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재즈는 자유롭게 날아가는 듯 하면서도 기본 중심을 잃지 않아서 아름답다. 재즈의 묘미는 ‘즉흥 연주(improvisation)’와 ‘스윙(swing) 감각’에 있다. 즉흥 연주는 기본적인 멜로디와 리듬을 염두에 두면서 자유롭게 계속 변화를 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원곡의 기본 멜로디와 리듬은 ‘태풍의 눈’처럼 중심 축이 되고, 그 주변을 ‘즉흥 연주’라는 회오리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낸다.

재즈에는 명곡이 없고, 명연주자만 있을 뿐이라고 한다. 원곡 자체보다 원곡을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곡도 즉흥 연주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재즈의 묘미다. 악보를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멜로디를 살리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낸다. 재즈의 ‘스윙 감각’이란 연주의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 축이 되는 리듬을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지탱하는 데서 나온다.

재즈는 또 ‘조화’의 음악이다. 재즈에는 일률적인 규칙이 아니라, 자유로운 조화가 있다. 재즈는 여러 악기가 동시에 연주를 하면서 사이좋게 같이 길을 간다. 길을 같이 가긴 하지만, 똑같은 길을 획일적으로 걷지는 않는다. 피아노가 "내가 먼저 갈 테니까 따라와" 하고 솔로 연주를 시작하고, 그 연주가 끝날 무렵 베이스가 따라간다. 그리고드럼이 들어온다. 가끔은 같이 나란히 가기도 하고, 먼저가서 기다리기도 한다.

각 악기가 돌아가면서 같은 곡을 즉흥적으로 연주하고, 각자의 솔로가 끝나기 전에 다른 악기가 치고 들어온다. 그래서 재즈에는 반주의 개념이 없다. ‘반주’가 곧 ‘연주’다. 이렇듯 재즈의 묘미는 흔들리지 않는 기본 멜로디와 리듬을 축으로 해서 계속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데 있다. 재즈의 즉흥 연주에서처럼, 변화를 시도하더라도 중심 축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꼭 필요하면서도 지키기 힘든 일이다. 재즈에서는 각각 다른 악기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긴장과 완화의 조화를 이루어간다. 재즈를 들어보면 ‘흔들리지 않는 중심’과 ‘자유로운 조화’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즈의 역사’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한 연주자가 바로 정성조 선생님이다. 재즈 색소폰 연주자다. 정성조 선생님은 1989년 한국 최초로 서울예대에 실용음악과를 창설하고 재즈음악의 한국적 토착화에 매진해온 한국 재즈음악계의 선구자다. 1970년대 한대수, 김민기 등의 대중음악 ‘명반’에 연주자와 편곡자로 참여했던 그는 80년대 들어 영화음악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이어갔다.

그는 40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영화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깊고 푸른 밤>, <이장호의 외인구단>, <기쁜 우리 젊은 날>, 이런 영화들을 음악으로 형상화한 주인공이 정성조 선생님이다. 그는 대표적인 영화음악가였으며, 1970년대 초반 김민기, 양희은, 한대수 등의 앨범 작업에서 색소폰, 플루트 연주자 및 편곡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물론 그의 관심은 재즈에 있었다. ‘고고클럽, 생음악살롱의 왕자’라 불린 ‘정성조와 메신저스’도 그러한 관심이 투영된 그룹이었다.

음반 발매 직후 판금되기도 했던 <영자의 전성시대>에는 임희숙의 ‘너무 많아요’와 최병걸의 ‘이젠 가야지’가 있다. 그리고 <겨울여자>에는 김세화의 ‘눈물로 쓴 편지’가 있다. 정성조의 영화음악 음반이 중요한 이유는, 이전 시기처럼 한두 곡의 주제가가 다른 곡들 사이에 관련 없이 끼워진 편집 형태가 아닌, 주제가 이외에 배경음악용 연주음악까지 실은 ‘본격적인’ 사운드트랙 음반이기 때문이다.

정성조 선생님은 재즈를 기본으로 한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작업도 계속해왔다. 95년부터 11년 동안 KBS 관현악단장으로 재직했을 당시에는 대중친화적인 크로스오
버 음악들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다. 지난 30여 년간 매주 재즈클럽 ‘올댓재즈’에서 공연을 했다. 최근에 ‘올댓재즈’가 이전확장을 위해서 문을 닫았고, 정 선생님은 처음으로 그곳에서 연주를 하지 않는 일요일 밤을 맞았다. 그가 오랫동안 무대에서 연주를 해 온 청담동의 ‘원스 인 어 블루 문’에서 인터뷰를 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재즈 매니아들이 많다. 해외의 유명 재즈 페스티벌을 찾아 다니기도 한다.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의 크고 유명한 재즈페스티벌들이 여름에 열린다. ‘여름은 재즈’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름에 재즈’ 정도는 즐겨볼 만 하다. 대학로에서는 7월에 재즈 페스티벌이 열렸다. 재즈클럽 ‘천년동안도’에서도 ‘대학로, 천년 재즈페스티벌’을 열었다.

재즈 매니아가 많아지다 보니 다양한 연주자가 한국을 찾고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재즈시장 자체가 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키스 재릿 같은 슈퍼스타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내한 공연이 티켓 판매 부진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공연이 있어도 소수의 재즈 팬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다 마는 경우가 많다.

정성조 선생은 서울고등학교 재학시절 밴드부에서 색소폰을 시작했고, 고등학교 3학년인 1964년부터 미8군 무대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 건 일본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길옥윤 선생님을 만나 그의 악단에 합류하면서부터였다. 연주생활을 계속하다가 뒤늦게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입학했지만, 수많은 활동과 바쁜 스케줄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두었다.

1972년엔 ‘정성조와 메신저스’를 결성했다. 연주활동과 수많은 영화음악을 작곡 편곡 하던 중 1979년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보스턴으로 유학을 갔다. 4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83년 귀국한 뒤에도 가수들의 음반, 영화음악, 뮤지컬 등에서 음악 감독과 편곡 작업을 했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한국방송대상 음악상, 대종상 음악상, 영화평론가상, KBS가요대상 편곡상, 서울연극제음악상, 영화음악 특별대상, 문화예술공로 대통령상, 제5회 제천 국제음악영화제 제천영화음악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이제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도 여전히 작곡을하고 연주를 하게 된다. 앞으로는 편곡 일에도 집중하고 싶다고 하신다. 우리나라에서 ‘편곡’이란 제대로 대접을 못받는 장르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제대로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 음악을 재창조하는 편곡의 중요성을 꼭 알리고 싶다고 한다. 영화음악 작곡, 편곡, 연주, KBS 관현악단장, 대학교수 등 수많은 일들을 해왔는데 어떤 일이 가장 즐거우셨나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무대에 서서 마음에 드는 음악을 좋은 멤버들과 함께 연주할 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연주가 가장 즐겁습니다.”

글·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미국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 역임. SBS TV의 옴부즈맨 프로그램인 ‘열린TV 시청자 세상’을 4년 동안 진행했고, EBS ‘미디어 바로보기’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커뮤니케이션 불변의 법칙’,‘대중을 매혹하다’,‘글쓰기의 기술’,‘매력적인 말하기’등 커뮤니케이션 전략 관련 책을 6권 썼다. 최근에는 각국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 400여장으로 여행 포토 에세이‘ 그곳에 가면 누구나 행복해진다’를 출판했다. http://www.ideaocean.org)

사진·정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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