선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